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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Oct 27. 2021

친절하지만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 된 이야기.

딱히 약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약통 안에 든 젤리 같은 팁들.

약 같지만 젤리인, 그런 글입니다.

지금까지는 깊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만 해 왔는데 오늘은 넓고 얕은, ‘지인’ 정도의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인맥관리가 아니라 아주 주관적이고 내 경험에 기초한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최근에 후배를 만났는데, 자기는 착하다는 말이 싫다고 한다. 자기는 실제로 굉장히 강하다며(물론 이런 조바심이 넘치는 강함 주장이 사실인 경우는 잘 없다.) 나쁜 사람이라고. 갑자기 자신이 빌런임을 고백하는 그 친구에게,

어어, 00 이는 강단 있지. 줏대도 있고.

하고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자 솔직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신은 그저 친절하게 대했을 뿐인데 점점 사람들이 자기를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그 이야기는 나 또한 매우 공감하고 최근까지 고민했었다. 나의 친절함을 만만함으로 만들고, 나의 친근함을 우스움으로 만드는 타인에 대한 불만이었다. 당연히 잘 지내고 싶고, 잘해주고 싶은 게 천성이 보통인 사람들의 본능이다. 그런데 이걸 또 만만한 사람으로 보면서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들이 생긴다. 나의 경우, 동갑이나 연장자들과의 관계는 그렇게 불만이 없었지만 나보다 몇 살씩 어린 사람들을 대하는 게 힘들었다. 동생이 있고, 첫째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이기에, 두 살 이상 어린 사람들에게 과하게 친근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생긴 만만함과 친절함 그 선에 대한 나의 ‘아직까지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함부로 대한 사람이 잘못했음을 잊지 말자.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들을 만만하다고, 자기보다 한 수 아래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아주 많다. 우리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신이 잘못해서, 문제가 있어서 이 사람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무례하게 대한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무례함과 상처를 줄 권리가 없다. 아마 그 사람들에게 ‘그런데 왜 나한테 이렇게 무례하게 대해?’라고 물어보면 10에 10은 대답을 못한다. 몰랐을 것이고 의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째, 물어보자 혹은 반응하자. 반격은 안 해도 된다.

예전에 많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연하의 사람과 같이 산 적이 있다. 그는 설거지를 항상 하지 않고 나갔고 그 뒤에 밥을 먹는 내가 설거지를 다 하고 나가야 했다. 한두 번은 죄송하다, 설거지해줘서 고맙다, 이러더니 이젠 아예 당연스럽게 두고 나갔다. 보다 못해서 개인 메시지로 “00아~여러 번 얘기해서 미안한데, 설거지는 해주고 나갔으면 좋겠어!” 라며 최대한 좋게 이야기를 했다. 늘 많은 이모티콘과 ㅎㅎ,ㅋㅋ, 의 향언으로 이야기하던 그 친구는 갑자기

예 죄송해요.

라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 왜 친절하게 이야기해준 사람한테 불만을 드러내는 걸까? 심지어 나는 그가 어리다는 이유로 나름의 배려를 해 준 톡이었는데. 그래서 한번 쿡, 눌러봤다.

어이쿠, 갑자기 딱딱하게 답이 오니까 당황스럽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미안하다며 자기가 수업 중이어서 급하게 톡을 보내느라 어쩌고 하는 핑계를 댔다. 그 이후로 나는 그의 설거지를 대신하지 않았다. 후에 공용 용품을 따로 하나 더 사서 아예 겹치지 않게 했다. 

셋째, 굳이 웃고 있을 필요는 없다.

이건 나와 같이 가만히 있으면 정색하는 게 무섭고 표정이 굳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 사람들의 주된 고민이다. 별 생각이 없는데 타인은 내가 무섭다고 한다. 눈매가 날카롭거나, 목소리가 낮거나, 말투가 짧거나. 그 모든 집합체가 나다. 

그래서 나는 유독 많이 웃었다. 안 웃겨도 미소를 계속 뗬으며, 제안을 할 때도 조심스럽게 농담을 던지면서 했다. 그랬더니 팀 프로젝트에서 무시를 당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유일한 여학생이자 막내인데, 맨날 실실 웃고만 있으니 의견조차 묵살당하거나 말할 때 잘리곤 했다.

