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벙첨벙
나는 살고 싶었다. 하지만 죽어가고 있다. 아무래도 살아야 할 것 같다.
누군가의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소식에 나의 처지를 비관하며 비참해하는 내가 남아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혐오스러워서 화장실에가서 구토를 했다. 정신 차려보니 2년전 우울증이 극심했던 때와 비슷한 상태로 돌아가있었다. 잠을 12시간 넘게 잤고, 일어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이 뒤죽박죽이며 최근 며칠은 운동을 안하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눈을 감기 전 절망하고 눈을 뜨고 절망했다. 살아있는 내 몸이 너무나도 번거롭게만 느껴졌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버거웠다. 머릿속에 비상벨이 울렸다. 위이잉.위이이.이렇게 지내다간 죽음만도 못한 삶이 있음. 위이이이에에에엥.
웃기지 마라,내가 가진 경력이란 2개월 인턴뿐인 장기 취준생이지만 우울증 경력으로는 벌써 5년이 넘는다.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지 아닐지 평생 이렇게 살다갈것인지 남들은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것인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국 날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더라도 재수없게도 혹은 재수있게도 살아있는 한, 결국 살아야한다.
그 모든것을 버리고 바닥을 더듬거리며 조각을 찾는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가장 먼저 (나의 경우다) 없어지는게 시공간에 대한 개념이다. 특히 지금처럼 코로나때문에 나가지도 못하고 마땅한 소속이 없이 하루가 경계없이 흘러가는 백수(let me introduce myself)는 더 시간이 슬라임처럼 느껴질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슬라임도 아니고 빠르게 흐르고 있다.
그러니까 앞으로 닥칠 미래를 위해서 정신차리는게 좋다? 이 말 안 다가올 것 알고 있다. 나또한 그렇다. 미래를 생각하면 더 암울해지고 과거를 생각하면 비참해지고 현재를 생각하며 절망한다. 생각을 끊어내야한다. 감정은 짊어져야한다. 내가 요즘 치는 발버둥은 아래와 같다.
먼저, 목표는 현재 상태와 상황에 맞춰서 내린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설거지를 못 할 상태라면 일단 밥을 먹은 후 그릇을 치워서 싱크대에 두는 것을 목표로 둔다. 그리고 물로 불려놓는다.(여름이라 초파리가 나올 수 있으니) 밥을 먹다니 매우 장하다. 엊그제만 해도 과자만 먹었다.
비슷한 흐름으로, 나는 올해 안에 일을 구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취업준비생이니 당연하지, 그런데 취업이 아니라 그냥 일을 구하는 것이 목표다. 정확히는 완전한 경제적 독립이자 소속을 위한다. 지금까지는 좋은 기업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고 싶었다. 특히 인턴 전환이 안 되었다보니 나에게 큰 상처였고 보란듯이 더 좋은 기업에 혹은 가고 싶던 곳으로 가고자했다. 최종면접 4번을 떨어진 후, 어쩌면 내가 이 길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난 항상 다수이고 싶었다. 남들이 보통 하는 대로 하고 싶었다. 정보도 많고, 조언을 구할 곳도, 동지도 많으니까. 그런데 머릿속에서 어쩌면 나는 다수가 가지 않은 길을 또다시 걸어가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시간이 충분히 필요할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내가 나를 책임지면서 그 길을 걷고싶다. 아르바이트나 계약직, 혹은 원했던 곳보다 규모가 작거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도 좋다. 인생은 길다. 그 길이에 항상 탄복하고 한숨을 쉬었던만큼 지금 내가 잠시 상황과 상태에 타협한다고 해서 그게 평생을 가지 않음을 알고있다. 지금보다 조금씩 상황과 상태를 더 낫도록 두드리고 감싸고 밖으로 나가고. 그것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급하게 일을 구하면 자아실현은 뒷전이고 또 금방 그만둘 것 같아요.
