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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Dec 10. 2017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올 한 해 내가 가장 무서워한 말.

눈이 온다.

벌써 그럴 때가 되었나 보다.

이번 해의 나는 정말로 괴로웠다. 남들이 날 괴롭히는 것도 있었고. 내가 날 괴롭히는 것도 있었다.

크게 보면 나는 내가 원하는 '성과'를 이루지 못해서 너무나도 괴로운 한 해를 보냈다. 그런데 눈이 올 때쯤이 돼서야 진정한다.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것이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게 이제야 실감이 난다.

괴로웠다는 것은 분명 무언가를 하려고 아등바등하였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의 올 해는 부모님이 보아도, 가장 친한 친구가 보아도 한심하게 볼 수밖에 없는, 정말 "얘 뭐야 아무것도 없네?"라는 말이 나올법한 1년이지만 잘못했다는 자괴감에 위축되어 있을 일은 아니라는 거.


나는 잠시 여기 잠겨 있으려고.

주변에 친한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이 내 잘못인 것 같아서, 내 성격이 정말 이상해서, 내가 정말 사회성이 없어서 인 것만 같아서. 하루하루 누군가가 날 비난하는 것 같아서 어떻게든 사람을 내 옆에 두려고 애를 썼다.

옆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다 웃으면 마음이 철렁했다. 난 저렇게 같이 웃을 사람이 없으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대학교를 오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던 나날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고치고 반성해야 할 것들을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했다. 어쩌다가 사람과 친해지면, 늘 그저 나를 지나쳐버린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버릴까 봐, 그냥 약속을 하나 잡는 것도 톡 하나 보내 놓고 전전긍긍해하고, 약속을 잡게 되면 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머릿속을 짜내고, 만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나는 항상 내가 약속을 먼저 제안만 하고 제안받은 적은 없는지 내 성격에서 무엇이 그 사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고민했다. 

모든 것은 당연하다. 우리 학과는 사람이 많아서 그 안의 동아리를 들지 않는 한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고, 수업시간에는 독강인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내가 알게 된 사람들은 10 중 9명은 이미 대학교에서 친한 친구들이 포화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다가 만난 내가 그들에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에겐 그들이 전부였지만. 

주위에 친구가 없다는 외로움보다는 내가 이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괴로움에 사람을 억지로 만나러 다녔다. 아무도 나에게 내가 친구 없다고 돌을 던지진 않았다. 그러나 나의 이런 하소연을 듣는 친한 친구들의 얼굴에 빠르게 지나가던 연민(아 불쌍해), 당혹감(어떻게 해...?), 안도감(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을 보며, 그리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다가도 여기서 가장 괜찮지 않은 건 나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의 얼굴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아마 그들은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는 한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먼저 물어볼 일은 없었겠지. 잘 지내고 있는 사람이 못 지내는 주위 사람을 신경써주기란 쉽지 않으니까. 그렇게 쓸쓸해지다가도 모른 척하고 전화가 와서는 "뭐하냐 곧 생일 아니냐"라고 묻는 놈들도 있어서. 그래서 나는 여전히 친구들에게 의지를 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지쳐있다. 부모님께 "난 대학 때 친구 많았는데"부터 "너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가고 있는 거야"까지 그리고 친구에게 "왜 너에게만 그런 일이 생기는 거야?"라는 말을 들으니까 더 지쳐버렸다. 지쳤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에 생각만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친구도, 부모님도 나에게 나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말을 하는데, 내가 왜 남을 생각해줘야 하지? 왜 괴로워해야 하는 거지? 내가 사회성이 없으면 어때, 내가 부적응자면 또 어때, 내가 주위에 친구가 없어서 항상 혼자 책 읽고 공부하고 그림 그리고 그러면 어때. 남들이 날 말할 때 지질하다고, 이상하다고 하면 그게 뭐. 그 '남'들은 내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을 막 내뱉는데 내가 왜 남들이 날 보면서 옳다고, 잘한다고 생각하게 애써야 하는 거지?


억지로 만남을 갖는 것도. 남 시선에서의 나를 신경 쓰는 것도, 내가 지금 약속을 잡지 않으면 다신 만날 일이 없을 거라는 불안함도 모두 지치고 짜증 난다. 나는 그냥 여기 잠겨있겠다. 푹 잠겨 있을 것이다.  다음에는 사람을 대할 땐 지금처럼 마음 졸이지 않게 될 때까지. 사람이 다시 그리워질 때까지. 상처받고 지친 내가 다시 움직을 수 있을 때까지 여기에 가만히 있으련다. 언젠가 먼 미래에는 지금을 잊지 않고 주변에 있어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그들을 소중히 여기는 내가 되어있을 것이다. 아직 한참 멀었지만.

남들은 날 보고 올 한 해 뭘 했느냐고 아무것도 없지 않냐고 아무것도 아니지 않냐고 할 것이다. 내가 봐도 그렇다. 뭔가 이뤄놓은 게 전혀 없다. 맛집을 뚫었다는 것 정도인가? 뭐 여하튼, 그 말을 듣고 내가 뭐라고 반박할 말은 없다. 아무것도 없긴 한데, 안타깝게도 아무것도 없지만 난 살아왔다. 그리고 여전히 여기에 있다.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던, 도망가버리고 싶었던 삶에서 여전히 "아 인생 뭣 같네"하고 투덜거리면서 살아있다.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남들도, 살기 싫다는 나도 그 누구도 내가, 남들이 그대들이 살아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한 해, 한 달, 한 시간, 분 초.... 모두 인간이 쓰기 편하라고 잡을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임의로 나눠버린 거 아닌가.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다. 그럼 내가 올해, 아무것도 이뤄놓은 게 없이 지쳐버렸다 해도 정말 그것조차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우주 핑계 대는 게 좀 찔리긴 하는데 뭐 살다 보면 우주를 끌어모아서라도 마음을 진정해야 할 때도 있는 거다. 

벌써 눈이 오고 12월인데 내가 뭘 했지 싶지만 꼭 뭘 할 필요는 없다. 아니 뭘 하지 못했다고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그냥 그런 거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내 말이 너무 길고 무언가를 쓸 때에도 (심지어 카톡을 보낼 때도) 구구절절 길어지곤 하는데 그게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 중에 말투가 특이한 사람은 꽤 있고 다들 잘만 살아간다. 그럼 된 것 같다.


요즘은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다. 얼른 시간이 되어서 태블릿으로 하늘을 마음껏 그리고 싶다. 만화도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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