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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Dec 05. 2021

내가 거리를 두는 두 사람.

감정 쓰레기통과 한심해서 안심하는 이야기.

연말이 되어서인지, 그냥 타이밍이 좋아서인지. 올해 인간관계에 대한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나는 현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두 가지 사람의 경우는 꼭 조심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첫 번째는 ‘자신의 불행을 매력으로 다가오는 사람’, 두 번째는 ‘가장 가까이 있지만 나의 적인 사람’이다. 이 둘의 공통점이 있다. 상대방은 나를 자기보다 낮게 보고 있으며, 나는 상대방이 나로 인해 나아질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 당신의 불행은 매력이 아닙니다. : 감정 쓰레기통 이야기.


누구나 불행은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패턴이 항상 같았다. 만난 지 일주일도 (일주일이면 길다 첫 만남에 이러는 사람도 있었다) 안 되었는데 가정사나 자신의 트라우마를 갑자기 ‘던진다.’ 정말 힘들어서, 누구에게라도 얘기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던진다’. 할 수 있는 반응은 안절부절밖에 없도록.

몇 번 만나다 보면 이 사람이 안쓰러움을 무기로 나를 묶어두려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힘들어서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는 사람인지 보인다.

그 기준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자신의 이야기로 돌리는지’이다. 힘든 이야기로 그 사람이 시작했을 때, 나도 힘든 일을 말하는데 내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 혹은

‘너는 그나마 낫지, 나는…’하며 끊는다?


그럼 안타깝지만, 당신은 그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잘 걸린 셈이다.                                                             

그 사람이 정말 좋다면,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감정 쓰레기통으로 있어줘도 된다. 그렇지만, 나는 이걸 봉사라고 감히 말하겠다. 돌아오는 건 없다. 절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질 것이며 나중에 당신이 의견을 말한다면, 그에겐 그냥 무생물이 갑자기 반기를 드는 셈이다. 놀라거나 화를 낸다. 너는 내 이야기만 닥치고 들어주면 돼. 그냥 내 편이나 들란 말이야. 그게 그의 솔직한 마음이다.


그 친구, 정말 당신을 친구로 보고 있을까? 몇 개월 연락을 끊어보자. 그리고 그에게 오는 연락이 무엇인지 보라. 갑자기 연락이 끊긴 당신을 걱정하는 것인지, 그저 또 던질 불행이 생긴 것인지.

그 이후의 행동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답은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사실 적일 때 : 결국 내가 잘 사는 이야기.


부모님이 가스 라이팅을 할 때도, 친구가 잘 되어버려서 질투로 축하하지 못할 때도 아니다. 훨씬 더 악질인 경우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솔직하게 요약하자면,

그는 당신의 절망으로 안심한다.


이 경우는 나도 정말 최근에 깨달았다. 아주 가깝고, 고맙고, 잘해준 친구라서, 몇 년을 그 친구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변했다. 잘 지내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일을 시작하고, 취준생이라서 자격지심으로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링크드인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공고에 대해서 철판 깔고 물어보고, 헬스를 시작했고, 새로운 공부에 집중했다. 꼭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모님께 염치 불고하고 꼭 갚겠다며 부탁해서 좋은 물건을 샀다.

나를 위한 투자를, 나와 주변의 도움으로 가속도를 높이기 시작하자, 그 친구가 불안해했다. 좋은 물건을 사면 ‘거지가 돈이 어디서 났냐, 누가 사줬냐’라며 하루 종일 괴롭혔고, 친구를 만나러 가면 ‘친구가 왜 이리 많냐’며 내가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나를 따돌리는 약속을 대놓고 잡았다. 다른 친구들이 당황하며 나를 언급하면,‘쟤는 친구 많으니까’라며 묵살시켰다.


덕분에 나는 정이 떨어져서 그 약속을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 친구가 약속을 제안해도 돈이 없다며, 식단 중이라고 거절했다.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누군가와 놀러 가거나 먹은 음식 사진이 올라오면 바꾸자마자 바로 ‘돈도 없다면서 저건 어디서 누구랑 먹었냐’며 닦달했다.

어느 순간부터 집착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친구는 내가 누군가와 식당을 예약해서 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식당의 예약 스케줄을 찾아봤고, 친구 집이나 본가에 가서 외박을 한다고 하면 술에 취해 새벽에 전화를 걸었다. (자느라 못 받았다)


지금 내게 직접적으로 오는 행동은 없다. 나보다 더 빨리, 그 친구가 알아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나 자신에게 신경 쓰느라 내 머릿속에 그의 존재가 거의 없어졌음을. 그 친구는 나에게서 빠르게 멀어졌다. 이젠 나에게 그 어떤 영향도 못 끼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조금씩 흘리고 있다. 흠, 안타깝게도 나의 인간관계가 좁은 편은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 언론 플레이를 해도 큰 영향은 없다.


나도 안다. 두 경우 모두, 당사자가 제일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임을. 내가 조금만 강했어도,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으면, 기꺼이 감정 쓰레기통 정도는 되어주고 싶고, 심술도 받아주고 싶다.

그 정도로 강한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일단 나는 아니다. 아마 평생 아닐 것이다.

단호해질 필요는 없다. 걱정 말자, 단호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탓하지 말자. 알아챈 순간, 곧 당신은 그들에게서 정이 떨어질 순간이 온다.

이 두 가지 경우가 참 특이한 이유가 있다. 당신이 끊으면 끝나는 관계라는 점이다. 관계는 한쪽이 끊어낸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위의 두 가지 경우는 상대방에게 당신은 없다. 당신에게 상대방이 있을 뿐이다.

당신 아니어도 그들은 다음 상대를 찾아 헤맨다. 당신이 딱히 특별해서, 잘못해서, 멍청해서 걸린 게 아니다.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요즘 유행하는 손절이란 단어를 싫어한다.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연락을 주고받지만,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다. 지인의 정도로 두고 있다. 서로에게 트라우마를 주면서 관계를 끝낼 필요는 없으니까. 나중에 만났을 때, 진심으로 웃으며 인사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그게 나에게 있어서 가장 완벽한 관계의 마무리다. 그때 그도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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