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없으면 글을 써라.

나는 대충 그런다. 지금도 그래서 쓰는 글.

by chul

나는 그 무엇도 듣고 싶지 않고 궁금하지 않을 때,

글을 쓴다.


그리고 결국 살아가는 게 당연한 정답이라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죽어보고 살아보고 동시에 해 본 사람이 없어서 물어볼 수가 없다. ) 그게 이미 질려버린 사람들에게 소소한 팁을 주고자 한다.

살 이유는 필요 없고, 그냥 내일의 일정을 미래의 일정을 억지로 등록해라.


그거 안 지키면 누군가에게 어느 정도의 민폐나, 염치없는 경우가 되어버리는 것을 등록해라. 학생이라면 학교일 테니 졸업까지만 생각하자. 직장인이면 연말 정산이 될 테고, 혹은 다음 주 내가 주축인 회의일 수도 있다. 심리상담을 조금 무리해서 일정을 등록하거나, 여행 혹은 헬스장도 좋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제안해 봐라. 그 안에 죽지 않도록.


여기까지 읽었으면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나 공유는 끝났다. 이다음은 그냥 내 이야기니까 뒤로 가셔도 된다.



원래 그 무엇도 궁금하지 않고, 남의 이야기마저도 벅차고, 내 숨마저도 번거로울 때는 죽는 게 답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딱히 그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우울증을 겪으면서 사회적으로 한국 젊은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높은 스펙과 좋은 일자리 등을 가지지 못했다. 늦어졌고 가졌으나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나와야 했고, 이 나이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삶의 터전을 다양하게 옮기면서 이 스펙은 '사실 당연한 게 아니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당연시하게 여겨짐을 알았다. 4년제 인서울 사립대학교를 알바 정도로 다닐 수 있는 가정환경에 태어난 사람은 운이 좋은 거였다. 더 나아가 공부나, 흔히 말하는 대기업에 들어갈 정도의 스펙을 쌓는 환경, 운, 재능, 노력의 역치를 가진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저기 나오고 있지만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중 하나라도 혹은 모두 없는 젊은이들도 허다했다.


사람들이 궁금하지 않다.


아무도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았고 나도 그들의 이야기와 나에 대한 반응이 궁금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몇 년간 나에게 큰 의문만 주었고 사회와 노력과 스펙이라는 구조도 점차 조금의 근거도 이해할만한 시스템도 보이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사회에 나와서 겪은 리더급의 (보통 내 세대를 엠지라고 부르거나, 이런 것도 꼰대냐고 자조하는 사람들) 어른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냥 기분 나쁘다고 내 생존권인 채용을 뒤집으면서 사회적으로 좋은 척하는 어른. 내가 진행했던 아이디어를 묵살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걸 자기 것처럼 사용하거나 자기가 만든 것처럼 보고하던 40대들.

조카 혹은 자녀뻘인 내게 뭐가 수틀렸는지 1년 내내 고문처럼 하루 3시간 이상 인격모독을 하고 남들 앞에서 ‘나는 바보입니다’를 외치게 했던 전 회사의 리더 2명. 난 그들을 죽이는 꿈을 꿨고, 이제 더 이상 모든 것도 기대가 되지 않았을 때, 죽기로 결심했을 때 그들을 죽이고 가야 할지 고민했었다.


내 주변, 특히 친했던 친구들은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들어갔으면서 몇 번씩 채용이 뒤집어진 내게 그 관련 고민상담을 한다. 그들 입장에서야 큰 일이지만 생존으로, 무너진 자존심으로 허덕인 내게 사내연애나 워라밸은 알 바가 아니다. 취업준비를 하는 내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안 만나주면 비꼬거나 아예 납득을 못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제 나름 단짝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하루도 궁금해지지 않았다. 싫은 게 아니라, 평생 안 보고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미래도 궁금하지 않다.


어차피 해도 안된다.


영어 시험을 10번 가까이 쳤지만 10번 모두 같은 낮은 점수가 나왔다. 그냥 시험 삼아 쳤을 때도, 30만 원 넘는 수업을 듣고 쳤을 때도 말이다. 보상 없는 노력을 하기 싫다고 하면 높은 사람들은 그런 세속적인 거 말고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라고 한다. 그런데 뭘 해도 안 좋은 결과라면 사는 게 무슨 의미인가? 어차피 떨어지고, 어차피 그 점수가 나오고,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게 일어난다면. 대기업만 보지 말고 낮은 곳은 널렸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그런 곳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통하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것은 내일이 궁금하기 때문이고, 알 수 없기 때문이다. a을 하든 b를 하든 a를 하더라도 열심히 하거나 거꾸로 하거나 대충 하거나… 어떻게 해도 d라는 같은 답이 나온다면, 그리고 그 d로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면. 그래서 나는 어차피 d라면.


안 하면 0%고 하면 0%는 면한다지만 지금까지 해도 안 해도 0이 나왔다면.


