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내가 올해 그만둔 것들.

현문우답 두번째. Q: 연말인데 어떻게 올해를 돌아보고 있나요?

by chul

현문우답 두 번째.

Q: 연말인데 올해를 어떻게 돌아보고 계신가요?
A: 연말 맞아 제가 그만둔 거 몇 가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올해는 제게 여러모로 재미있고 의미 있는 해였습니다. 환장할만한 일이란 일은 다 일어난 것 같아요. 동시에 뻔뻔해졌고, 대범해졌고. 객관적으로 저 같은 자식은 안 갖고 싶기에 부모님께 죄송하고 감사한 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태어난 건 부모님 책임이니 어쩌겠습니까. 감사하게도 절 버티세요 엄마 아빠.


내려놓은 게 많은 한 해였습니다. 제 삶을 (비록 제가 아직 반백수지만) 훨씬 쉽고 살아갈 맛이 나게 만들어준 ‘그만둠’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전한 내 편 만들거나 찾기를 그만두다.


정확히는, 내 편이기를 기대하는 걸 그만두었습니다. 특히 가족에게 요.

저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가족은 신기하게 친구보다 더 개인적인 입장이 없는 관계 같아요. 제 착각이죠. 하지만 결국 제 문제는 저만이 해결할 수 있고, 그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도와주는 어머니와 아버지도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한 문제와 방법만을 갖고 있습니다. 친구끼리라면 냉정히 말해서 이익을 따졌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가족은 그건 아닌 거 같고. 문제를 해결하길 바라는 마음은 (어머니 표현으로는) 저 자신보다 어머니의 바람이 더 클지도 모르지만, 결국 타인의 입장의 해결방법과 감정이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외로워서 더 어머니께 제 온전한 편이기를 강요했나 봅니다. 제 편 만들기를 그만두는 대신, 외로움을 인정하기로 했어요. 앞으로도 외로울 거고요. 내 삶은 고독한 전쟁터입니다. 나 혼자 춤을 춰도 아무도 뭐라 못 할 거예요!

둘째, 습관적인 과거와 안 좋은 감정 곱씹기를 그만두다.


저는 보기엔 평온해 보이지만 남들이 들으면 기겁할만한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의식해야만 하지 않을 정도로 자주 하고 혼잣말도 합니다. 이번에도 떨어질 거야, 난 안될 거야, 망했네, 죽을까? 왜냐면 제가 과거에 망해왔거든요. 그 망한 과거들을 곱씹으면서 이번에도, 앞으로도, 평생, 그럴 거라고 그냥 말합니다.

어느 순간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 정말 생각하고 믿는 대로 된 거 아니야?

억지로 아임햅삐! 는 아니어도, 이젠 과거를 곱씹으면서 그런 안 좋은 말들을 문장으로 완성시키는 건 그만뒀습니다. 아직도 잘은 안 되지만, 그만두려고 의식적으로 항상 애쓰고 있어요. 그 감정과 생각들에 맞서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거나 다른 것으로 정신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셋째, 자다가 깼을 때 휴대폰으로 시간과 연락 확인을 그만두다.

자기 전 휴대폰을 보는 건 참으로 꿀과 메이플 시럽을 섞은 그래놀라보다 더 달콤합니다. 특히 집에서 많은 일을 하는 제겐 침대가 유일하게 다른 일을 해도 되는 탈출구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잠을 자는데 집중해야만 했습니다. 자기 전 아이돌이나 강아지 고양이 그 외 여러 힐링을 찾아 나가는 건 양보할 순 없지만, 자다가 흐름이 깨버리니 그날 아침은 엄청 피곤해졌습니다. 제가 쓰는 방법인데요, 옛날 휴대폰으로 알람을 맞춰놓고 지금 휴대폰은 자기 전 전원을 끄거나 멀리 있는 충전기에 꽂습니다.

넷째, 잘나 보이려고, 똑똑해 보이려는 노력을 그만두다.


저는 사실 지금도, 조금, 폼에 죽고 폼에 사는 사람입니다. 똑똑해 보이고 싶었어요. 어쩌면 또래보다는 야 악간 똑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저 20년이 훨씬 넘는 그 긴 기간 동안 저는 ‘잘난 사람’이었어요. 스스로가 그런 자기 자신만을 받아들이기도 했고요.

저번 문답에서 말씀드렸죠, 저는 성인이 되고 넓은 세상을 만나면서 기꺼이 못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태평하다, 둔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휘파람만 불면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지금 딱 그렇습니다. 그런데 자소서를 하루에 몇 개씩도 내고, 서류 탈락에도 무덤덤해지고 또다시 도전하는 그 사이클이 훨씬 빨라졌어요. 심지어 최근에 대기업 간 친구가 취준생인 제 앞에서 회사 욕을 하고 힘들다고 하는데도, 아무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예전이었다면 ‘뭐야 내 앞에서… 심지어 대기업 갔으면서… 너무해’ 이랬겠지만 그때는 그냥

‘아이고 힘들겠네 그런데 부럽다, 나도 곧 회사 욕 할 사람 될 거니까, 뭐. 그때 내 욕 들어주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저의 이런 모습에 놀랐어요. 아마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계속 태평하단 소리를 듣고 있겠지요, 하지만 태평해져 보니, 지금 해야 할 일들, 좋게 만들 일들만 남았습니다. 저는 잘 될 거예요. 지금 정말 그 외엔 다른 생각을 안 하고 있거든요.


올해 그만둔 것들은 참 많지만, 일단 이 정도로 추려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그만두었나요? 무엇을 그만두었다고 해도, 스스로를 칭찬해줍시다. 우리 잘 알고 있잖아요, 생각보다 나는 욕심이 많고, 그런 나기에 그만두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