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미련하고 안쓰러운 사람이 되면 어때.

그들의 비웃음은 우리에게 그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by chul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S카페에 가서 히비스커스 티백 세트를 샀다. 오늘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무언가를 잔잔하게 내려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터덜터덜터벅터벅한 내 발걸음마저 내 편이 아닌 듯한 날이었다. 며칠 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계속 통화를 했다. 불안했고, 응원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꽤 험한 취급을 받은 나날이었고, 그 원인에 아직 잘 풀리지 못한 내 상태가 있어서 힘이 빠졌다. 내가 아직 이런 사람이기에 저런 취급을 받는구나, 평소라면 넘길만한 모든 이야기도 내 어깨를 쳐지게 했다.


예전에 있던 곳에서 나를 불쌍하게 만드는 헛소문이 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말을 전해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매거진에서 얘기해보겠다.) 이제 그 자리에 없는 사람, 없어진 지 몇 년이 지난 사람을 왜 굳이 굳이 꺼내 쓰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자리에 없어서 반박을 할 수도 없다. 참으로 비겁하다. 비겁한 그들보다 비참한 내가 더 싫었다. 헛소문이 도는 근원은 내가 ‘아직 자리잡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외롭고 고될수록 남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려고 한다. 부정적인 감정뿐 아니라, 의지와 같은 긍정적인 힘도 받지 않는다. 그 누구도 온전히 내 편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면접에 떨어지고, 유일하게 전환되지 못한 인턴이 되었을 때도 망가진 내 마음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했음을 후회한다. 그냥 마음껏 무너져 내리고 진상짓을 할걸. 내가 어떤 비극을 맞든(이젠 그냥 에피소드가 되어버렸지만)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내가 원하는 100%의 위로를 바라선 안된다.


그러니까, 반대로. 그들의 비웃음 또한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 괜히 ‘그 사람들에게 안쓰럽게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냥 기꺼이 ‘안 된 사람, 미련한 사람,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사람’을 맡겠다.

올해 가기 전에 자소서를 50개 정도 써보려고 한다. 졸업을 한 지 좀 되어서 승률이 30% 정도니까, 올해 가기 전에 면접을 20개는 잡아보겠다. 이럴 때마다 듣는 말이 있다. 남에게서도, 그리고 내심 나 자신에게서도,

‘그렇게 겨우겨우 했다고? 남들은 저 정도까진 안 하는데’라고.


나 또한 운이 좋고, 노력에 비해 실력이 받쳐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다는 말은, 미련하고 무능력하다는 증거 같아서 도망쳐왔다. 지금은, 뭐. 그렇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오.

조금 서툴고 느리고 잘 안되어도 일단 ‘굳이 저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나를 위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남들은 그렇게까지 안 해도, 나는 해야겠다. 기꺼이 ‘그런 사람’이 되었고, 되고 있고, 앞으로도 될 것이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 사람들은 여전히 부럽지만, 그게 내가 아니니까. 좀 미련하고 안쓰러우면 어때, 이렇게까지 하는 나 자신이 내가 보기엔 아주 나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