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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Apr 23. 2022

인연 애도 기간

당분간은 인간관계 디톡스

나는 항상 그랬다. 


사람이 벅찰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사람이 그리울 때는 주변에 차 한잔 술 한잔 하자고 불러낼 그 누구도 없었다. 유독 후자의 경우에는 거절도 많이 당했다. 그냥 친구들이 바빠진 시기 거나 우연히 서로가 안 되는 시기가 겹쳤을 뿐이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잘 못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이런 시기에, ‘아니야 나는 잘 못 살고 있지 않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약속을 어떻게든 잡으려고 하기 쉬운데 그럴 때일수록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면 굳이 만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사회성이 떨어지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자신의 중심을 견고하고 건강하게 다져야만 한다. 또다시 피곤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은 시기가 올 것이고, 그 시기를 앞당기는 건 건강한 나 자신의 상태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인간관계 디톡스와, 멀어져 버린 관계에 대한 애도기간을 가지고 있다.  

1. 아무래도 차단당한 것 같다.


한 친구가 점점 벅차 졌다. 그 친구는 누군가를 욕할 때 대학 학력, 연봉 등의 ‘스펙’을 연결 지어 욕을 하곤 했다. 자신의 높은 스펙 혹은 아직 갖지 못했지만 곧 가질 높은 연봉, 나는 거기를 도전 안 했을 뿐 못 한 게 아니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모든 대화가 귀결되었다. 

그 친구는 그만큼 최선을 다 해 살았지만, 나의 경우 지쳐있을 때는 힘을 풀고 해파리처럼 대충 살았기 때문에 우린 자주 부딪혔다. 결국 또 그 친구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나에게 종용한 순간, 여러 취준 시기 + 일 적응기 + 체력관리 스트레스 관리 실패 등으로 그 친구의 이야기를 멈췄다. (어떻게 했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계속 듣기가 힘드니 너와 같은 사람들에게 더 자주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는 식으로 얘기했던 것 같다.) 그러자 그 친구는 화를 냈고, 내가 이야기한 포인트와 다른 부분에서 더욱 화를 냈으며(아마 그 포인트가 그 친구가 꽂힌 부분이었으리라) 앞으로는 서로 이렇게 벅찰 경우 이야기를 미리 해주기로 하고 마무리가 되었다.

몇 달 후, 갑자기 그가 생각나서 잘 지내냐고 묻자 바쁘다는 성의 없는 답이 한참 뒤에 왔다. 그 이후에 이어진 내 메시지는 며칠째 읽지 않는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A는, 인연 애도기간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애도 중이다. 무엇보다 씁쓸했던 것은, 나 또한 그 친구를 볼 수 없는 게 아쉽지가 않았다. 머쓱하긴 하지만, 그냥 ‘음 이렇게 말하니까 끊기는군.’이라는 반성과 ‘앞으로 이렇게 관계가 더 끊기면 어떻게 하지 새로운 관계 만들기는 힘든데’라는 걱정뿐이었다. 그 친구는 그 순간 내가 싫어졌지만, 나는 시나브로 그가 싫어졌나 보다. 

결국 여기까지였던 셈이다.   

2. 얘들아 알아서 거절하시고~!

취업준비생일 때 참으로 많은 약속을 거절했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거절당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공평하니까. 그때 나의 나약하고 정신없던 모습에 실망해서 거리감을 느낀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고. 그러니 남들이 나와 같을 때 (여러 상황으로 상태도 메롱일 때) 나도 그 곁을 지켜주고 떠나지 말아야겠다. 

그래도 일단 먼저 두드리지 않으면 아예 인연은 시작조차 안 된다. 나만 놓으면 끝나는 관계라고 할지라도, 거절은 결국 상대방의 몫이다.


개인적인 일들에 집중하느라 사람들을 안 만난 지 꽤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고 싶거나 최근에 연락한 애들 순서대로 조금씩 연락을 해보고 있다. 거절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나는 모두에게 미움받고 잘 못 살아왔나?’라는 불안이 들면 그게 곧 조급함이 되어서 연락처 사람들 다 연락 돌리는 불상사를 선택하고 만다.

만약 상대방이 어쩔 수 없이 나와의 만남을 수락했다고 하더라도, 그 귀찮음은 상대방이 선택한 셈이다. 그러니 나는 약속이 생기게 되면 바람 쐬며 맛있는 것을 먹고 상대방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면 그만이다. 

3. 결국 내가 행복해야만 한다.

내가 중심에 없었을 때 했던 모든 인간관계는 파탄이 났었다. 혹은 아직까지도 내게 괴로움을 주고 있다. 


나는 고민 상담할 때, 무조건 손절하라거나 네가 너무 착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을 경계한다. 그렇게 끊어내서 대체 누가 남는다는 말인가. 지금 눈앞에 있는 우리도 서로에게 말하지 않은 섭섭함들, 이해를 위해 노력했던 부분들이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은 결국 나의 행복이었다.

대학생 때 나는 ‘대학생은 항상 술 마시고 선배 후배 동기들이랑 즐겁게 노는 거야!’라는 사회적(당시) 풍토에 자신이 맞지 않아서 괴로웠다. 그래서 어떻게든 인맥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니 훨씬 더 괴로워졌다. 결국 여전히 아웃사이더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인맥이나 사람은 어떻게든 또 이어진다고, 졸업 즈음부터 취준생 때까지는 역대급으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약속에 돈을 너무 많이 쓸 정도였다.


나에게 맞는 관계는 아직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은 디톡스가 강제로 되든, 내가 하든, 진행되고 있음을 안다. 지금 씁쓸한 내가 행복하고 잘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지. 방금도 한 친구에게 바빠서 못 본다는 거절을 당하고 다른 친구에게 약속을 제안했다. 이번 주는 여기까지만 시도하고 또 거절당하면 씁쓸해진 장아찌 상태로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기간을 보내야겠다. 

안녕, 여기까지였던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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