이렇게 비바람이 너무 센 경우 말입니다.
고등학생 때, 비가 오던 날 우산을 썼음에도 흠뻑 젖었던 나를 보며 학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비바람이 세면, 그냥 우산을 접고 냅다 뛰는 게 더 나을 때도 있어.
당시에는 “맞아요, 그렇죠” 이러고 말았는데 이 말을 들은 지 벌써 5년이 넘어가는 지금, 가끔씩 울림이 되어 나에게 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말이 되었다.
최근에 비가 왔다. 바람도 셌다.
내가 급하게 본가에서 가지고 온 우산은 바람이 불면 머리가 날아가버리는 것으로 유명한 다이* 단우산이었다. 급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느라 달리는데 우산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게 아닌가. 빨리 달리려는데 우산이 걸려서 계속 걸음을 멈췄다.
그래서 그냥 우산을 접고 냅다 뛰었다. 다 뛰고 보니 내 뒤, 앞, 옆에는 우산을 여전히 들고 우산과의 싸움을 하는 사람, 나처럼 우산을 접고 그냥 뛰는 사람 등 다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그래, 가끔은 그냥 우산을 접고 비를 맞으며 냅다 뛰는 게 더 빠르고 좋을 때도 있지.
우산은 다양한 의미가 된다.
자존심일 수도 있고, 걱정이나 불만일 수도 있고. 우산은 접을 수는 있지만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자존심이 가끔 기개가 되고 걱정과 불만이 계획과 변화로 이어 지곤 한다. 그러나 그 감정들이 나를 갉아먹으면 안 되는, 그런 어쩔 수 없이 갖고 있어야 하는 여러 감정들과 우산은 참 닮아있다.
내 생애 우산을 접고 냅다 뛴 적이 있었던가? 가장 최근으로는 졸업 이후에 앞뒤 재지 않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셰어하우스에서 살게 된 일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공고도 없고, 경제적으로 지원받는 주제에 그냥 뛰어나왔다. 그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그때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씩 시험과 컨설팅 등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던 것 같아서 한숨 돌리고 있다.
무언가를 할까, 말까 걱정하는 시간이 요즘 줄어들고 있다.
하면 반성하고 안 하면 후회한다. 반성과 후회 중에 하나 고르면 된다. 골랐으면 이제 우산을 접는다. 우산을 접고 비바람을 가로질러 뛰어가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든 그건 선택한 대로 하면 된다. 어느 쪽이든 결국 우산을 접어야 함은 틀림없다.
그리고 우산을 접는 건 한 번에, 빠르게 접어야 한다. 미적미적하다간 애매한 상태의 우산을 바람이 부러트리거나 다른 사람을 칠 수도 있으니까.
나는 항상 우산을 갖고 다닌다. 언제 또 우산을 접고 뛰어들어갈 만한 일이 생길까? 그때는 우산을 접고 어느 방향으로 뛰고 있을까? 우산을 과감하게 접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