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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Jan 16. 2022

상황에 대하여

To my blue-2

전편은 이런 우울한 글이었다.

https://brunch.co.kr/@ruddb1155/633



텅 빈 곳에서, 늘어나는 약들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을 다시 보았다.


오랜만에 그때를 되새기는 글을 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저 사진을 찍던 상태로 돌아갈 만큼 요즘 벅차기 때문이다. 음, 돌아간다고 표현할 순 없겠다. 지금은 상황도 별로고, 상태는 더 안 좋아질 것이 뻔하니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 나락으로 가지 않음을 확신하고 있다. 나라는 사람이 너무 많이 바뀌어버렸다. 이제 상황은 상황일 뿐임을 알고 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그때 나는 모든 일에 다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었다. 한참 힘들 때, 겨우 면접을 보고 집에 오자 맞지 않은 구두 탓인지 발에 피가 났다. 피 발자국을 만들며 집에 돌아다녔다. 너무 놀래서, 아 나는 면접도 안 붙을 것 같고,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는 거야, 다 그만두고 싶다. 언제 죽지… 하며 염불을 외웠다.


저번 주인가, 또 발에 피가 났다. 이번엔 운동 때 적절하지 못한 양말을 신은 죄로, 피가 터져서 콸콸 흘렀다. 하지만 내 입과 머릿속에서는 동시에 두 문장이 나왔다.

아 후시딘 좀 미리 사놓을걸.

급한 대로 반찬고 룸메한테 빌리자.


둘 다 그냥 발에 피가 났을 뿐이다. (두 번째 경우는 좀 많이 나서 병원을 가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상황은 벌어진다. 그리고 대부분 되돌리기가 불가능하다. 그 특성 때문에 절대적으로 내가 휘둘리는 것처럼 보인다. 미련을 갖게 된다.

예전 인턴을 하던 회사와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그 이야기를 한다. 네가 지금 새로운 길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전환되어서 취직이 그때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왜 당연한 소리를 내게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어떤 정신승리를 하더라도, 그들이 어떻게 날 불쌍하게 보더라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난 지금 그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다. 그 상황의 if을 나에게 들먹이는 건 내 머리채를 잡고 그 굴욕의 순간으로 끌고 갈 뿐이다. 나랑 같이 그 진흙탕에서 뒹굴 것이 아니면 그러지 말자.


잘난 척 글을 쓰지만 나는 여전히 약을 복용하고 있다. 오래된 취준 기간으로, 그것도 면접에만 엄청나게 떨어진 그 트라우마로 언제든 미끄러질 수 있다. 저 사진을 찍던 때의 나라면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았을 때, 떨어진 유일한 인턴으로 회사를 나갈 바에야 죽겠다며 진짜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웃으며 나왔고, 지하철에서 울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길을 모색 중이다.


굴욕감과 비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생존방법이다. 그 감정을,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두려워서 더한 감정과 상상을 덧붙여서 도망치다 보면 마주하는 현실은 훨씬 망가져 있었다. 대학 시절의 나는 시험공부를 거의 못 해서, 백지의 답변을 마주하고, 앞으로 남은 시험시간 동안 망한 내 현실을 직시하고, 누군가에게 그 점수를 보여주는 그 굴욕과 울렁거림을 느낄 바에야 시험을 안 치는 게 낫다며 시험 결석으로 F를 받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초라하다. 하지만 같은 상황이 온다면 아마 여러 비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백지를 제출하고, 기분이 안 좋으니 친구랑 수다를 떨거나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으러 갈 것이다.


눈을 꼭 감고 아무것도 안 하면 시간은 지나가지만 상황은 악화된다. 대학생활 4년 동안 그래 왔던 나는 직업을 구하기 위한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렇다고 힘든 상황에서 억지로 스펙을 쌓거나 생산적인 일을 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냥 뭐라도 해야 그 기간이 빨리 지나간다. 당신의 절망과 굴욕감, 비참함과 함께 바닥에 있는 힘껏 떨어져 보자. 죽을 것 같겠지만 눈을 떠보면 죽지 않아서 의아한 상황을 마주할 것이다. 그럼 머쓱해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서 이불 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환기를 시키면 된다. 창문을 열었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여니만도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는 있지만 그땐 다시 닫으면서 투덜거리자. 그것만으로 당신이 우울하지 않은 10분이 생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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