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삶은 기다림과 행동의 반복 아닐까.

그 타이밍을 잘 아는 것만이 이 생을 잘 사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by chul

뭔가 기다릴 것이 없는데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저번 주까지는 기다려야 할 결과가 있었다. 그 결과들이 나오고 일주일 정도가 지난 지금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봤자 나오는 건 없었다. 그럼 뭘 기다리고 있는 거지? 난 지금 뭘 기다리는 게 아니라 행동을 미루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뭔가를 해야 할 수밖에 없다. 그 변화가 참 아이러니하다. 결국 삶은 ‘기다릴 때’와 ‘행동할 때’의 반복이 아닐까? 그 ‘때’를 적절하게 파악하며 살아가는 것이 ‘잘 산다’는 건가 보다.


고백하자면, 난 기다릴 때가 더 좋다. 행동은 질린다. 워낙 ‘너는 뭘 이렇게 일을 많이 벌리냐’는 얘기를 듣는 사람이라,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삶에서 89%는 행동하느라 바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생각보다 내 행동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랜덤’ 임을 알고 나서 더욱 행동하기를 지쳐했다. 기다리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게 거의 100%지만 (아닐 때도 가끔 있으므로), 행동을 하면 그 에너지 대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너무 자주 일어나니까. 게다가 누군가의 손가락질이나 클릭 하나만으로 내 최선의 행동으로는 얻을 수 없는 크기의 결과가 걸려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삶의 주인이 정말 나인지 의심스러워졌다. 이 의심은 내 발걸음을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느려지다 못해서 발을 디디는 것 자체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내가 변화될 수 있을까? 이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결국 변화나 탈출을 위해서는 기다림보다는 미친 듯이 무엇이라도 해내며 성실하게 그 행동의 대가를 받아내는 것만이 정답임을 나도 알고 있다. 그걸 떠올리면 또다시 질리다가도, 질린 표정으로, 지친 어깨로 한숨 한번 쉬며 발을 내딛고 만다.

모순투성이다. 모든 사람들이 날 망칠 순 있지만 그 누구도 날 구원할 수는 없었다. 결국 내가 만들어내고 행동한 일상과 약간의 도전만이 길고 가늘게 나를 구원하였다. 아, 그리고 그 모든 행동의 시작은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다.’ 혹은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불만이다. 참 재미있다. 나는 항상 불만이 많아서 여러 어른들에게 ‘너는 뭐가 그리 불만이야’라는 말을 듣고 살았는데, 결국 날 변하게 하는 건 불만이다. 불만이 나를 행동하게 하고 그 행동이 나와 내 일상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는 구원의 시작이다. 지금은 많은 걸 바라진 않는다. 그저 지금과 같이 살고 싶지 않고, 다른 일상을 원한다. 다른 생활환경을 원한다. 다르기만 하면 된다. 지금이 최악일 경우 ‘변화=무조건 지금보다 나음’이 성립된다는 게 유일하게 좋은 점이다.

기다려도 올 소식이 없을 때는 행동해야 할 때다. 행동해야 하는 이유는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시간이 해결해주지만 행동과 변화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으니까. 지나가는 시간을 너무 신뢰하지 않고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내어야 한다. 머릿속에 ‘내가 뭘 더했어야 했지’와 ‘지금 뭘 할 수 있지’로 가득 차 있다. 일단 배달 어플을 삭제하고 장을 봤다. 조금은 건강해지겠지. 이제 두드러기가 날 일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