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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결국 죽이지 못했던 그 여행을 기억한다.

그날 죽은건 죽기로 한 나였을지도 모른다.

by chul

나를 결국 죽이지 못했던 그 여행을 기억한다.

그날 죽은건 죽기로 한 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 그 바다를 다시 찾아가지 못했다. 그때 죽은 내가 물귀신이 되어 있을까봐. 웃기는 소리다.



여러 즐거웠던 여행 경험이 있지만, 용기내어 이제야 끄집어내는 여행 경험이 있다.

브런치에서는 당시에, 이런 글을 썼다.

https://brunch.co.kr/@ruddb1155/518


그래, 나는 궁상을 떨러 갔다. 정확하게는 죽으려고 갔다. 살아 돌아온 놈이 무슨 죽음을 논하는지 정말 없어보이지 않습니까? 다만 죽음에 성공한 사람은 어차피 글을 못 쓸테니 이 지지리 궁상을 조금만 읽어 주십시오.

몇년간의 우울증과 풀리지 않는 인생으로 죽으려고 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죽기로 결심했으니까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까. 뭣같게도 내 죽음을 이끌어낸건 사회였다.

당시 나는 2년간의 긴 취업준비생활끝에 대기업 취업연계형 인턴에 합격하여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부서에서 나만 전환이 안 되었고, 다른 부서에서 나를 채용할 의사를 밝혔으나 갑자기 취소되었다.

나는 그렇게 안쓰러운 사람이 되어 남은 회사생활을 버텼다. 회사 사무실 바닥이 일렁이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 대신 울어주는 사람들 전부 같잖았다. 너희들 전부 이 입장이 너희가 아니라서 안심하는거 내가 모를 줄 아냐.


그래서 돌아오는 표를 끊지 않고 대뜸 강릉을 갔는데 눈이 너무 많이 내렸다.

그냥 많이 내린 수준이 아니라 조난당할 수준이었다. 발목까지 오는 눈을 밟으며 버스 정류장까지 거의 40분을 걸어가는 숲속에서 나는 자소서를 100번쓰는게 좋을지 동사당하는게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당시 가장 친하던 친구는 내 불행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를 비웃으며 내 모든 연락을 무시하던 상태였다. 인간관계에 환멸을 넘어서 그 친구에 대한 두려움까지 느끼던 순간이었다. 내가 죽어도 눈 깜짝하지 않을것으며 그 녀석은 잘 살거라는 생각이 들자 진심으로 죽고싶었다.

살아서 그새끼 뺨이라도 때려야하는데. 침도 좀 뱉으며, 저주를 퍼붓고 싶은데. 하지만 살기는 싫고.


바닷가가 보이는 카페에서 사장님은 나더러 내가 다닌 대학교 근처에서 공사 현장에서 일을 했었다고 말을 걸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이렇게 버젓이 사장이 될줄이야, 사람일 참 몰라요 그쳐? 죽지 말아요.

아무도 없던 눈쌓인 구석진 바다. 편의점에서 소중하게 사온 커피를 마시면서 벤치에 한동안 앉아있었다. 드라마처럼 '그래, 살아야겠어'같은 순간은 없었다. 그저, 어떤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내 모습이 보였다.

저 작년에 여기 왔었는데 커피 넘 맛있어서 또 왔어요.

담에 또 올게요.


그렇게 나는 서울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같이 사는 친구들에게는 적당하게 산 기념품을 주고, 한 숨 쉬고 나는 3월 공고를 보기 시작했다.

그 뒤로 모든 일이 거짓말처럼 잘 풀리긴개뿔 거지같았다.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정규직 제안을 거기서 준 주제에 나더러 월급을 못 주겠다는 남들에게 신격 존재였던 플랫폼 운영자도 만났다. 인턴때 받은 상처로 나는 면접때마다 '모두가 결국 나를 싫어할것'이라며 면접에서 벌벌 떨다가 떨어졌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처음에는 온갖 욕을 먹었다. 나는 그렇게 겨우 살아남았는데 남들에게는 죽다 살아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다가 발로 차도 되는 신입이었을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남을 발로 안 찰려고. 하지만 나를 도 넘게 발로 찬다면 짓밟을 준비가 되어있다. 두렵지 않냐고? 두렵지, 여전히 혼날때마다 두렵다. 하지만 나 진짜 죽었다니까? 죽음과 왈츠를 추고 왔더니 그들이 나를 죽이지 못한다는 건 알겠더라고. 목 위에 머리 붙어있으면 뭐라도 된다.

그때만해도 벚꽃을 보러 가자고 곁의 사람에게 말할 수 있을지 몰랐다. 목련이 폈다. 봄의 바다라면 나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연차가 너무 많네, 이번에 봄에는 혼자 다시 그 강릉 바다를 가서 싸구려 커피를 마셔볼까싶다.

같이 갈 사람이 있다면 더욱이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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