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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Dec 18. 2023

잘난 사람들 알레르기가 있는 작가의 500번째 글.

뭔 투덜거리고 우울해하는 글이 벌써 500번째냐.

사실 그냥 아무 글이나 쓰려고 했는데, 갑자기 499개의 글을 보고는 500번째 글을 허례허식을 갖추기로 했다.

바쁘다 바빠

나는 써온 글과 브런치를 해온 햇수에 비하면 구독자 수는 적은 편이다. 하지만 꾸준히 변하지 않는 숫자들을 보면, 내 글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속 내 글을 찾아주심을 느낀다. 그 따뜻한 마음으로 어쩌면 오늘도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아이패드를 두들기는 것이다.

제법 진지하게 글을 썼다.


나는 잘난 사람들 알레르기가 있다. 당연히 열등감 때문이다. 부러워서 쌈바춤을 추게 된다. 아무리 한국 사회의 스펙 중심의 문화가 옳지 않다고 해도, 그 문화에서 태어나자마자 20년을 살아온 내가 자유로워지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 또한 그런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 왔고 그 직전까지 가봤지만, 항상 모든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인생이 이렇게 흘러감



SKY에 갈 수 있다고 믿어서 반수를 했지만 원래 대학교로 복귀했고, 대기업 인턴 및 최종 면접까지 갔으나 최종 합격은 하지 못했다. 취업 준비- 사회초년생 기간  자존감은 더욱 떨어지는 데다 고용 협박, 인격모독을 일삼는 리더들을 만나서 모든 것을 포기했고,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런 외부 환경과 사람들이 반복되는 건 나에게 요인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이긴 하다. 왜냐면 안 겪는 사람도 너무 많아) 그동안 과체중을 넘어 비만까지 몸이 불어났고, 옷도 머리도 대충 하고 다녔다. 그런 젊은 여성에게 한국 사회가 어떤 시선으로 어떤 공격을 해댔는지는 뭐, 말 안 해도 다들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500번째이니 곧 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했거나 못 할 단편적인 생각들을 적어보겠다.



올해는 제대로 된 출발선을 인지한 해.



올해는 내가 그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해였다. 그 과정과 결론 모두 죽을 듯이 괴로웠다. 아직도 ‘왜’ 쟤네가 될 수 없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 쟤네가 될 수 있을까?’는 ‘왜 난 쟤네가 될 수 없을까’만큼 무의미하더라.

같이 망하자 공평하게!

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의 반응이 나온다. 그런데 다른 일과 경험을 30년 가까이 겪은 사람들이 잘난 다른 사람 같아지기는,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힘들 것이다.
어쨌건 출발선이 여기인것이다.


여기, 나.


그게 싫어서 도망쳤다. 출발선에서 도망쳤으니 그 무엇도 진행되지 않았다. 방황한 만큼 내 땅이긴 하지만 방황하지 않았으면 훨씬 상황은 좋아졌을 터. 그래서 다시 이 초라한 출발선으로 왔다. 과거도 현재도 모두 너덜너덜한, 입만 산 사람으로. 그렇기에 그런 ‘나’로 말이다.




타인에 대한 시야가 굉장히 넓어진 한 해.

나는 불행 패시브가 있어서인지 사주에 뭐가 씌었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굉장히 많이 꼬이는 편이다. 나쁜 사람이 내 또래일 경우는 괜찮은데 웃어른일 경우 나에게 정신적, 신체적 그리고 사회생활에 나가서는 생존권을 위협받게 되었다.


들을 원망하고 혐오하고 앞으로 연상, 그 모든 어른이란 작자들은 믿지 않겠다고 이를 갈던 게 올해의 일. 하지만 이제는 그 에너지는 나에게 쓰고자 한다. 용서? 아니다. 난 그들 이름 하나하나, 얼굴 하나하나 똑똑히 기억하고 한을 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보다 내 인생이 훨씬 더 중요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소위 ‘빌런’이라는 멋진 닉네임으로 불릴 수 없는 한심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자기들보다 나이가 적고, 자기들 밑에 있어서 고용 협박(실제 인사팀은 없었기에 그냥 정말 자기들도 쓸 수 없는 협박권임.)을 받거나 도움을 받을 위치의 막내 사원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못 할 일이었다.



실제로 나는 끊임없이 인격모독과 고용 협박을 당한 전 직장에서 그들 말대로 그만둬주었다. 그러자 마지막에 날 괴롭힌 사람 중 한 리더가 굳이 굳이 나에게 와서 ‘부모님은 너 퇴사 뭐라고 하냐?’/’나에게 궁금한 거 없냐, 조언받고 싶은 거 없냐.’고 했다. 그때는 어쩔티비이랬지만 지금은 안다. 왜 그랬는지.



먼저, 내가 퇴사하면 자기들이 나한테 행사하던 폭력의 영향권이 없어지던 것이고
두 번째, 내가 이 결정을 번복하고 매달리길 바랐다랬다.


흠..아무리 생각해도 답없는 놈들..


그 모든 것을 봐도 40대가 넘어가는 사회생활 많이 한 어른이 할 행동과 생각은 아니다. 그러니까 ‘가치’가 없는 것이다. 신경 쓸 가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냥 운동하고 아프면 쉬고 그래서 다시 자기소개서를 쓰든 면접 공부를 하든 해서 내 앞길이나 챙겨야 한다.



큰일 날 일은 없었다.


나는 대기업 정규직으로 첫 취업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대기업은 아니어도 꽤 괜찮은 기업으로 정규직으로 좋은 초봉을 받아야 한다고. 왜냐면 대기업으로 처음 출근한 사람들이 모두 그래야 한다고 했으니까.

주변에 이미 나보다 잘났는데 나한테 고민상담하는 애들 보면 이렇게 됨. 너흰 생활비 걱정 하니?

그러나 나는 취업 준비를 하면서 사무 보조나 계약직 등을 거치고 있다. 일단 돈이 있어야 월세를 내든, 심리상담 비용을 내든, 밥을 먹을 것 아닌가. 먼 길거리에서 보면 사무보조가 본업이 되어서는 안 되고 나 또한 좋은 곳에서 일할 자격과 준비가 되어있다고는 안다. 하지만 지금 그것으로 연명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진 않더라. 허세, 그래 허세가 잠깐 꺾여도 괜찮았다. 나는 더 나를 위해 사람들을 찾고 찾아가고 좋은 기업의 좋은 자리를 위해 노력할 거고 이 기간이 길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일단 지금, 이 상황에서 한 사람을 (나) 먹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일인가. 씁쓸하지만, 비참해하지는 않기로 했다.


내가 당장 지금 훌륭하지 않아도 별 탈이 없었다.



이제 다시 적어야 할 글들과, 마주쳐야 할 현실들로 돌아가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명확하지만, 노력에 비해 엉망이 되었던 과거를 생각하니 하기 싫어진다. 그럼, 전략을 다시 세워서 꾸준히 가 보는 수밖에 없겠지. 인간관계든, 취업이든, 앞으로의 나의 삶과 건강 모든 것들을 통틀어서 말이다.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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