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미련이.
다들 겨울이나 봄에 우울증이 제일 심하다고 하는데, 내 경험상 나는 여름에 제일 심하다. 여름엔 꼭 너무 많이 자거나, 아예 잠이 오지 않는 ‘수면의 질’과 관련된 문제가 생긴다. 혹은 다른 문제가 생겨서 결국 수면의 문제로 이어지고 이는 곧 신체적, 정신적 문제로 이어졌다.
우리 가족의 절반은 우울증, 절반은 그 우울증인 가족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가족이라서 동행해야 한다. 나는 이 상태를 두고 ‘일단 자기 자신을 최우선으로 둬야 하는 상황’이라고 칭한다. 아버지, 어머니, 장녀, 장남(내 동생이지만 대충 장남이라고 쳐두자)이라는 혹은 자신의 나이가 00살이라서 해야하는 책임감을 다 다 던져두고 ‘강철경’이라는 자신만을 일단 1순위로 두어야만 이 상황을 버틸 수 있다. 이해받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최우선으로 두었다간 실망과 절망을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상대방이 어떤 하루를 시작하든 자기 자신은 어떻게든 자신만의 하루를 시작해야한다. 상대방을 돌보고, 신경쓰는건 그 다음 순위다.
그렇다고 우울증인 사람들은 자신만의 연대가 있느냐. 우리 가족 내에서는 아니다. 그 양상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나와 아버지는 가장 다르지만 그렇기에 가장 닮았고 집에서 가장 많은 약을 복용하는 사이다.
아버지가 10일째 잠을 못 자서 결국 쓰러졌다고 한다.
나는 너무 많이 자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일어나더라도 물 속에 잠긴 기분이었다. 우리의 많은 차이점 중 하나는 수면보조제 혹은 정신과 관련 약을 복용하느냐 마냐이다. 아버지 나이대의 분들은 아무래도 신경과 관련된 약은 복용하지 않으려는 선입견이 있기도 하고, 아버지는 폭력적으로 고집이 센 사람이다. 그러니 처방받은 (정신과도 아니고 신경과에서 처방받은!) 수면제마저 안 드시고 안 그래도 한 쪽으로 치우친 사고가 정신적, 신체적인 고통과 함께 더욱 폭발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나는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자,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나의 경우, 가장 심한 조울증의 상태는 2년전에 한번 겪었기에 대처라던가 나름의 팁이 생기기도 했고, 삶에게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울증의 기본 상태는 ‘미래에 더 기대할 것이 없다’ 혹은 ‘앞으로 계속 이딴식으로 내 삶은 계속될것이다.’라는 절망이다. 그 절망으로 결국 ‘그러니까 살 필요가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우울증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 기본 상태부터 결론 모두가 점핑하는 느낌일 것이다. 논리란 필요 없다. 이 말도 안되는 생각들이 결국 나를 죽음에 들게 할 수 있었다. 나는 과거고, 아버지는 현재다. 아버지와 친하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기 때문에 지금 아버지가 무슨 생각으로 삶을 대하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때릴때마다 조금씩 우리의 유대도 끊겨왔기때문이다.
최종 면접이 떨어지고, 2년이 다 되어가는 취업준비생활. 세상의 모든것이 나를 주목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쳐내려는 느낌이다. 전환되지 못한 인턴, 최종 면접에 3번 떨어진 취업준비생, 이제 2년째인 취업준비생. 그냥 먹고 사는 일을 하려는 것 뿐인데, 생계유지일 뿐인데, 한때는 물론 직장에 많은 로망을 갖고 자아실현을 꿈꿨지만 이젠 그냥 남들이 그렇게나 뛰쳐나오는 평범한 회사원을 바랄 뿐인데. 사람들은 뭘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고들 한다. 만약 내게 그게 직장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자 내 삶이 너무나도 번거롭고 귀찮아졌다. 밥을 굶었고, 잠을 마음대로 잤고,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질려졌다. 죽을까? 그럼 뭐부터 정리해야 할까?
아니 내가 잘못한게 없는데 왜 죽어.
갑자기 자존심이 상했다. 나의 죽음을 안타까워할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렇게 일이 안 풀리더니 결국..’그런 동정을 받을 생각에 화가 났다. ‘쟤는 일이 그렇게 안 풀리는데 어찌 저렇게 잘 살아가냐?’는 의아한 말을 들을정도로 잘 살아가고 싶다. 난 진짜 최선을 다했고 죽을 힘을 다했는데 일이 안 풀렸다고 죽어버리면, 내가 세상에 가한 에너지는 어디로 산화될까? 그 최선에 보답은 받아야겠다, 살면서 말이다.
살다보면 좋은일이 오는지, 보답은 오는지 모르겠다. 나또한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어’ 혹은 ‘내 인생은 이대로 시간만 흘러갈거야’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하려니 망설여진다.
2년전, 우울증이 가장 심하고 하루하루가 고장난 브레이크를 가진 기차를 타고 질주하거나 바다에 그 기차가 빠지는 것을 반복하던 그 시절에. 그 시절에 죽었더라면, 그때 운이 없어서 (혹은 있어서) 죽지 않았지 만약 내가 그때 죽었더라면.
나는 지금 커피를 마시는 이 카페를 모른채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따릉이를 타고 한강을 달리는 게 1000원밖에 안 한다는 사실도 몰랐겠지. 인턴 월급을 받아 좋아하는 동생에게 명품 립스틱을 사 주지 못했을것이다. 내가 케냐AA라는 커피 원두를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도 몰랐을거고. 남동생의 제대를 목격하지 못 했을 것이다. 졸업 전시에서 1등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5년만에 다시 연락온 친구들이나, 최근 1,2년에 생긴 친구들의 존재도 몰랐을것이다. 서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서촌이라는 곳도 몰랐을 것이다. 강릉은 평생 한번도 못 가봤겠지. 내가 산보다 바다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모른채, 많은 이들에게 나의 존재만으로 상처를 남겨두고 나를 생각하면 기쁨보다는 알 수 없는 슬픔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줬겠지. 엄마와 친한 사이도 못 됐을 것이다.
어우야 죽었으면 큰일날뻔했다 ㅎㅎ.
하는 순간들이 있기에 앞으로 펼쳐질 그 많은 순간들을 내가 못 누리고 죽을까봐 미련이 남아서. 나는 살기로 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한다고 갑자기 삶이 달라지진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극적인 변화’같은건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좋은 변화일수록 서서히, 알게모르게 진행된다. 그러니 운동을 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산책을 가고 맛있는 밥을 먹자. 그리고 울자.(갑작스런 울음은 우울증환자의 친구). 그렇게 잠겨있다가 다시 물을 뚝뚝 흘리며 해변으로 나와서 햇빛을 쬐자. 살아있으면 좋은 날은 온다는건…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몰랐던 것을 알게되던 순간은 온다. 앞으로의 삶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면 일단 살아보자. 분명히 무언가 있다. 내가 예상치도 못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