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도전은 수습이었고, 시련은 소스였다.

내겐 무겁고 멋진 단어들을 별 거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이 있다.

by chul

친구나 연장자들에게 도전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다. 도전이란,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면접 때, 혹은 인성검사 때 너무 많이 써서, 이젠 쓰면 너무 어색해지는 단어가 되었다. 나는 도전적이지도 않고 열정적이진 않다. 나의 도전은 시도나 탐험 같은 우리가 익히 아는 도전의 느낌과는 다르다. 지르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하고 싶지 않고, 걱정되고, 불안하고, 할 줄 모르는 그 많은 도전 하면 안 되는 생각들을 정리해서, 결론을 내서 “좋아 도전하자!”하고 도전하는 게 아니다.

아씨, 할까 말까. 어떻게 할까. 궁금하긴 한데 나 이거 할 줄 모르는데. 아 어쩌지. 하는 동안 그냥 손가락이 신청 버튼을 눌러버린다 실수인 척하고. 그럼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은 전부 그냥 눌러버린 그 행동을 반성하며 수습하는 일뿐이다.


최근에 이틀 연속으로 친구를 만났다. 나와 비슷하게 이것저것 시도하는 친구를 만났고 그다음 날은 여러 사정으로 날을 세우고 그 무엇도 하지 않으려는 친구를 만났다. 그래서 더욱 알 수 있었다.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의 차이가 없음을. 나도, 첫날 친구도 무섭기는 매한가지. 그 불안함과 무서움을 극복해서 시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저질러보고 뼈저리게 힘들어하면서 수습하는 그 과정을 다른 사람들이 ‘도전’이라고 부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도전을 한다는 칭찬을 견디기가 힘들다.

그렇게 생각해보게 되는 ‘도전’. 내 삶에서 도전이 시사하는 바는 두 가지다.



첫째, 결국 나에게 도전이란, 정말 아닌 것들을 깨닫고 이들을 배제하는 과정이었다.


우리가 이것저것 시도해서 얻은 것은 인생의 진리라던가, 천직이라던가, 멋진 인맥 같은 게 아니다.

이건 진짜 나랑 안 맞는구나.

라는 빅데이터를 쌓아서 점점 배제하다 보니 약간의 방향이 남았다. 정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멋진 기획을 가지고 방향을 설정해서 열정 있게 나아가는 대부분의 도전과 다르게 나에게 도전이란 (이 단어의 사용이 너무 어색하다, 시도 정도가 맞는 단어 같다.) 겨우 그 정도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참고를 했고, 그 당시 내 길이라고 생각했던 기계공학을 전공한 나는 지금 개발, 기획,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으며, 비슷한 단계로 전과를 하고 공무원을 준비하려던 그 친구는 베이킹과 공방을 계획하고 있다. 사실 둘 다 알고 있다. 우리 둘 다 어렸을 때부터 후자를 하고 싶어 했음을.

다만, 주변에서는 더 안정적이고 직장을 잘 잡을만한 일들을 추천해줬으며 기껏해야 교복을 졸업하던 우리도 그에 동의하면서 일단 그 길을 갔다. 그리고 그게 ‘아님’을 알게 되었고 이것저것 해보았다. ‘아님’이 쌓였다. 그래서 덩그러니 남았던 것이 결국 시작과 같았다. 얼굴을 마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린 결국 이거 하고 싶어서, 다른 것들은 영 우리에게 아니어서 그거 아니라고 증명하려고 그 많은 도전을 해댄 거였다.

둘째, 시련에 배꼽을 잡고 웃을 수 있다면 실패는 그냥 소스가 될 뿐이었다.

바다를 보러 가자며 다짜고짜 경차를 몰고 부산으로 향했던 우리는 당연하게 길을 헤매었다. 내비게이션의 말을 듣고 감도 믿고 이것저것 열심히 길을 찾았고 ‘길 없음!’이라고 적힌 표지판 앞에 서게 되었다. 1시간이 넘게 헤매었고, 밥도 못 먹었으며 차를 빼기도 힘든 그 골목에서 ‘길 없음!’ 표지판을 발견한 우리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웃으며 그 망한 상황의 인증샷을 찍었다.


멋진 카페와 맛있는 음식, 환상적인 바다에서 거의 50장이 되어가는 사진을 건졌지만 나와 친구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길 없음!’ 표지판이다.

도전을 해서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의외로 클지도 작을지도 모른다. 예측할만한 기반이 내겐 없다. 그냥 시련이 오면 어이없어서 웃을 뿐이었다.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나의 수많은 행동 중 하나가 있다. 무언가가 뒤틀리거나 잘 안되면 “오오~망했다~망했는데~~”하는 감탄을 하는 행동이다. 말의 힘을 믿고 예쁜 말을 좋아하는 엄마는 그럴수록 “잘될 거야”라는 말을 하라곤 하지만, 일단 망한 건 망한 거다.

망했다니까? 이왕 망한 거 제대로 망해야 제대로 복구할 수 있다. 그리고 말이란 게 신기해서, 내뱉고 나면 사실이 되어버리고 인정하게 된다. 망했다. 진짜 망했다. 망해도 이렇게 망하냐 어이없네. 이렇게 중얼거리다 보면 “어떻게 하지?”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이렇게 해보자”로 바뀌게 된다.

내 심정이 곱지 않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만, 예쁜 말을 많이 많이 해서 억지로 긍정적이게 생각해보려는 자세가 잘 안 잡힌다. 지금은 그저, 덜 불행하고 덜 비참하게 , 망했지만 망한 게 아니게 하는 쪽이 내 방식이다.

도전과 열정은 그저 “아닌 것”들을 찾아서 배제하는 공구일 뿐이다.

불행과 시련은 그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덜렁, 걸릴 뿐이다.


미디어에서, 주변에서 말하는 그 대단한 단어들이 내 인생에서는 별 거 아니게 됨을 볼 때마다 당황스럽긴 하다. 대단한 사람이 될 생각도, 멋진 일로 세상에 한 획을 그을 계획도 없다. 윗세대가 어이없어하는 MZ세대들이 한심해하는 mz. 자소서를 몇십 개씩 쓰는 것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면접 기회만 얻으면 되고, 그게 가십거리가 되어도 타격이 되진 않는다. 그러지 않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trial and error. 시도하고 오류 발견하고 수정하고. 코딩 같은 과정을 콧바람이나 튕기며 반복한다. 그런 단순 반복을 사람들이 ‘도전적’이라고 표현해줘서, 머쓱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