인턴 동기가 해 준 말이다. 그럼 그때 그만두고 다른 일 구하면 된다. 인턴했던 회사는 대기업이었기에 현재 동기들은 아주 잘 살고 있다. 지금이 평화로우니까 급하게 일을 구하는 행위가 자신의 현재보다 더 불행한 것이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나는 아니다. 우린 너무 달라졌다. 온전히 내 인생을 살고싶으면 ‘잘 살아가고 있는, 비우울증’인 사람들의 말은 잠시 덮어두는 게 좋다.
다음으로는, 행복해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불행해지는 나의 행동 알고리즘을 파악한다. 나에겐 두가지 알고리즘이 있다. 배달음식과, 침대에 누워있기다.
잦은 배달음식이 습관이 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같이 사는 친구들이 자주 시켜먹어서 그런가. 덕분에 살이 많이 쪘고, 속도 안 좋고, 지출만 늘어날뿐이다. 그리고 후회한다. 냉장고가 플라스틱으로 찬다.
낮잠과 침대에 누워잇는 습관은 다르다. 낮잠은 오히려 활력이 된다. 특히 전날 밤 못 잤을 경우, 낮잠을 1시간정도 자고 일을 하면 기력이 솟는다. 나의 문제는 그냥 하기 싫으면 침대에 누워있는다. 누워서 휴대폰을 보면서 뭘 보는것도 아니고, 그냥 생각에 괴로워만하다가 갑자기 까무룩 잠이 든다. 그리고 악몽을 꾸고 다시 일어나서 생각에 괴로워한다. 집에 있으니 침대와 나는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것만 같다. 실이 아니라 스프링아니냐이거?할 정도로 나는 밥을 먹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이력서를 쓰다가도, 공부를 하다가도, 커피를 내리다가도 갑자기 피슝하고 침대로 뛰어들었다. 물론 제일 좋은 건 외출이다. 머리가 아파서 내내 누워있었다가 혹시나 하고 외출했더니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더라. 코로나가 심하고, 갈만한 곳이 마땅이 없는데다가 폭염주의보 문자가 오는 나날에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해가 지고 저녁에 편의점이라도 다녀 올 수 밖에. 상황이 괜찮다면 커피도 한잔 마시러 나가고.
코로나를 핑계로 약속도 취소하고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안 만난지도 오래 되었다. 만나면 나의 비참해진 모습을 더욱 마주하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야 환기가 되는데 그게 안 되어서 머리가 굳는게 느껴진다. 책을 읽고 뉴스를 보고 전화나 메세지라도 간단한 연락을 주고받을 수 밖에. 그게 세상과 끊어지지 않는 나의 최소한의 발버둥이다.
스파클링 와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 와인 카카오톡방에 있는데, 함께하시는 분들의 전문적이고 경험이 많아 보이는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다가 조심스럽게 초보자에게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말을 걸었다. 많은 분들이 정성스레 추천해주셨고, 정작 나는 와인셀러에 갔다가 직원분의 엄청난 기세에 밀려서 조금 다른 것을 사고 말았다. 화이트와인에는 생선류가 어울린다길래, 큰 맘 먹고 스시도 포장해왔다. (하지만 요즘 여름이라서 탈이 날 수 있으니 당분간은 디저트를 사려고 한다) 기대하지 않았다. 기대란 것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와인과 스시는 정말 변덕과 충동으로 샀을 뿐이다. 아무 머그컵을 가지고 와서 와인을 부었다. 한 입 마시는 순간, 하이볼과 생맥주를 좋아한다는 내 입맛에 맞춰서 와인을 골라주신 분들의 엄청난 센스에 감탄했다. 사실 내 미각세포의 요정들이 아니셨을까?
이걸 모르고 죽을 뻔했네. 나, 와인 중 스파클링 와인을 좋아했었구나. 스시랑 같이 먹으니 정말 맛있구나.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나를 죽였던 요즘, 목숨을 겨우 이어가던 중 알게된 뜻밖의 사실이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앞으로 내 삶에 나도 몰랐던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이 나타나겠지. 그렇게 나는 나와 더 가까워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