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요?
저 그림 딸이 그린 거예요. 독일에는 예고가 많이 없거든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만나러 못 가지만. 그림만 봐도 씩씩한 게 느껴진다고요? 맞아요 정말 씩씩하죠. 되게 어려 보이는데, 대학 졸업했다고요? 그러면 몇 살...? 네 25? 이요? 우와 너무 좋은데요 제가 유럽으로 갔을 때까 25살이었어요! 그 이후로 20년 동안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죠. 정말 뭐든지 할 수 있는 나이네요. 맞아, 그때가 딱 25이었어요.
야, 뭘 그리 고민하냐? 찹쌀도넛인지 꽈배긴지 고민 중이라고? 우리 두 명인데 무슨 고민이야 하나씩 사서 나눠먹으면 된다고. 사장님 여기 찹쌀 도넛이랑 꽈배기 하나씩 포장 부탁드릴게요. 뭐라고? 어묵도 산다고? 매운 야채랑 소시지 어묵 하나씩 하자.
사장님은 투닥거리는 나와 친구를 지긋이 쳐다보셨다. 아마 우리 할머니와 비슷한 또래인 사장님의 눈빛, 그다음에 한 음절 한 음절 정성을 담아 한 말씀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참, 예쁜, 때네요. 둘 다, 너무 예뻐요.
단기 알바를 구하고 싶어도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경제활동이 강제 멈춤이 되어서 내가 바통터치를 해야 한다. 서류 몇십 개를 떨어지는 건 다른 사람 얘기인 줄 알았다. 그건 내 얘기였다. 가능성이 넘치며 세상의 중심인 청춘은 내 얘기인 줄 알았다. 그건 내 얘기가 아니었다.
집에 들어오면 당연히 내가 들어야 할 함께 사는 사람들의 힘든 얘기가 이어졌다.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카톡이 왔다. 답했더니 바로 거두절미하고 자기 이야기가 이어진다. 전화통화를 들으며 허공에 대고 유키스의 시시시시시시끄러! 부분의 넥 슬라이스 춤을 췄다. 통화를 끝내고 카카오톡을 삭제했다. 나는 하고 싶은 얘기도, 듣고 싶은 얘기도 없었다. 그냥 나를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사실 별로 취직하고 싶지도 않다. 아무것도 세상에 받고 싶지 않고 주고 싶지 않다. 귀마개를 끼고, 안대를 쓰고, 이층 침대 커튼을 친다.
그렇게 모든 말이 지겨워질 때쯤, 나에게 그 말들이 훅 들어왔다. 그냥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가능성이 많다고 얘기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순간을 지나와 봤기 때문에 그 순간에 서있는 나그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 그들은 나를 향해 말했지만 사실 내가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의 자신들에게 하는 그런 말. 참 좋을 때라는 말.
나는 어디에 와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 나는 항상 여행을 가든, 어디 멀리 가다가 돌아오든 이사를 가든, 어쩌다가 여기에 왔지? 가 아니라, 여기까지 어찌 잘 왔구나, 하고 감탄하는 편이었다. 공간의 이동에 순수하게 감탄하곤 했다. 가끔 시간의 이동에도 감탄하게 된다. 특히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만날 때. 그렇다고 불특정 다수를 만날 때마다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 나도 ‘그랬던’ 생각이나 모습을 가진 친구들을 볼 때다. 그럴 때 새삼 내가 그때를 지나쳐왔음을 실감한다.
뭐, 나는 그렇다고 그 친구들을 보면서 참 좋을 때지…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냥 나도 저렇게 보였겠구나 연장자들에겐, 좀 민망하군. 할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25년이란 짧은 인생 중에 25살인 지금의 나의 태도가 나는 가장 맘에 든다. 물론 상황이나 상태는 25년 인생 중에 최악이다.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소리 듣고 무엇이라도 얻으려고 하면 더 잘하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미숙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쫓겨난다. 상황은 최악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거나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는, 내 인생 통틀어 최고다. 맘에 든다, 고 말할 수 있는 정도니까.
적당히 다른 사람들을 챙기고 적당히 나를 위해 선을 긋는다. 도덕적인 기준이 아니라, 나의 개인적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예전처럼 화내거나 고치려고 발버둥 치지 않는다. 저런 삶의 방식도 있다는 걸 이젠 받아들였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있음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래서 가끔, 친구들이 다른 사람들을 그 친구들만의 기준으로 욕을 할 때 공감하지 못한다. 그럴 때도 굳이 내가 공감하지 않으며 그건 틀렸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애써서 공감한다고 보이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냥 들어주며 그렇구나, 할 뿐이다. 이게 가능할 줄은 몰랐다. 나도 참 많이 변했지.
나처럼 지금의 자기 자신이 가장 맘에 든다는 친구 표현을 빌리자면,
“이젠 조금 덜 호구 같지 덜 미련스럽고.”
뿌듯해할 만한 노력을 하진 않았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을 봤을 때, 부럽다기보단 머쓱해지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나더러 좋을 때라고 하는 거 보면, 아마 정말 나는 좋을 때를 살고 있나 보다. 야무지게 아르바이트하면서 부모님 지원도 안 받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매주 나가는 병원으로 부모님의 몇 없는 돈까지 빼먹으면서, 잘하고 싶지만 잘 안된다. 그런 나지만.
나는 어떤 상황이 되고 싶지? 야망이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일단 지금 상황이 덜 괴롭고 싶다. 다들 좋고 예쁜 때라니까, 좋게 예쁜 일상을 키워서 내 안전장치로 만들고 싶다. 그래서 이 세상 어디에서라도 잘은 아니어도 어찌어찌 살아가고 굴러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때의 사람을 만나든, 나보다 어린 사람을 보며 나도 그때 좋았다, 참 예쁘고 좋은 나이라고 얘기해주는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나의 모든 때는 빛나기만 하진 않겠지. 나만 아는 고통이란 것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래도 계속 살아가고 어느새 나는 또, 지금의 나는 상상도 못 한 곳에서
"이야, 여기까지 또 어찌 잘 왔네."
라며 감탄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