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다는 진리만 이해하자.
살아간다는 게 정말 별 일이 아니구나 싶다. 뭐 대단한 소명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이가 먹을수록, 하나씩 나를 놓아주거나, 혹은 하면 안 되는 일들을 알아갈 뿐이다. 억지로 나를 멋있게 채우거나 무언가를 해야하는게 아니라 덜어내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은 하지 않고.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를 이해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그에게 나를 납득시켜서도 안 된다. 뭐 꼭 안 된다! 돈ㅌ두댙!은 아니지만, 그 모든게 의미가 없는 활동이다. 절대 나는 이해할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고 납득은 시켜야 할 이유도 없었다. 굳이 이해해야 한다면 이해할 수 없다는 진리만 이해한다.
그럴 수 없었다. 그 친구는 계속 조건 1만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또한 조건 1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고 있었고 내게 안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다. 다만 나는 외로웠기때문에 그 조건 1과 조건 2가 섞였지만 5%정도 조건 2가 더 많이 차지한 그 선택을 그 친구에게 납득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이해가 안 되어서 계속 대화를 뱅뱅 돌리고 있었다. 이해하려고 했으니까. 이해받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털어놓았다.
사실 난 조건 1도 2도 중요한데, 2가 조금 더 중요해서 여길 왔어. 그런데 너에게 나를 납득시키고 싶었나봐, 그래서 계속 조건 1을 굳이 안 선택한 이유만 말하고, 조건 1이 좋았던 다른 선택지를 -결국 내가 선택하지 않은- 어필하고. 사실 이제 나는 정신승리같아도 조건 1이 내게 큰 영향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거든. 만약 한두달 전의 나였으면 조건 1을 얘기하는 너랑 싸우거나 상처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는 그게 중요하고 나는 이게 중요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다르기 때문에 계속 그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끌고갈 수는 없겠지만.
나만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더.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예전 친구에게 내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그 근황을 폄하하는듯한 말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어머니와 다른 친구에게 하자 “그 $#&^%$& 완전 나쁘다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해!”라고 화를 내주었다.
왜냐면 내가 당시에 화가 안 났기 때문이다. 곰곰히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나쁘긴 한데 다시 돌아가도 화는 안 낼 것 같다. 그 친구 입에서 나올만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 친구를 잘 알진 못하지만 주변이 모두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환경, 자신과 같지 않으면 다르면 무조건 폄하하는 그 세상을 몇번 보았다. 그 친구의 입으로 ‘나와 다르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몇몇 사람들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걸 보았고 그게 곧 나의 차례겠거니 했다. 물론 그 친구에게 먼저 연락할 생각은 없다 ㅎㅎ
너무나도 그다운 생각에 약간 측은하기도 웃기기도 어이없기도 했다. 어, 너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결국 이것도 그 친구는 내가 이해가 안 되어서, 나를 이해하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오류가 났기에 실례인 행동을 한 셈이다. 내가 거기서 그 친구를 납득시키려고 뭔가를 내세웠다면 정말 대화가 산으로 가다못해 화산폭발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화가 정말 났다면 화를 냈겠는데, 신기하게 그때는 정말 화가 나지 않았다. 그냥 그 애를 이해하기가 귀찮았고 딱히 걔한테 나를 납득시키는 수고를 할 정도로 소중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해받고 납득시키려던 과거가 있었다. 현재도 종종 그런다. 보통 외로울때 누군가에게 이해받으려고 하고 그에게 납득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내가 이해하고 납득해야할 존재는 나 뿐이라는거. 그래서 더욱 외롭지만, 나의 중심이 없는 채로 남으로 채워져봤자 외로움 대신 허무함만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