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지금’만이 날 구원하였다.

내일과 어제와 차단된 공간에서 살아가기

by chul

데일 카네기의 책을 이제야 읽고 있다. ‘인간 관리론’만큼 유명한 ‘자기 관리론’에는 ‘어제와 내일을 차단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습관’이란 표현이 나온다. ‘공간’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습관’.

그냥 공간이 아니라 어제와 내일이 차단된 그 공간에서 살아’ 남는’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습관.

예전에는, 지금도 자주, 난 어제를 정의하고 내일을 계획해야만 지금에 집중하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모든 어제와 내일에 연결되었고 있어야 할 지금에 나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습관이 생겼고, 이는 내 우울의 근원이 되었다. 지금 내 우울증은 예전만큼 심하진 않다. 누군가가 그 지독한 늪의 깊이를 어떻게 줄였냐고 묻는다면, 기꺼이 날 구원한 건 ‘지금’이라고 말하겠다. 어제의 죄책과 내일의 무계획에 눈을 감고 지금을 바라보았다. 내 과거와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 옆에 있는 사람과 하고 있는 일과 내 상황과 상태만 이기적으로 바라보았다.


사람도 옆에 있는 사람만 보았다. 최근에 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끊겼다. 그 친구는 우울증으로 언제든 죽을 준비가 ready 되어 있는 나를 위해 편지를 보내주었던 친구였다. 그러나 채용 취소와 같은 나의 절망이 어느 순간 귀찮아졌는지 내가 가장 절망한 순간에 나를 무시했다. 과거에 그 친구가 나를 구원해준 건 과거였다. 정말 그뿐이었다. 나는 기꺼이 그의 과거의 은혜를 모른척하고 지금 비가 오니 전을 시켜먹자는 룸메이트와 술잔을 기울였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며 연락을 하는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떨어져 있는 엄마와 아빠에게 보고 싶으니 곧 가겠다고 말하며 차표를 예약했다.


어제와 내일을 차단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면접이었다. 최근에 가고 싶은 기업의 원하던 직무의 최종면접을 봤다. 그전에 타기업 면접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많은 걱정이 되었다. 또 탈락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막막함과, 실제로 인턴 때 전환이 못되어서 혼자 구르던 트라우마까지 떠올랐다. 면접을 보러 지하철을 타면서 나에게 맹세했다. 이 면접을 보고 난 후에 어떤 결과가 예상되더라도, 아직 결과를 받지 못한 지금에 집중하기로. 지금의 나는 나를 잘 달래고 다시 지원할 기업을 찾아보며 기회를 엿보고, 운동을 하며 관리해야 하니까. 막상 면접이 끝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사실, 전혀 잘 되지 않았다. 계속 채용 사이트를 보고, 면접을 다시 보는 꿈을 꾸고, 그러다가 다시 정신 차리고 다른 일을 하고의 반복이었다. 면접을 되돌아보는 것도, 면접 결과를 예상하는 것도 지금의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고통스러운데 왜 계속 고통스러운 행동으로 회귀하는 걸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어제와 내일을 차단한 공간에서 살아야만 했다. 덜 괴롭기 위해서. 그래서 지금 나는 좋아하는 음식을 해 먹고, 좋아하는 카페에 와서 글을 쓰고 있다

어제와 내일을 생각하지 않기보다는 지금을 생각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사람이 끌어안을 수 있는 생각의 개수는 정해져 있으므로(뇌 용량 한계라는 말을 고급스럽게 해 봤다.), 어떤 생각을 밀어내고 싶으면 다른 생각을 끼어넣으면 된다. 그렇게 내 스케쥴러는 요일별로 지원해야 하는 공고들로 가득 찼다. 어디에 닿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 닿을 곳을 물색할 뿐이다.

그런데, 지금이 너무 괴로우면 어쩌지? 그래서 행복했던 어제와 행복할지도 모르는 내일로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래도 난 지금에 뿌리내리고 싶다. 당신께도 함께 뿌리내리자고 감히 권하고 싶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도망치려고 해도 못 도망칠뿐더러, 어제와 내일에 대한 생각까지 더해져서 괴로움이 배가 될 뿐이니까. 욕 나오는 상황인 지금 여기서 함께 살아가자. 지금을 똑바로 보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최소한의 발버둥을 칠 것이고,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지금이 쌓아지면 상황을 벗어나기 쉬워질지도 모른다.

사실 오늘도 어제와 내일을 차단하는 것을 실패했다. 그래도 인식하고 있으니까, 언젠가는 지금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도 투덜거리면서 할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