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가 나올 때까지 계속 걷는다.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
우울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3년 전, 나는 브런치를 시작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며 그림을 그렸다. 우울과 함께 기록을 시작했다. 예전에 트위터에서 알게 된 분의 주간지를 읽은 적이 있다. 아주 심도 있고 유용하며 위로가 되는 내용을 주간지에 많이 실어주셨다. (이제 완결되었다 어깨 넘어 들리는 소리로는 출간 준비를 하신다고.) 그중 우울과 기록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기록이 정직하고 그렇기에 잔인하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상태의 악화를 기록으로 잘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을 읽을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울증과 동행하면서 나의 삶은 기록으로 가득 차 졌기에, 오히려 기록에 구원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우울증을 앓는 것은 아니므로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록은 잔인했다. 아주 솔직하고 정직하게 내 상태가 악화됨을 보여주었다.
언제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할 것인지 아주 빼곡하고 자세하게 쓰여있던 나의 스케쥴러. 그 스케쥴러에
자소서
한 단어만 적힌 것을 보고, 절망했다. 아 나는 지금 결코 좋은 상태가 아니야. 나한테 힘들어할 시간이 있나? 힘들어해도 되나? 아플 자격이 나한테 있나? 그렇게 열심히 한 것도 아닐 텐데?
사람마다 우울이 다가오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 탁한 물처럼 들어온다. 예를 들면, 상태가 괜찮을 때 내 일정은 인형 뽑기 기계와 같다. 무슨 인형이 안에 들어있는지, 무슨 인형을 잡고 있는지, 무슨 인형을 떨어트릴지, 혹은 나중에 잡을 것인지. 뚜렷하다.
그러나 우울증이 심해지면 그 기계는 탁한 물에 잠긴다. 정신없이 잡고는 있지만 무엇을 잡고 있는지, 무엇이 안에 있는지 잘 알 수가 없다. 그저 첨벙첨벙 거리고만 있다.
이럴 때는 그 탁한 물이 빠져나갈 때까지 아무것도 안 잡고 있는 것이 답이겠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가 많다. 탁한 물 안에서 잡아야 할 인형들이 마구마구 불어나는 것이 느껴지면 정말 미치겠다.
가끔은 그 물에 뛰어드는 게 답일 것만 같기도 하다.
우울이 심해졌을 때, 가장 괴로운 건 아마, 현저하게 낮아지는 생산성이나 효율이다. 나 말고도 모두가 그렇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한국에서 더 특히 열심히가 아니면 안 되는 입장에 처한 사람들. 고시생, 취준생, 수험생, 중요한 프로젝트 수행 중인 직장인이나.... 어찌 되었든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 우리는 쉴 수도 없다.
우울증은 많은 것을 뺏아간다. 그중 쉼과 일의 경계를 뺏기는 게 가장 두렵고, 허망하다.
생산적인 일과 생산적이지 아니어도 나를 위해 하는 일. 그 경계가 완전히 무너진다. 그러면 계속 쉬거나 계속 일만 하게 된다. 결국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제대로 뭔가를 하지 못했기에 제대로 뭘 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태에 돌입했을 때나 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결국 아직 정상적이지 못하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일단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한번 본다. 유튜브에서 이직을 준비하는 직장인이나 의대생 프리랜서의 브이로그 혹은 트위터나 블로그에서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기록을 남긴 글, 혹은 취직 준비나 기상 미션 같은 오픈 채팅방들.
만약 그들의 기록을 보면서 반성이나 동기부여가 아니라, 갑갑함과 무력함을 느낀다면 당신이 해야 하는 것은 효율적인 일이 아니라 회복하는 일이다. 당신이 이겨야 하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무력한 자기 자신이라는 의미이다.
과거의 잘하던 자기 자신이 아니다. 지금 안 좋은 나 자신이다. 만약 스케쥴러가 엉망이 된 내가, 한때 40분 20분 코스를 10번 돌던 그때의 (그래 봤자 한 달 전) 나의 스케쥴러보다 잘하려고 한다면 당연히 막막하다. 막막하면 포기하게 된다. 그냥 어제나 오늘보다 하나라도 더 하고,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쓰려고 한다.
예를 들면, 나는 엊그제 계획도 추상적으로 썼고 일도 많이 벌려놓고 반도 못 했다. 그런데 어제는 조금 더 글씨를 깔끔하게 적었고, 계획도 더 구체적이었으며 2개 빼고 전부 완수했다.
물론, 많은 일을 멋지게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 보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직장인도 아니고, 부모님 용돈으로 약이나 먹고 있는 취업준비생이다. 남들 코피 흘리면서 하는 취업준비기간에 "후후 글씨가 조금 더 깔끔해졌는걸"이라면서 고양감을 느끼는 내가 한심해 보인다. 사실 나 같은 사람은 힘들어할 가치나 자격도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잘 알기 때문에.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적은 것을 보고, 최대한 가까이 보려고 한다.
그냥 지금 갖고 있는 것, 지금 하고 있는 것, 지금 옆에 있는 사람만 보려고 한다. 많은 정보가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얽매이는 족쇄가 되는 상황이기에. 족쇄를 늘리지 않고, 없애지도 않고 족쇄와 함께 뭍이 나올 때까지 천천히 걸어가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 고개는 바다에서 빠져나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