그래서, 웃지 않았다. 웃기면 웃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 분위기가 무거워질까 봐 웃는 것도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오만상을 쓴 건 아니다. 편하게 모든 얼굴 긴장을 풀고, 제안사항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이번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앞으론 없도록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이 논하고 싶어. 팀원들도 노력했는데 허무하잖아. 그리고, 팀원 말하는데 말 자르지 마. 존중해줘. 그렇지 않으면 누가 이야기하겠어?

이 웃지 않는 게 편할 때가 있는데, 일단 얼굴 경련이 안 일어난다. 집에서처럼 밖에서도 편하게 다닐 수 있다.


넷째, 호칭으로 우리 관계를 일깨워주자.

위에서 예시로 든 내 말 중, 나는 ‘팀원’이란 단어를 썼다. ‘나’ 혹은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란 단어도 좋지만 조금 더 우리의 관계가 드러나는 단어를 사용했다. 1인칭이나 2인칭을 3인칭으로 하면 서로의 관계가 부각된다. 누군가는 정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경우는 우리를 지키는 상황이라는 가정이니까 너른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이 방법은 어머니에게서 전수받았다. 내가 첫째임에도 둘째인 친척동생보다 더 어린 친척동생들이 함부로 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론 이렇게 해보라고 하셨다.

1인칭 -언니(혹은 누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날 경우) 2인칭- 00(상대방 이름)

나는 연하의 지인에게 ‘너’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너’는 철저히 동갑이나 친동생에게만 허락한다.

응, 그렇지, 00 이는 그러면 내일 일정이 어떻게 돼?
그럼 00 씨랑 나랑 가면 되겠네, 그렇죠?

동갑이나 친동생에게는 ‘내일 뭐함’/'나랑 가.'라고 할 말이 저렇게 길어진다. 훨씬 친절하게 들리겠지만 의외로 이게 안전거리를 지켜준다. 예의를 차린다는 느낌과 연장자라는 느낌을 동시에 준다. 멋진 팁 전수 고마워요, mom!



다섯째, 미안해하지 말고 고마워하자.


친구들이랑 살고, 방을 나눠 쓰다 보니 부탁할 일이 많다. 특히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웬만한 20대들과는 정반대의 시간대를 달린다. 나도 일찍 일어나서 그들이 잘 때는 거실에 나와서 할 일을 하기 때문에, 내가 잘 때 밖에서 할 일을 해달라는 정당화가 있다. 이런 정당화가 있음을 잊지 말고, 당당하게 부탁한다.

미안한데, 곧 잘 거라서 밖으로 나가줄래? 정말 미안해. 예전에는 이랬다.

지금은 괜히 방을 치운다 이빨을 닦고 침구를 정리하고 책상을 정리한다. 그러면 룸메가 묻는다. 자게? 응. 그럼 난 나갈까?

먼저 잘게! 고마워~

그리고 푹 잔다. 예전에 미안해했을 때는 룸메가 왔다 갔다 하는 소리에도 깼는데 지금은 룸메가 잠깐 와서 휴대폰 라이트로 뭘 찾고 문을 닫고 창문을 여닫아도 꿈도 안 꾸고 잘 잔다. 뭐든지 본인에게 제일 편해야 함을 잊어선 안된다. 불만이 있으면 상대방이 이야기할 것이고, 그때 미안해하면 된다.

마지막, 연장자랑은요? 나도 모른다. 그런데 의외로 내가 연장자(나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모든 사람)에게 꽤 인기가 많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고수하고 있는 태도가 있다.

'나는 잘 모르고 경험도 없으니 당신이 가르쳐준다면 납득해보려고 노력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정 이해를 못 하는건 제가 아직 어려서라고 생각해주십시오.'

누구나 나와 같았던 때가 있었다고 믿는다. 나와 정말 같은 환경이 아니어도, 적어도 교복 입고 불편했던 경험 정도는, 부모님과 의견이 맞지 않아 투닥거렸던 미숙했던 때는 있을 테니까. 

이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내 실수를 눈감아줬고 그래서 실수투성이었던 내가 무난하게 지금의 나이까지 도달했을 테니까. 선을 넘지 않는 한에서 나의 자리를 만들면 된다.


친절할 때, 스스로가 헷갈린다면 이 말을 기억하자.

사람들에게 친절하십시오. 그러나 그들은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지는 마십시오.
-우 조티카 

결국 남 신경 쓰는 건 배려까지만, 그 이상은 눈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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