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쓰는 편지.
오늘 하루를 마무리할 당신께.
퇴근 버스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딸기 조각 케이크를 사야지. 없으면 몽블랑 케이크를 사야겠다.
아직 인턴 월급도 받기 전이라 용돈을 받는 형편에, 갑자기 그런 충동적인 지출을 하고 싶었습니다. 여러 카페를 돌아도 인기 많은 딸기 조각 케이크는 없었고 하나 남았던 t카페에서 몽블랑을 샀습니다. 왜냐면 오늘은 잘 마무리하고 싶었거든요. 앞으로의 오늘도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든, 누구의 말이 신경 쓰이든, 그것과 상관없이 하루의 마무리와 시작만은 제가 결정하고 싶던 나날이었습니다.
눈을 뚫고 겨우 집에 도착했습니다. 냉장고에 케이크를 집어넣고, 김치를 꺼냈습니다. 김치를 썰고, 베이컨을 썰고 파 기름을 내고 간장을 부었습니다. 베이컨이 익는 동안 다른 쪽에 불을 켜서 냄비에 물을 담고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한 후에 계란을 풀어넣었습니다. 김치볶음밥 위에 치즈를 올려놓고 계란 국에 대파를 넣어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사진을 찍었지요.
인턴 출근 후 거의 처음으로 저를 위한 밥을 해 먹었습니다. 그리고 인턴 일지를 썼습니다. 초콜릿을 부순 후, 우유와 넣고 전자레인지에 데웠습니다. 몽블랑 케이크와 함께 먹었습니다. 글도 조금 썼습니다. 이 편지는 그때의 글의 연장선입니다.
묘사하고 보니까 아주 힐링되는 행동들이었지만, 사실 발버둥에 가까웠습니다. 제가 제 인생에서 결정하고 결론짓고 힘을 낼 수 있는 것이 하루의 마무리 정도임을 새삼 깨닫고 있거든요.
그래서 밥을 만들어 먹고, 좋아하는 글귀나 그림을 보면서, 하루의 끝을 제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끝을 맺고 싶었습니다. 적어도 제 하루의 끝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그런 자격이나 힘이 제게 있음을 저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이번 주는 정말 고된 하루하루가 모인 한 주였지만 저는 썩 괜찮은 기분으로 침대에 누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겐 정말, 하루의 마무리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나 봅니다. 모든 게 만만하지 않고, 지금도 과거도 미래도 버겁게만 다가오는 요즘의 제게,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제 시간과 하루가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무력하게만 보였던 저 자신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분명히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다양한 힘이 생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오히려 어른이 되어갈수록 할 수 없는 것들만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겨우 얻어낸 ‘하루의 마무리 결정권’마저 어딘가에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오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처럼 어떻게든 또 제 삶에서 제 영역을 메꾸고 있겠지요?
정신없이 하루를 지냈을, 혹은 무력함에 잠겨서 또 하루를 지냈을 당신께. 내가 겪은 그 멋진 일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하루의 마무리 정도는 당신이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요. 형편없는 하루하루지만, 그 하루의 시간을 잘라내어 포개 넣을 수 있더라고요. 아직은 저 또한 앞이 무섭습니다. 내일을 두근거리면서 잠에 들기는 어려워요. 어제도 내일도 맘에 들지 않는다면, 오늘이라도. 오늘 지금이라도 보살펴주세요. 여전히 한숨을 쉬면서 침대에 들어가겠지만, 그래도 무겁지만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