그러면 더 이상 나는 이 세상에 궁금한 게 없다. 누군가의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를 괴롭힌 전 직장의 부장 팀장 대표들이 왜 그랬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하지 않다. 이제 소중했던 사람들도 궁금하지 않다. 그들이랑 무엇을 할지, 그들은 왜 나를 이해하지 않을지, 왜 내가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를 할지, 언제 만날지, 내가 없어도 잘 살지 못 살지, 나에게 그들이 어떤 의미이며 그들에겐 내가 어떤 존재일지.


전혀 궁금하지 않다.


그럴 때 나는 이제 죽음을 계획하고 이행하기보다는 글을 쓴다.


아마 20살 때부터 유구한 나만의 전통이었을 것이다. 두어 번 정도 각오했던 죽음에 실패를 했다. 나는 그때도 글을 썼다. 발행했는지 어딘가에 묵혀두었는지… 이제 10년이 다 되어가서 잘 모르겠다. 10년이라니, 난 이 지긋지긋하게 안 풀리는 20대를 10년이나 살고 있구나. 20대에 약간의 수확이라도 있어야 남들이 그나마 낫다는 30대를 맞이할 텐데. 내 인생이 미래를 바라보고 기대할 정도였던, 꽤 한국의 학생으로 유리한 위치였던 때는 수능 이후로 끝났다. 어떻게 지금 내가 그렇게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도 많았는지, 대학은 나름 좋은 곳을 와서 졸업프로젝트를 1등 했는지, 다른 사람 같다.


어차피 살아가는 게, 사는 것을 선택하는 게 당연한 답이라면, 죽음을 미뤄보기로 했다. 약간의 책임을 더하는 것이다. 인스타툰을 재개하고, 멍 때리는 동안 갑자기 에세이분야 크리에이터가 된 김에 담주부터는 연재 글의 컨셉과 목차를 완성하려고 한다.

(몰랐다. 나도 내가 에세이분야일 줄은. 기준이 뭔가?)


위에 적은 대로, 다른 사람도 아니라 종교가, 삶이, 세상이 말하는 답이 일단은 살아있는 거라면. 자신의 손으로 삶을 끝내지 않는 게 끝내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당연히 낫다면 말이다.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일정을 등록해 버린다. 제법 효과가 있다. 물론 좋은 인생이나 결과를 만들어줄 순 없지만 죽음을 보류하는 것에는 효과가 있다. 이런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아마 염치없거나, 민폐 끼치기를 싫어하는 부류일 거라 생각한다. 당연하지, 남에게 민폐 끼치고 잘 사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어쨌든, 취소되면 약간 남들도 귀찮아질 일을 잡아라. 나처럼 연재 다시 할 거라고 떵떵쳐도 된다. 헬스장이나 심리상담이나, 프로젝트는 한 달 뒤의 것으로 잡거나. 한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알아서 해라.


다행히 나는 방금 궁금해지는 일이 하나 생겼다. 지*바의 순살 소금구이가 맛있다는 추천을 받았다. 나는 지*바는 늘 양념만 먹었다.

그래서 어제부터 쫄쫄 굶었기에 한번 시켜보려고 한다. 반반으로.


내일은 다시 계약직 일을 가고, 일이 적으면 자소서 일정을 보면서 내 영어 성적으로 비벼볼 만한 직무로 들어가 봐야지. 이번주 골골댄 만큼 또 당연히 안 좋을 결과가 나오지만 시도해야 할 일들이 밀려있다. 계속 똑같이 할 수는 없다, 나도 올해 안에 전 직장보다 보수나 규모가 작더라도 어디든 들어가긴 해야 하니까. 아마 선택과 집중을 하거나 지원 방향을 틀어보겠지. 그래도 난 아직 궁금하지 않다. 소금구이 같은 정도의 궁금함으로 오늘 죽을 수도 있던 내가 1시간은 미뤄졌으니까.



내가 살면서 더 알아야 할 게 있을까? 나는 죽는 게 나았을까?


20대 초반에 죽지 못했던 나날을 생각해 보면, 그 이후로 ‘그래도 살았어서 다행이야’라고 할만한 삶을 살았는가? 잘 모르겠다. 겪지 않았어야 했던 일도 내 잘못이든 아니든 겪었고, 극적으로 살아난 것 치고는 보람찬 일상이 이어지지도 않았다. 그건 우울증 전 후 모두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보류 중이다. 소금구이 반반을 시켰고, 계약직 일은 지인이 관계되어 있으며, 12월 연말엔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거나 보드게임을 1박 2일 동안 하기로 했다. 갑자기 나란 사람이 사라지면 제법 곤란할 것이다.


그리고 죽고 나면 날 괴롭힌 나잇값 못하는 몇몇 어른들이 내 죽음에 자기들이 기여했을 거라고 내심 뿌듯해하며 살아갈 것도 감당하고 싶지 않다.

내일은 얼른 브런치북 목차나 써야지. 한번 해보고는 싶었다.


굉장히 긴 글을 써서 민망하다. 여기까지 다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9시다. 내일을 위해 일찍 주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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