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담는 곳, 두고 오는 곳이 아니다.

고통은 유골이 아니라 두고 올 순 없어서요.

by chul
“언니가 바다 가고 싶다고 해서.”

원래 이 여행의 목적은 '드립 커피와 서점'이었다. 굳이 바다를 추가한 이유는 두 권의 책 때문이다. 하나는 정세랑 작가의 신작 소설 '시선으로부터'. 두 번째 책은 떠나기 전에 친구가 준 바다 관련 잡지. 펼친 순간 바다가 내게 넘치듯이 흘러와서 급히 그 잡지를 닫을 수밖에 없었다. 잠깐 사이에 나를 휩쓸고 간 바다에 겨우 정신을 차리면서, 그 친구에게 약속했다.

“내가 약속할게. 이 잡지 들고 바다 가서 인증샷 찍어올게. 남은 페이지는 그 근처 카페에서 읽을게. 바다 보면서.”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멀리 못 가지만, 언제부터인가 '여행 = 무언가를 얻음'이 공식이었다.

힐링이거나, 새로운 만남이거나, 뭔가 큰 깨달음이라던가. 내가 바다를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지금 힘든 네가 다녀오면 달라져 있을 거야! 잘 다녀와!' 같은 말을 하더라.

그래서 나는 여행 내내 유골을 품고 있는 기분이었다. 힘들고 지친 마음과 언제든 삶을 끝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몸을 조그마한 곳에 욱여넣어서. ‘힘든 나’의 유골을 들고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바다에 도착하면 그 유골을 멀리멀리 뿌리고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하면서 다시 서울에 돌아와야 한다는 임무를 받았다. 누구에게서? 그 누구와도 약속하지 않았다. 내게 바다를 머금은 책을 준 친구와 한 약속 빼고는.

서점에 있다가 바다를 보면서 바로 알았다. '힘든 나'의 유골 따위는 없다. 힘들고 지친 나는 지금 여기 나와 함께, 어쩌면 평생 함께 살아가는 살아있는 존재임을. 유골 뿌리고 오듯이 기념하며 바다에 두고 올 수 없음을. 그 버리고 싶던 내 상태도 결국 나와 함께 바다를 그곳에 두고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아침 5시 30분.

조심히 일어나서 슬리퍼를 신었다. 숙소 밖으로 나오자마자 엄청난 광경이 보였다. 정신 차리고 보니 뛰고 있었다. 흐렸기에 일출이 웅장하진 않았다. 그러나 바다와 노랗고 파란 구름들은 충분했다. 이걸로 충분하다. 사진을 찍고 끊임없이 바다만 바라보면서 걸었다. 그러다가 구름 위로 나온 해로 인해 바다 중간에 노란색 굵은 선이 생겼다. 그때 외쳤다.

그래, 난 이걸 보고 싶었어!

난 항상 얻고 나서야 사실 이걸 원했다는 걸 알았다. 이번 여행에서 원한 것은 완전한 고립과 책, 드립 커피뿐이었다. 그러나 1인실은 드물었고 서점은 커플들의 데이트 코스가 된 지 오래였고, 가는 곳마다 어째선지 드립은 팔지 않았다. 드립을 파는 곳이 영업을 끝내기 전에 후다닥 가서 원두를 품에 안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알았다. 나는 이걸 원했구나! 저 바다에 그어지는 하늘만이 그을 수 있는 일렁이는 선을 보길 바랬어. 그랬던 거야. 그리고 내 그림자를 보면서 원하는 것을 얻은 후에는 그것을 등지고 돌아가야 한다는 모순을 느끼며 돌아왔다.


역 근처에 원두를 살만한 카페를 찾아보았다. 내 기차표는 오전 출발이었고 카페는 보통 늦게 아니까. 그런데 오전 8시에 여는 로스터리 카페가 있었다. 두 번째로 달렸다. 분명 오픈 시간은 한참 지났는데, 의자 몇 개는 올려져 있었고 나를 본 사장님의 표정은 의아했다. '8시에 연다던 데 지금 영업 하나요?'라는 말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정작 내 입 밖으로 나온 건 다른 처절한 외침이었다.

“드립 돼요?!”

“예에, 그런데 제가 아직 머신 청소를 안 해서 에스프레소 커피나 디저트는..”

“그래서 드립은 되는 거죠?!”

“네네, 됩니다!”

사장님이 알려주신 방식으로 커피잔이 아닌 위스키 잔에 커피를 마셨다. 눈 앞에 돌아가는 역을 앞두고서 목적을 클리어했다. 커피의 산미가 어쩌고 원두의 풍부한 향이…. 이런 건 몰랐다. 그냥 누군가 나만을 생각하며 내렸을 드립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다짜고짜 드립 드립을 친 나를 커피에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 착각하셨는지 사장님은 원두와 드리퍼의 차이를 세세하게 설명했지만 나는 잘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여기서 얻은 거 또 있다. 기꺼이 모를 것.

한 모금 한 모금을 이렇게나 정성스럽게 마셔본 적이 있던가.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카톡이 왔다. 같이 사는 친구에게서 온 '오늘도 힘들었다, 저녁 전에 와라'는 메시지. 아, 또 밥을 먹으면서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계속하겠구나. 잠시 고민하다가 메시지를 보냈다.

나 저녁 먹고 들어가. 먼저 먹어 오늘도 수고했어. 내일 얘기하자.

마지막으로 얻은 것. 기꺼이 상처 줄 것.

한 달 유럽 여행 다녀온 친구가 '딱히 내가 달라지거나 깨달음을 얻은 것 같지 않은데… '하며 어리둥절해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냥 그때 특별히 재밌었지도 않았고 이틀 근처 바다 다녀온 내게 무슨 변화가 있었겠는가. 룸메가 끄지 못하는 알람을 대신 끄며 결국 못내 일어나는 것도 똑같다. 그저 새로운 드립백을 펼쳤다는 변화만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우울 심해 생물 생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