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회사에서 잘 살아가는 얼렁뚱땅 이상한 사람 이야기
힘찬 아침!
안녕하세요 철경입니다. 으차라라라랄 등장
곧 제가 쓸 매거진의 마감날이 다가오는데, 세이브원고를 쓰다가 문득 이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제가 회사에서 쭈글이로 있다가 자신감을 회복한 이야기를요.
오늘은 미라클루틴 글 대신, 근거없는 자신감이라도 필요해서 있는근거 없는 근거 다 끌어모은 이야기를 해봅시다.
아무도 안 궁금해해도 상관 없습니다.
저는 입사한지 얼마 안 되었다기에는 이제 꽤 되어가고 있지만, 여러모로 신입치고는 적응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이전에 직장들을 갑자기 짤리거나 정규직 전환이 안 되었다던가 등으로 짧게 그만두었기때문에 이미 자신감이란 없었습니다. 그러나 쓸데없이 자존심은 높았습니다. 거의 기개 수준이었음.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이 높은 레알 뭣도 아닌 상태였죠.
그런 제게, 회사 생활이란 부서지는 나날들이었습니다. 멘탈이 부서질때도 있고 혼나서 바사삭할때도 있고 뭔가 표현을 잘 못하겠는데
제발 힘든 일은 하나만 와달라고 얘들아.
어쨌건 목숨이 붙어있어서 살아간다, 아직 안 짤렸으니 나간다, 뭐 그렇게 회사를 다녔습니다. 신입이 없는 부서에 배정이 되었고 뽑힌 신입들도 업무 강도 및 높은 기대 수준으로 나가더라구요. 나 진짜 회사 메신저에 그 가영이 안녕히계세요여러분짤도 보고 퇴사 댄스 추는 사람도 봄.
난 퇴사 안 했지만 그냥 기뻐보이니 옆에서 같이 췄슴다.
모든 순간이 긴장과 절망이었습니다. 나노단위로 쪼개지는 마음을 다시 모아붙여도 허접하게 급하게 붙였기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다시 공중분해 거의 불꽃놀이 수준으로 터지곤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들이 그냥 객관적으로 보여서 환장하는 드라마의 더 환장하는 주인공인 제가 보이더라구요. 그냥 멘탈 나가서 그 순간 유체이탈을 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제가 갑자기 태세전환을 한 계기가 있습니다. 회사 외적으로도 저는 여러 활동을 하는데요, 그 중 늘 관심있던 UX디자인 북스터디에서 첫번째 발표자를 맡게 되었습니다. 사실 당시 회사 적응이 맥스로 힘들었고 예기지 못한 이사도 있던터라, 너무 멘붕이었는데 사람이 멘붕이 되니까 오히려 갑자기 당당해지더라구요
(인생이 x된 브런치 주인장이 제일 자주 쓰는 짤. 약간 내 인생 모토이다 이왕 조된거 멋있게 찍어주십셔)
그래 내가, 어씨 일은 못하고 적응도 못하고 사회성도 떨어지지만 나 발표 하나는 잘했어. 발표 자료 하나는 좀 재미있고 집중되게 잘 만들었다고. 그냥 나 하는거 보여주고 오자.
그렇게 발표하는 순간까지는 그 근거..적고보니까 근거 없잖아?
여튼 그냥 될대로되라 식으로 집중을 했고 발표 끝나고 숨을 죽였습니다. 좋은 사람들이니까 못했다고 하진 않겠지만 분위기상으로 대충 좋다고 말하는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너무 칭찬을 들었어요. 거의 강의 수준이었고 머릿속에 잘 들어온다고, 전달이 잘 된다고 해주시는거에요.
궁상맞지만 끝나고 조금 울었습니다. 그리고 오징어덮밥으로 셀프 리워드를 함.
어느 순간, 저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그래, 야 짤려도 돼. 그냥 나 아는거 모르는거 표현하고 오자. 유관부서한테 미움 좀 받으면 어때, 최선을 다해서 조심히 배려있게 말하려고 하는데. 나는 궁금한거 해결하고 우리 부서 사안 해결하면 돼. 짤라 짜르라고 미워해 마음껏 날 미워하라고. 짤리면 오랜만에 카페 알바하면서 운동하고 미움받으면 관심줘서 ㄱㅅ 하면 된다. 이렇게 생각했죠.
치킨가게 사장님의 마인드로 살았습니다.
편해졌습니다. 그냥 물어보고 싶은거 다 물어봤어요. 유일한 신입으로 참석하는 전체 회의에서도 그냥 안건을 내거나 바로 문의드렸습니다. 급하면 전화하는것도 서슴치 않았고, 잘 모르면 확인하겠다고 파악 못했다고 머쓱하게 하지만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회의에서 브리핑하면 말이 짤리고 그 다음부터 덜덜 떨었는데 그냥 속으로‘ 내 말 자르기만 해봐 나 이 회사 살릴려고 이 발표 하는거야’라고 갑자기 회사 대표 마인드로 발표했습니다. 누군가가 제 요청사항 메세지를 무시하면 꽃다발 이모티콘을 다시 보내곤 하고,
상대방 입장에서는 이런 느낌이었을텐데 지금 생각해보니 개또라이같다.
