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하늘이 그렇겠지만
내 브런치의 예전 소개글에는 ‘하늘을 그리고’라는 말이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하늘을 굉장히 좋아했다. 심심한 건 못 참던 어렸을 때부터 긴 이동시간 동안 차창 밖에 있는 하늘과 구름을 보면 4시간이고 5시간이고 버틸 수 있었다. 요즘은 노래나 라디오를 듣긴 하지만 여전히 시선은 차창밖의 하늘에 고정되어 있다. 3d임을 실감 나게 만드는 구름과 하늘들이 좋았다. 가끔 나는 아주 당연한 사실에도 감탄하곤 한다. 그냥 쉽게 감명받는 사람이라 그렇다.
그래서 하늘 사진을 마구 찍었다. 더 나아가 하늘을 그리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때쯤 브런치를 시작했으므로, 내 소개 문구에는 하늘이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하늘을 그리기 위해 별 짓을 그때도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해도 마음에 드는 하늘이 안 그려지는 것이다. 멍 때리다가 마음에 드는 하늘을 발견하면 사진을 어떻게든 찍었고, 사진을 포토샵으로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그림자가 지는 방법을 그리는 튜토리얼을 찾아보았고, 어떻게 하면 몽글몽글하게 그릴 수 있을지 끊임없이 연구했다.
어느 날, 정말 내가 딱 그리고 싶은 하늘이 나타났다. 하지만 절망했다. 어떻게 해도 렌즈에 보이는 그대로 담기지 않았다. 자연은 분석해서 될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을 눈에 담기로 하였다.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 하지만 기록할 수 없다면 감상해야 한다. 1초마다 달라지는 게 하늘이니까.
하늘은 제멋대로 생겼다. 구름도 정말 제멋대로였다. 내가 아무리 어떤 구름을 분석하고 따라 그려도 다음날 밖에 나가면 또 듣도 보도 못한, 일러스트에는 전혀 담기지 않을, 예쁘지 않은 구름들이 자기 존재를 내뿜고 있었다. 하늘 색도 그렇다. 어딘가에 ppt color 라던가 color palette라고 검색하면 절대로 나오지 않을 이상한 색들의 조합으로 또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저게 뭐야, 내가 하느님이면 절대 저런 색으로 구상 안 한다. 그런데 또 자존심 상하게 아름답다. 카메라에 담기를 포기하고 그냥 감상해야 하는 하늘이다.
하늘도 나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존재인데 뭘 그렇게 맞추려고, 분석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생겨먹을 걸 어떻게 해. 하늘이 어떻게 될지 모르듯, 나의 하루도 일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가 어떻게 이것저것 맞춰보려고 하고 예상하고 분석해도 그냥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내가 하느님이면 내 인생을 조금 더 예쁘장한 색과 조화로운 색들로 채웠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하느님이 아니라서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하늘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냥, 애쓰지 않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래서 지금 그리고 있는 하늘은 나만의 하늘이다. 그냥 내가 생각나는 대로 그린, 이상하고 자유로운 나의 하늘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하늘을 갖고 있겠지. 누구는 비가 오는 동안 누구는 해가 쨍쨍할 수도 있고, 누구는 별이 떴는데 누구는 이제 해가 뜨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저항할 수 있다면, 바꿀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야겠지만 가끔은 있는 그대로 둘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그런 하늘을 갖고 살아가야지. 이상한 구름을 그리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