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없어 보인다는 말을 듣지만, 나는 결론을 사랑한다. 특히 더 나은 삶과 자기 자신, 주변인들을 위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문제 제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데는 엄청난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희망을 이야기하면 굉장히 멍청해 보인다. 친절해지면 호구가 잡히고 피해를 받아도 가해자보다는 멍청한 피해자만 돋보이곤 한다. 2차 가해는 이제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절망스러운 주변 환경을 보고, 뉴스를 보면서 내가 가장 절망을 느낀 점이 있다. 그건 바로 인간은 그럼에도 살아있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책부터 뉴스까지 나와 같은 입장의 사람들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을 겪는지,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는지. 통계부터 전문가들의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현실을 꼬집는 듯한 책도 많이 찾아봤으나 책이라는 게 그렇듯 갑자기 ‘닌자가 나타났다 하이야앗’하고 끝내버리더라. 우리 모두 불평을 말하고 더 잘 전달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사실은 자주 까먹는 것 같다. 그래서 갑자기 네이버 블로그의 ’그’ 따봉 임티같이 결말이 나버리는 거다.
당신은 결정을 한 적이 있는가?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남들이 말하는 좋은 스펙을 가져본 적도 없기에 ‘이렇게 해라’고 말해줄 경험도 없다. 다만 20대 후반이 되어 20대 초반의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주변도 너 자신도 끊임없이 바뀌고 뒤집힐 테니 해야 할 일을 찾아서 묵묵히 하라는 응원뿐이다. 정답이 없으니 너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정답이길 바라면서 남들을 찔러보는 일은 의미 없다는 말도 덧붙이고.
이제야 대학생이던 시절, 들었던 교수님들의 말이 조금씩 이해가 되어가고 있다. 정확히 어떤 의미였는지는 더 내 시야가 넓어져야 하지만 말이다. 나의 첫 번째 ‘결정’ 경험을 공유해 본다.
나는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친화력이 좋지 않은 데다가 상경(?)한 학생이었기에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었다. 특히 여학생이 적은 전공이었기에 더욱 마음 맞는 동성 친구가 없었다. (동성 친구 없으면 너무 외롭고 심심하다.. 나이 든 지금도 그렇다..) 너무 점수가 나오지 않으니까 2학년 전에 교수님 중 한 분께 메일을 넣었다. 공대 특성상 한 학년에 최소 150명, 복학생까지 합하여 전 학년은 500명이 넘어갔을 때였다. 그분은 당연히 나를 몰랐고 나도 그분을 몰랐다. 그냥 내 학번라인의 지도교수는 그분이어서 메일로 전공 바꿀지 고민된다고 적었을 뿐이다.
이 전공은 네 길이 아니니 전공을 바꿔라, 를 듣고 싶어서 간 자리였다. 혹은 그만두지 마라, 는 말을 듣고 싶었다. 결정과 방안을 내어주길 바랐다. 내게 어른들은 자신의 결정대로 하지 않으면 온갖 수를 써서 나를 꺾는 존재였으니까.
나와 아주 짧은 대화를 하던 교수님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네는 어느 전공을 가더라도 그 고민을 하게 될 거야. 지금 중요한 건 자네의 전공이 아니야. 자네는 이 전공이 아니었어도 그만둘지 고민했을 거야.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번 시험범위에서 A가 재미있고 자신 있었으면 기계가 좀 더 맞고, B가 재미있었으면 전기과가 좀 더 맞을 수 있다는 학문적인 참고내용뿐이야.
충격적이었다. 내가 살아온 20년은 어른이 원하는 사항을 맞추고, 그에 맞게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그런 내가 갑자기 나를 알고 나만을 위한 결정(심지어 실패하면 전부 내 책임인)을 하라니. 그걸 일깨워주는 어른이라니? 혼란스러웠다.
사실 잘 모르겠더라. 지금도 그게 맞았는지는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그 전공에 남기로 결정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과 졸업 프로젝트 1등이었음을 감안하면 잘 한 선택이고, 설계 인턴 경험 후 다른 길인 기획 및 마케팅으로 직무를 변경한 지금을 보면 못 한 선택이었다.
다만 내게 이 경험은 제법 의미가 깊은데 , 첫 번째로 내가 온전히 진지하게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고 그 이후에 남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두 번째로 결정에 미련이 없을 만큼 최선을 다 한 결정이었다.
이것저것 도전해 보고 공부도 끈질기게 해 보고, 팀 프로젝트도 하면서 동기들에 비해 낮은 능력치로 절망도 해보고, 분노(주된 원동력)도 해봤기 때문에 사회에 나가서 다른 직무를 고려하는데 큰 망설임은 없었다. 이렇게 억지로 했는데 좋은 경험을 이뤄낸 걸 보아, 내게 어느 정도의 끈기나 능력치는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절망과 밑바닥을 경험했기에 다시 맨땅 헤딩이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물론 우린 살면서 성장하듯이, 이것 또한 내게 부작용이 있었다. 이후에 너무 빠르게 새로운 것에 도전하거나 전환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그걸로 최근까지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된 이야기는 별개이니 넘어가겠다.(하지만 살려줘)
다시 돌아와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결론을 짓고 이를 결정하는 모든 과정을 좋아한다. 그 결말이 희망차지 않고 체념이 섞여 있더라도 눈앞의 절망과 비참함을 인정하고 우뚝 서는 장면이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