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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Jan 13. 2022

상태에 대하여

To my blue-1

별 거 없는 사진이다. 아마 점심도 저녁도 아닌 시간, 학교나 직장에 소속된 사람이라면 절대 하늘을 쳐다볼 수 없는 그런 애매한 시간에 집에서 찍었을 것이다. 서울이 아닌, 본가의 사진으로 4년 전 여름방학 때의 사진이다. 이 사진에 대한 비하인드가 두 개가 있다.

하나, 이 사진을 찍을 당시 나는 여러 자해와 자살시도가 일상인 사람이었다.

둘, 당시 내 상태를 설명하지도 않았건만, 엄마는 이 사진을 우연히 보고 울었다.


그냥 하늘을 찍었을 뿐인데.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신기하다. 지금과 그때의 상태와 상황이 완전히 반전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아버지가 퇴사하기 전으로 과분한 용돈을 받고, 대학이라는 소속으로, 몸도 살이 찌기  건강한 상황이었다. 상태는 그렇지 못했다. 지금은 그때의 모든 자살사고를 하던 습관이고 뭐고 그냥저냥 투덜거리면서 어찌어찌 살아가는 상태이다.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용케  살아가네,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다.


잘난 척 글을 쓰지만 나는 여전히 약을 복용하고 있다. 오래된 취준 기간으로, 그것도 면접에만 엄청나게 떨어진 그 트라우마로 언제든 미끄러질 수 있다. 하지만 저 사진을 찍던 때의 나라면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았을 때, 떨어진 유일한 인턴으로 회사를 나갈 바에야 죽겠다며 진짜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굴욕감과 비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생존방법이다.  감정을,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두려워서 더한 감정과 상상을 덧붙여서 도망치다 보면 마주하는 현실은 훨씬 망가져 있을 것이다.


사실  길어진 기간들은 당연한 게 아닐까 싶다. 나의 대학생활은 졸업과 생존만이 목적이었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아주 충동적이었고 항상 코피를 흘렸으며 샤워를 하면 기억에 없는 피멍들을 마주했다. 주변에는 사이비 종교 사람들로 둘러싸였고, 지인들은 내가 질려서 떠났다. 들숨에 사진의 하늘로 향해 전력질주를 하던 상상을 했고, 날숨에 그것을 저지하기 위한 마지막 이성으로 벽에 이불을 감싸고 붙었다. 그러면 어느새 아침이 왔고 멀쩡한 척을 하면서 가족들과 밥을 먹고 서울로 올라가는 사이클의 반복. 그때 전달되는 언어를 잃어서 여전히 나는 장황하게 말을 하다가 혼자 길을 잃는다.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일상 대화를 하기 전에도 손으로 몇 번씩 알고리즘(이과생이라 죄송합니다 마인드맵 순서 같은 그거 아시죠?)을 적었는지. 지금이야 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런 내가 요즘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현상들이 보인다. 모아놓은 돈을 탕진하며 배달음식을 먹고, 어디에 돈을 썼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갑자기  살을 빼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PT 어머니가 등록해줬는데도 자주 불안한 마음에 토할 때까지 먹었다.  방의 서랍들이 모두 빠져 나와있다. 죽음과 관련된 말을 일상적으로 내뱉기 시작했다. 다시  발버둥이 시작되었다. 우울과의 동행으로  삶이 망가지게 하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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