감탄할때는 선글라스 아저씨가 춤추는 gif도 그냥 보냈습니다. 결국 다른 부서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신입 아니죠? 경력직 입산줄 알았는데 신입이라는 소문이 돌던데” 이건 솔직히 일을 잘했다기보다는 너무 막나가서 그런 것 같아요.
당당히 못 했습니다. 못 하겠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냥 단순히 ‘이거 못해요!’가 아니라, 진짜 아무리 해봐도 안되는겁니다. 예전이라면 못한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어떻게든 해봤을 것 같은데 그러다가 시간만 지체되고 타이밍이 놓쳐서 우리 부서에게 피해가 가겠더라구요. 그래서 커피 한잔 하면서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더 모르겠습니다. 더 지체되면 부서가 일을 진행할때 영향이 갈 것 같아요. 이번에 좀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상사분께서,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매번 해 줄 순 없다. 그러면 네가 성장할 수가 없어. 그리고 회사에서 성과는 결국 인센티브와 월급으로 이어진다. 우리 돈 벌려고 온 거잖아. 네가 그만큼 덜하거나 성과를 덜 내면, 월급을 더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적어져. 나는 내 부하가 월급도 많이 받고 성과도 많이 내면 좋겠어.’
네, 그래서 그날 제가 한번 더 결국 했습니다. 어찌 되긴 하더라구요.
죽는 줄 알았는데! 겨우 되긴 되었다! 유관부서, 사수님, 상사님 모두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나쁘지 않습니다.
잘 못하지만 나름 잘 지내고 있는 중입죠.
꽤 잘 지내서 또 예상치 못한곳에서 실수할까봐 일할때 더 조심하게 되어요. 회사 프레젠테이션은 가장 짧은 시간으로 준비했지만 가장 높은 성과를 얻은 사람이 되었고 이건 또 제 자신감으로 이어졌습니다. 근거가 하나 추가된거죠. 근데 이때도 미리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다니긴 했었음 앞의 북스터디 발표 준비한것처럼.
사실 아직도 닭이 먼저니 달걀이 먼저니 같긴 합니다. 제가 자신감이 생겨서 일을 나쁘지 않게 하게된건지 일을 나쁘지 않게 하면서 자신감이 생긴건지. 확실한건 회사 생활이 괴롭지 않고 나름 활력있으려면 둘 다 되어야한다는 겁니다.
사실 늘 이런 느낌으로 겨우겨우 해내고 있긴 합니다.
저는 여전히 배울게 많고 업무를 더 잘 하기 위해서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어요. 업무 보고서의 형식도 바꾸고 기록하는 방법도 노션했다가 템플릿 여러개했다가 그냥 메모했다가 스프레드 시트 썼다가...유관부서랑 이야기하기 전에도 몇번이나 시뮬레이션하고.
어제도 갑자기 보고를 해야할 일이 여러개 생겼는데 여전히 덜덜 떨고 당황하긴 했지만 제 목소리 톤과 보고받는 사람들의 표정,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직군 특성상 각자가 제품을 맡아서 저를 백업해줄 수 없는 상황인데(솔직히 제 경력이나 능력으로는 제가 백업해야함...아직 허접한 사람이기에) 이제 제게 다이렉트로 질문들이 오더라구요. 그리고 예전에는 보고 받는 사람도 저를 덜 신뢰하고, 제가 보고할때 늘 혼났기에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긴장하는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어제도 제가 갑자기 불려가서 이야기를 해야할때 긴장이 느껴졌다가 다행히 이미 아는 내용이라서 대답을 하자 풀리는게 느껴지더라구요. 이 순간또한 제게 자신감으로 돌아오겠죠?
솔직히 죽는 줄 알았는데 그동안. 사람은 신기하게 죽지 않았고 이런 순간들이 올 줄 알았으면 그때 더 빨리 자신감을 찾고 덜 괴롭게 막나갈걸.
조금 더 즐거웠어도 되었는데, 감히. 감히 잘 지낼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냥 회사 생각으로 괴로운것은 사원증을 맸을 때나 합니다. 사원증 벗으면 그냥 다른 생각함. 문제는 점심 먹을때도 사원증 벗고 먹어서 그때 아직 출근중이라는것을 까먹고 막말해요. 그냥 회사원 정체성이 사원증에 있는거죠. 제 사원증 사진을 사원증으로 해도 될 정도로요.
매번 이런 느낌으로 안경을 올리긴 함.
어쨌든, 퇴사와 손절이 사이다이자 유행이 된 이 시기에 미련하게 회사에서 야근도 하고 집에서 공부도 하는 이상한 엠제트의 글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자주 써서 제 넘어짐과 다시 일어남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도움 안되어도 기록하는 것만으로 저는 도움됩니다. 까륵륵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