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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Oct 26. 2021

너를 다 안다는 착각이 주는 안정을 좋아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다 모른다는 사실이 주는 불안을 받아들였어


그 친구를 다 안다는 착각에서 오는 안정을 사랑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그만큼 특별한 사이이길 바랬고, 내가 좋아하는 만큼, 그들도 날 좋아해야 하는데, 그쪽에선 그렇지 않았다. 그 공허함을 메꾸려고 정보가 많은 만큼 안심했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모르는 면에 기꺼이 실망하고, 기꺼이 호기심을 가지며,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의외의 모습이 계속 있다는 사실도 같이 받아들였다. 내가 누군가를 덜 좋아하고 더 좋아하는 만큼, 누군가에게 나도 우선순위가 천차만별이었다. 게다가 그 방향은 쌍방일 때가 드물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자주 바꾸는 편이다. 별 의미는 없다. 나는 남들의 프로필 사진을 거의 안보거니와, 그래서 그들도 내 것을 안 본다는 착각(?)으로 그냥 내 기준 예쁜 사진으로 바꾼다. 모두가 그렇듯이 카카오톡을 쓰는 도중에 자신의 프로필은 안 보이므로 나는 더욱 내 프로필에 의미가 두어지지 않는다.

보통 놀러 가거나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기념으로 찍은 사진을 올리곤 하는데, 바꿀 때마다 누구랑 갔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이 가끔 있다. 그중에는 날이 선 말투로.

나한테 쓸 시간과 돈은 없으면서 프사 보면 맨날 놀러 가네?

라는 섬뜩한 화를 내는 지인도 있었다. 이봐요, 내 돈과 내 시간인데 왜 화를 내시는지…?


나 또한 누군가를 가장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과정에서 아무도 주지 않은 배신감을 멋대로 느낀 적이 많기에 이해가 간다. 내가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듯이, 그들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인지는… 확신이 없지만. 하지만 비슷한 상태(?)를 어렸을 때 먼저 겪은 사람으로서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어떤 관계도, 서로에 대해서 다 알 수는 없다. 특히 친구의 경우 내가 가장 그를 잘 아는 사람이 될 수조차 없다.


고향에 오랜만에 갔을 때 피곤하고 쉬고 싶은 그 상황에서 보고 싶은 친구들의 순위도 있길 마련이다. 나 또한 내가 우선순위가 아님에 분노했던 적이 있고, 슬퍼했던 적도 있다. 그래도 서로의 우선순위는 변하지 않았다. 인연이 아니면 이어지지 않는 건 연애뿐이 아니다. 모든 연이 그렇다.

또한, 누군가를 잘 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특별한 사람이거나 가장 친한 사람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그만큼 나를 좋아하진 않는다는 그 공허함을 그에 대한 정보량으로 채우려는 건 무의미하고,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나는 그를 다 모른다는 불안을 쌓다 보면 모순적이게도 그게 안정적인 탑이 된다.

내가 굉장히 좋아했던 친구 1은, 최근에 연락이 거의 없었다. 심심하면 산책을 하자고 했으며 함께 깊은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내가 연락해도 한번 보자는 말이 이어지질 않았다. 그러다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그를 만났는데 애인이 생겼단다. 아, 그는 애인이 생기면 친구를 등한시하는 면이 있었구나. 혹은 내가 그 애인보다 훨씬 덜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구나. 섭섭하다. 씁쓸하기도 하고. 보고 싶을 때도 그 부분이 생각나서 연락을 주저하게 된다. 그럼 이 관계는 뭐다?

그런 관계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그 친구가 애인을 더 좋아한다고 해서 우정을 배신하는 나쁜 사람도 아니고, 나의 짝우정이 눈물 나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냥 한쪽이 애인이 생겨서 조금 멀어진 관계. 아마 내가 조금 더 질척이겠지, 나는 그 친구와 있는 게 즐거우니까. 그럼 플러스로 내가 조금 더 보고 싶은 관계다.

사람들은 의외로 많은 걸 알고 있어서, 한쪽이 안절부절못하면 이를 기막히게 눈치챈다. 내 경우에도 안절부절못하고 혼자 긴장했던 관계는 좋게 이어진 적이 없었다. 상대방이 나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꽤 기막히게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싫다고? 나 되게 친구로 두기 좋은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라며, 정을 조금씩 떨어트리곤 한다. 그러면 어느새 또 다른 누군가에게 눈길이 가게 되고, 운이 좋아서 우리 둘의 서로에 대한 관심의 크기가 비슷하면 오래 친해지기도 한다. 나는 그가 내가 예상도 못한 시기에 나를 떠날 것을 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래 왔듯이. 그런 불안한 사실이 쌓여서 사이가 좋은 지금이 우리의 전성기임을 굳게 믿게 되고, 그래서 더 눈앞의 사람에 집중하게 된다. 같이 있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감사하며 커피 한 잔, 술 한잔 기울이며 지금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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