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있으면 정확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면 당장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새벽이라면 다시 누우시고.

by chul

기대했던 면접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다른 서류들도 탈락했다는 소식을 한 번에 들은 어느 저녁, 하던 운동을 멈추고 그냥 그대로 누워버렸다. 내 기분이 많이 안 좋아 보였는지 평소에는 내 침대 커튼을 잘만 들추며 얘기하던 룸메들도 조용했다. 그렇게 깜빡 잠들었다. 새벽에, 모두가 자는 그 시간에, 내일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냥 눈을 감은 채로 계속 있고 싶다. 인간관계에서도 시원치 않은 요즘, 잘 되는 일들이 없었다. 분명히 저번 주까지만 해도 상황은 안 좋지만 상태는 좋게 유지했던 것 같은데.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나긴 하는 거야?


하지만 누워있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겠는걸.

욕창 빼고는.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꺼놓았던 알람을 다시 켰다. 내일도 지루하지만 똑같은 하루를 만들어나갈 거라고, 내일 하루만 하루만치 살 거라고 그날만큼만 살아갈 거라고 각오하면서. 비장한 각오 치고는 알람 설정하자마자 잠들어버렸지만 말이다.


6시. 똑같이 일어났다.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날지 두근두근한 아침은 버린 지 오래다. 그저, 오늘 내가 아무것도 안 하면 내일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거라는 두려움에, 좋던 나쁘든 무슨 변화라도 생기길 바라면서 오늘도 무언가를 해내려고 일어났다. 어차피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순 없으니까, 무슨 일을 하든 본전 이상이 일어나리라.

스트레칭을 하고 물을 마시고 간단한 요기를 한 후 커피를 내린다. 신기하게 내 발걸음은 차박차박 소리가 난다. 새벽에, 모두가 잠든 그 새벽에 커피를 내리는 뜨거운 물을 가져오느라 차박차박 거리면서, 이북 리더기 전원을 켰다.

그리고 best 1위인 데일 카네기의 책을 다운로드하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홍대 병이랄까, 반항심이랄까 뭐 그런 게 있어서 유명하거나 유행인 책들은 일부러 유행이 지나가고 몰래 읽곤 했다. 하지만 내 눈에 확 뜨인 데는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나는 이 도서관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 인턴에서 떨어진 한 명이 내가 아니었다면, 서류, 인적성 모두 통과하고 간 그 면접에서 합격했다면. 하지만, 이 생각은 버려야만 한다.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대신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도록 지금 ‘뭐라도 해야 한다.’ 꼭 생산적인 일이 아니어도. 예를 들면 아이패드를 산 내가 이 그림들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처럼.

오늘만, 지금만 살자. 나는 과거의 일을 바꿀 수 없고 미래의 일어날 일을 미리 할 수도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눈앞에 있는 일들뿐이다. 그 일을 조금이라도 활력 있게 할 수 있다면 내 순간은 빛나고 즐거울 것이고, 그렇게 빛나는 순간들이 모여서 빛나는 하루를 만들고 그 하루들이 모여서 빛나고 즐거운 시절을 만들겠지.

뭐, 만들지 않아도 상관없고. (거짓말입니다. 인생 씨 듣고 계시다면 제게 빛나는 미래를 주세요. 저는 속물입니다.)


취업을 위해 서울에서 친구들과 방을 나눠 쓴 지 곧 1년이다. 금방 취업을 해서 나갈 거라고 땅땅거렸지만 장기 거주민이 되어버렸다. 그 1년 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네, 너무 허탈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1년 동안 아주 많이 바뀌었다. 일찍 일어나게 되었고, 활력을 찾는 나만의 방법을 발견했으며, 인턴을 했고, 일이란 것을 겪었고, 사람을 놓는 방법도 알았으며, 운동도 시작해서 몸놀림이 가벼워지게 되었다. 나는 1년 전의 나와 아주 다르다. 1년 전에는 2층 침대와 1층의 룸메의 존재 때문에 화장실도 못 가고 잠도 못 들던 내가 이젠 룸메가 들어오든 불을 켜든 그냥 눕자마자 잠드는 것을 보면, 일단 어디서든 잘 살아갈 튼튼한 적응력은 얻었다고 볼 수 있으니까. 똑같은 하루하루가 다른 미래를 만들어냄을 실감한다. 아이러니하고 신기하다. 나는 내일도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커피를 사서 도서관 자리를 잡으러 나가겠지. 그렇게 미래에 또 무슨 일이 생길 구실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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