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어차피 사람은 할 수 있는 일만큼만 할 수 있다.

by chul

비가 온다. 봄비다. 이제 여름이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없이 우울해진다. 친구들은 전부 무언가를 시작하느라 바쁜데 나는 1년 넘게 제자리다. 한국에서는 '공백기'라 불리는 시간을 발버둥 치며 보내고 있다.

무엇이 지금의 나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나에게 힘을 주던 긍정의 말이나, R=VD, 미라클 모닝마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좋은 모든 것이 힘에 부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해야만 할 때, 미래가 도저히 그려지지 않아서 더욱 눈을 감고 현실에서 도망치지만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과거에서도 도망칠 수 없을 때.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1.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필요 없을 때가 있다.

보통 우울증이나 내가 앞에서 언급한 상태인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을 것이다. 미루는 이유는 많겠지만, 그중에는 '해봤자, 뭐'라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내 미래임에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그래서 '00 해봤자 00도 안되고, 00도 보장이 없고...'라는 이유를 떠올리게 되는데. 우리가 간과한 절대적인 사실이 하나 있다.

하는 것이 더 낫다.

는 진리다.

이유는 없다. 그러니까 이유를 생각해낼 필요도 없다. 그것도 다 에너지다.


2. 하기 싫지만 해야 할 일을 하는 상황을 예쁘게 꾸며본다.

일단 나의 경우는 밖에 나간다. 무조건 나간다. 침대에 누워있는 것만큼 부정적 에너지가 솟아날 때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음료 혹은 한 번도 안 먹어봤지만 궁금했던 음료나 메뉴를 시킨다. 지금 나는 콜드브루 라테를 마시고 있다. 원래라면 아메리카노 샷추가였을텐데. 물론 그냥

욕!!

하는 거랑

☆★욕♡♥♤

이렇게 욕하는 만큼의 차이이긴 하다. 그래도 후자는 웃기기라도 하니까. 엄청나게 좋고 나을 필요 없다. 지금 이 뭐 같은 상황과 기분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으면 성공이다. 괜히 책상 정리를 해봐도 좋고, 커피나 음료를 테이크아웃해봐도 좋다. 당이 떨어질 수 있으니 초콜릿을 잔뜩 사 와서 먹으면서 해도 좋다. 노래를 틀어봐도 좋다.


3. 이럴 때일수록 최후의 나만 남아 있어야 한다. 감정적으로 누군가에게 연락하면 안 된다.

나의 경우 면접이나 시험이 잡히면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는다. 하지만 취준생이 특히 나 같은 장기 취준생이 절대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 부모님. 나보다 걱정하고 나보다 기대한다. 그리고 나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느 회사 어떤 면접을 보러 간다, 는 말을 나는 가장 후회한다. 왜냐면 그 누구보다 내가 잘될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니까. 채용 취소가 되었을 때, 취업이 된 줄 알고 얼싸안았을 두 사람을 생각한다. 나의 소식을 듣고 카카오톡 메시지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몇 번이나 쓰고 지웠을 친구들도 생각한다. 결국 내 전쟁은 나만 남아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들이 그렇게 정성 쏟는 거 실제로 도움 하나도 안된다. 오히려 나만 괴로울 상황,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늘릴 뿐이다. 그냥 초라한 나로 남아서 할 일 하자.


4. 10분만 한다. 그리고 2시간 한다.

일단 앉아서 10분을 한다. 내가 갑자기 FEEL을 받아서 확 집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파악해보자.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 무슨 일을 앞두고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자소서를 쓰거나 인적성을 공부하거나 면접을 준비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진짜 하기 싫고 짜증 나는 상태로 앞에 앉아서 뭐라도 끄적이면서 10분만 버티자, 10분만.. 하고 시작하면 어느새 2시간이 지나서 일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있다. 내가 집중해서 일을 마구마구 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10분 정도인가 보다. 5분인 사람이라면 5분만, 5분만, 20분인 사람은 20분만 해보자. 이걸 어떻게 아냐고요?

일단 2시간 지독하게 해 봅시다. 무조건 2시간 안에는 집중할 수 있다.


5. 좋은 소식은 기대만 하고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 한창 서류 철이라서 자주자주 연락이 온다. 붙는 것도 있지만 떨어지는 게 대다수다. 그래도 기대하게 된다. 남은 기업은 00,00,00인데 얘네는 혹시... 하고 지금 내가 1분에 한 번씩 휴대폰을 보고 있다. 겨우 문자 하나 왔길래 봤더니 구글에서 해외에서 누가 내 비번 해킹을 시도했다는 경고 메시지였다. (누구냐, 내 계정에는 덕질 흔적밖에 없는데. 내 최애가 궁금한가?) 기대는 된다. 기대 없이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너무 목 빠지게 기다리지 말고 할 일이나 하자.


6. 그러나 가끔은 이 감정에 뿌리내려도 괜찮다.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우울한 노래 들으며 울거나 멍 때려도 좋다. 그냥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하자. 하지만 너무 오래 가라앉지는 말자. 내가 가라앉아있는 동안 좋은 일들이 지나갈 수 있다. 카페에서 타임 세일을 할 수도 있다. 좋아하는 배달 음식점이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요일일지도 모른다. 혹은 오늘따라 벚꽃이 예뻤을 수도 있다. 오랜만에 친구가 시간을 내서 만나자고 연락했을 수도 있다. 가라앉아 있으면 이 좋은 일들은 흘러가버린다. 혹은 아무 일 없더라도, 너무 오래 있지 말자. 여러분이 뿌리내린 감정은 인스타의 #mood 같은 gamsung이 아니다. 우울이다. 결국 나를 갉아먹을.



이런 당연한 글을 쓰다니.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도 적고 보니 "그냥 해라"같은 말을 다르게 꾸며서 6번이나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할 일 미루고 있다. 그렇지만 아까 같은 무력감은 없다. 기운을 좀 차렸다.

이미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고민이 필요 없겠지.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주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들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동기부여나 "just do it!"같은 억지로 먹인 설탕 같은 긍정적 메시지가 아니다. 낡아빠지고 너덜너덜해진 맘을 가지고 또 무언가를 해서 미래를 향한 길의 각도를 조금이라도 틀어보는 것. 꼭 미래라는 거창한 생각이 없어도 그냥, 지금보다 나은 지금을 위하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오늘 하루를 마무리할 당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