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때는 없습니다. 행복하세요 마음껏.
요즘 좋은 카페의 좋은 원두로만 드립을 마셨다. 그러다가 원두가 다 떨어져서 예전에 세일할 때 산, 3000원이 조금 넘는 원두로 별생각 없이 드립을 내렸다. 그리고, 나의 그날 하루 첫마디는
“망했네”
였다.
망했다. 진짜 망했다. 나는 결국 원두의 맛을, 비싼 원두와 싼 원두를 알며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는 대충 마시지 않고 좋은 원두를 사 모으며, 좋아하는 카페마다 15000원씩 써가며 좋은 원두를 살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는 그냥 잠을 깨면 되었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을 주면 충분했던 드립 커피. 그 커피는 이제 내게 추가된 하나의 ‘사치’가 되었으며 하필 돈도 별로 없고 시간만 많은 이 상황임에도 나는 그 사치를 부리고 싶어 졌다.
친구들에게 어떻게 지내? 하면 꼭 돌아오는 답이 ‘별 거 없어 취미도 없어.’이다.
우리는 ‘취미’를 너무 무겁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도 그랬다. 취미를 잘하려고 하니까, 그것을 활용하려고 하니까, 우린 취미를 가질 수 없다. 그냥 기분전환만으로도 충분하다면, 나는 그들에게 사치를 허락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용돈 받는 취준생이 밥 조금 싼 거 먹고, 약속 조금 덜 잡아서 좋은 책과 문제집, 상담을 잡는다. 이것과 비슷하게 똑같이 돈 조금 덜 써서 괜찮은 원두를 산다. 전자는 당연하지만, 후자는 ‘사치스럽다’. 그 시간과 돈을 허락해야만 겨우 기분전환이라고 할만한 행동이 되고 이것이 발전하면 취미든 특기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꼭 취미로 발전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허락하는 시간도 5분이어도 되고 며칠이어도 된다. 나 또한 원두 하나를 사면, 15000원 남짓에 한 달을 마신다. 한 달을 30일로 치면 하루에 500원 정도다. 이 사치를 허락해야만 나는 맛있는 드립을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행복 자체가 사치처럼 보이는 시기가 있다. 취준생이나 고시생일 경우, 내가 뭐라고 이런 감정을... 나는 계속 인상을 찡그리며 열심히 해야 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놀랐다. 되는 것도 없(어보이)는 지금, 오랜만에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카페모카를 시키곤, 진심으로 “아 너무 맛있어 행복해”라고 중얼거리는 나를 보며. 그리고 놀라는 나의 모습에 또 놀랐다. 내가 행복해해도 되는 건가? 그 행복이 취업성공이 아니어도, 그냥 맛있는 커피와 좋은 책만으로도, 5분 만에 느껴도 되는 건가?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때는 그 허락을 누가 해 주는지 잘 생각해보자. 아무도 허락해주지 않는다. 허락할만한 사람이 없다. 딱히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일도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결국, 우리의 불행은 가진 것을 사치라 여기고, 없는 것을 당연한 것이라 여겨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심지어 살아있는 것조차 사치라고 여기고, 비극으로 이어진다. 지금 내게 없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걸 얻기 위해 노력하는 건 좋지만, 지금 내게 없는 것을 (과거의 내가 못 했든, 안 했든 무엇이든 지금 없는 것.) 당연히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 불행해진다.
가진 것에 만족하라는 말은 못 하겠다. 지금 나는 절대로 만족하면서 살아갈 순 없다.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하지만 가진 것을 사치라고 여기진 않겠다. 예를 들면 내가 만든 내 시간, 원두를 내리거나 맛있는 커피를 사 마시는 시간을 기꺼이 가지겠다. 그리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당연히 내가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겠다. 그걸 위해 정당한 노력을 꾸준히, 유쾌하게 해 나가고 싶다. 시간은 걸릴 만큼 걸릴 테니까.
나의 경우, 내 삶 자체가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순간부터 우울과 자책의 열차가 폭주하기 시작한다. 이때는 일일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에 다 답을 해 줄 필요는 없다.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사치를 내게 허락한다. 예를 들면 선로이탈이 있다. 잘 달리고 있는 그 선로를 이탈해서 우둘투둘한 곳으로 기차가 가면, 마찰 때문에 그 기차는 결국 멈춘다. 그렇게 멈춘 기차 밖에서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나와, 여기가 어딘지 바로 파악하기 전에, 잠시 아깐 못 봤던 하늘이나 본다. 그러면 지금 이 심각한 상태와는 비교되게 평화로운 마음이 잠시 들 것이다. 그런 사치를 내게 허락하면서, 다시 살아가면 된다. 어찌 되었든 폭주하는 기관차에서는 그 무엇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