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조각 모아가는 시간

멋있게 표현했지만 그냥 궁상떠는 중

by chul
어디서 오신 거예요?

혼자 조용히 있고 싶던 바닷가 카페에서 사장님이 말을 거셨다.


A에서 왔어요.
핫플레이스에서 왔네요.
대학이 그 근처여서요, 지금은 졸업했지만 아직 거기 살아요.
그렇군요. A에서 사셨으면, B빌딩을 아시겠네요,
거기 워낙 빌딩이 자주 세워져서…
아, 제가 작년까지 그 공사현장에서 일했거든요, 자재 나르고, 그러니까 막일이죠 하하. 그런데 지금은 카페 사장이죠 이렇게 럭셔리한 곳에서 음료 내리고 책 읽고….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겠죠?
아, 제가 좀… 죽을상이었나 봐요.
네 하하. 그래서 저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버렸네요 하하. 무엇이 걱정이신지 모르겠지만, 너무 진지하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어요.


내 최고의 궁상은 인턴에서 정규직 전환이 되지 못했던 때, 받은 월급으로 다짜고짜 강릉 바다를 갔을 때였다. 눈바람이 치고 있었다. 눈이 발목까지 차올랐고 눈앞은 안 보이고 길은 잃었고 혼자서 눈밭에서 커피 한 잔을 찾아 지도도 안 보고 하염없이 걸으면서,


이렇게 눈보라 안에서 죽을 바에야 자소서 100개 쓰겠습니다 하나님.


하며 자연의 힘에 굴복하는 초라한 영장류가 되었다. 눈을 털며 바닷가 카페에서 혼자 멍 때리고 있는 사람에게서 사장님은 무언가를 감지하신 걸까. 아직도 그 순간이 기억난다. 일단 오해다. 죽고 싶었다면 그 눈보라를 떨어서 카페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답지 않게 커피가 아닌 에이드를 시켰던 기억도 난다.


요즘 할 수 있는 궁상이란 궁상은 다 떨어보고 싶다. 친구들에게 힘든 시간을 지내는 나름의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고 있다. 포인트는 힘든 시간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지내는’ 방법이다.


야 너 요즘 왜 이렇게 궁상을 많이 떨어서 술 마시지 마라고.
하이볼 같이 안 마실래?
난 소주파야 아니 넌 그만 마셔.
그래? 넌 소주파야? 소주는 어떻게 마셔야 맛있는데?


요즘 추가된 새로운 궁상은 ‘하이볼 맛집 찾기’이다. 칵테일을 잘 알던 한 친구는 내게 여기저기 새로운 술을 보여주는 재미가 들렸다.


생각해보면 각 잡고 궁상을 떨어본 적이 없다. 항상 빠르게 회복해서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했고, 대학생 때나 인턴을 할 때까지는 주변에서 일이 쏟아졌다. 정신적 방황을 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고, 제발 쉬게 해 줘, 라며 강의실과 강의실 사이를 뛰어다니며 과자를 밥 대신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치,

이번에 마음껏 방황하게 해 주겠다,

라고 말하는 듯한 시간과 일들이 생겼다. 지금까지 미뤄왔던 방황을 할 수 있나 보다. 옳거니, 그럼 아주 궁상을 지지리도 떨어주지. 궁상을 떠는 시간은 어떻게든 이 시간과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명력 있는 방황이자 저항이기도 해서, 난 요즘 아주 살아있음을 잘 느끼고 있다.


나는 요즘따라 더 경험이란 의미 없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뭐든 해보는 거지. 다음 시험까지 난 시간이 좀 있으니까 마음껏 늦잠 잘 거야. 밖에 아예 안 나가보려고. 그만 도서관 가고 싶다.


최근에 시험을 친 친구의 궁상은 밖에 안 나가기란다. 그것도 내가 해보지 않은 방법이다. 실제로 나도 너무 밖에 자주 나가기도 하고. 한 번은 집안에만 있어봐야겠다. 또 하나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가고 싶던 전시회들과 다른 곳들도 지금 기록 중이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갈 곳이다.


++



여러분들은 힘든 시간을 어떻게 지내셨나요? 궁상을 떠는 나름의 방법이 있으신가요? 덧글이나 폼으로 간단하게 제게 알려주고 가시면 제가 지금 하나씩 해보고 후기 글을 올려보려고요 ㅎㅎ

https://forms.gle/3vNa2ZF6GYGdPecF7

폼으로 익명으로 적으셔도 좋지만, 메일 주소 같은 거 적어주시면 랜덤 퀄리티의 그림 그려서 보내드릴게요(퀄리티 너무 기대하진 마시고요 그냥 간단한 그림이 갈 예정입니다. + 언제 갈 지도 몰라요, 제 존재를 잊을때쯤 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