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가 살고 봐야 남들을 돌봐줄 것 아닙니까.
까라지 뭐, 지들이 날 깠는데.
'젠틀' 혹은 '산뜻'이라는, 한때 내가 원했던 나의 모습을 벗은 순간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인턴 치고는 많은 일을 겪고 최종 채용이 되지 않았을 때, 누구보다 일찍 퇴사를 하면서 맑은 하늘에 회사에 대고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웃었던 그 순간과도 닮은 자유였다.
어느 날 잠이 오질 않았는데 입이 너무 아팠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손으로 얼굴을 더듬다가 기겁했다. 웃고 있었다, 내가. 아니 지금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실망했고, 갑자기 취업 준비생으로 뚝 떨어진 내가 즐거울 리가 없다. 그때 알았다. 나는 습관적으로 억지로 웃으려고 했다.
젠틀하고 여유 있어 보이려는 발버둥이었다. 그러나 낮에는 회사 밤에는 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는 집에서 즉, 사람들로 둘러 싸인 몇 달 동안 억지로 웃었다니.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수밖에.
여유 있고 젠틀한 사람처럼 보이기를 포기했다. 지금 이 상황과 상태인 내가 있을 뿐이다.
누군가가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고 하면, 내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은근슬쩍 거절했다. 젠틀하고 여유 있어 보였던 감정 쓰레기통이 갑자기 다른 곳으로 굴러가니까 몇몇은 실망한 듯 보였다.
실망하라지 뭐 나도 지들한테 실망 많이 했는데.
스스로가 기능으로만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나날이었다. 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던 내가, 힘들어지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예전처럼 듣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 닥쳤고 그들은 내게서 멀어졌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힘든 일이 생기면 틈을 어떻게든 만들어서 내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댔다. 인공지능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 너무 지치고 피곤하고 머리가 아픈데 그런 나를 앉혀놓고 자기들 이야기만 하려는 그들을 보며 나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나에게 기능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내가 지금 고민인 게 있는데 걔가 그러는 거야'
'미안한데'
'응?'
'내가 지금 피곤해서, 네가 알다시피 내가 힘든 일이 있었잖아. 집에 일찍 가야 할 것 같은데'
'어? 어어 그래 그럼 가야지'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들과 멀어지면서 자유를 느꼈다. 몇 년 동안 썼던 '어른스러움', '젠틀하고 여유로운' 나를 버렸다. 체면? 이제 없다. 꼴찌도 해봤겠다. 백수도 됐겠다. 이제 뭐 먹고살지 생각해야지.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상상하면서 굳이 미소 짓지 않는다. 얼굴 근육에 힘을 풀었다. 피곤하면 피곤 한대로, 웃기면 웃긴대로 자연스럽게 두고 있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조금 오버했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남들 사정까지 생각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철저히 나만을 위해서, 내 앞날을 위해서 살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젠틀해 보이기를 그만두었다.
대신, 마음껏 짜증내고 울고 싶을 때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운다. 의아한 눈길을 받으며 술도 마시고, 의외라는 눈길을 받으며 운동도 한다.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언젠가 제 상황이 좋아지면 그대들을 이해하고 보듬을 날도 오겠죠. 일단 제가 좀 살고 보겠습니다. 머릿속으로 그런 사과문을 쓰면서 하지만 사실 별로 반성하지 않으면서,
나는 나를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