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말을 안 듣고 일장연설을 하는 게 대부분이다.
요즘은 그 누구와도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들 아는 것은 많고, 자기 말이 제일 중요하다 보니 눈앞의 듣는 사람은 그냥 자신의 말을 입 닫고 듣고 호응해 주는 ai정도로 아는 것 같다.
이를 실감한 것은 최근이다. 오랜만에 본가 근처의 동네 카페에 갔다. 대학생 시절부터 갔던 곳이라 직원분이나 사장님 등등은 내게 말을 자주 거신다. 문제는 내가 취직 후, 퇴사를 하고 평일에 오자 오지랖을 빙자한 이야기를 음료 받기 전부터 받은 후까지 계속하신다는 거다. 처음에는 대화라고 생각했으나,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자기 이야기(및 누군가에겐 배려 없는 이야기일 수 있는 자기 생각)를 발설하는데 그쳤다. 그 대화의 일부는 아래와 같다.
-평일인데 어떻게 왔어요?
>나: 저 아직 퇴사 후 취준 중이에요~
-그래? A공학 나왔다 하지 않았나? 여자애들은 A공학 나오면 다 회사에서 데려가려고 하던데.
>나: 네~그런데 저는 전공 안 살렸고요, 그때 말씀드린 대로(이거 만날 때마다 말해서 2년째임) C분야로 나가요. 그전 경력도 짧지만 전부 C랍니다, 하하
-내 딸은 B공학 보내려고, A공학보다는 취직이 요즘 잘 되더라고. 그냥 A공학 살려서 취직해요!
>나:(몇 번째 같은 말이지) 네~그런데 저는 A공학했는데, C분야 경력이 있고 그쪽으로 가려고요. 실제로 A공학 살려서 회사 갔는데 안 맞아서 C분야 간 거라서요.
-A공학 살려서 취직 후 다른 분야 가면 되지! 첨부터 하고 싶은 게 되나?
난 여기서 말을 그만두었다. 내가 앞에서 수백 번 말한 A공학 살려서 취직했지만 안 맞아서 C로 갔고 C분야 경력이 있다는 말을 제대로 들었으면 다시 A공학 살려서 취직 후 다른 분야 가라는 말이 나올 리가 없다. 그냥 내 말은 안 듣고 자기 말만 하고 싶어 보였다. 아마 당분간은 본가에 가도 이 카페에는 안 갈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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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부분의 대화가 이런 느낌이다. 그나마 친구들이랑 하면 괜찮은데 연장자와 대화하면 대부분 이렇다. 자기가 앞에 말을 제대로 안 듣고 자기 말만 하다가 몇 번 알려주면 진작 그렇게 말하지 하고 화낸다. 이것도 자기가 위에 있으니까 앞의 사람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 요즘 사람들은 타인을 함부로 대한다. 그런데 타인을 함부로 대하면서 자기가 조금이라도 침해(침해 수준도 아님 자기가 그은 선에 사람이 주변에 지나가기만 해도) 온갖 난리를 피운다. 그게 대화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종종 카페에서 5명이 모이면 5명 모두 동시에 다른 이야기를 하는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런데 신기하게 자기 줏대가 있는 사람은 또 적다. 자기 이야기만 할 거면서 남의 이야기는 조금이라도 듣는 순간 바로 휘둘린다. 너무 많은 문제가 있는 탓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접할 기회가 널려있는 탓일까.
이렇게 말하는 나도 그런 사람이다. 어쩌면 내가 앞에서 묘사한 모든 사람들보다 내가 더 심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 힘숨찐(힘겹게 숨은 찐따)으로 투덜거리고 있는 것이다. 남의 말 듣긴 싫고 내 이야기는 들어줬으면 하는 모든 이들에게 글쓰기를 추천합니다. 어쨌든 다른 이야기로 새어나갔는데, 나도 그냥 내 말만 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말이 겹치고 부딪혔다. 처음에는 원래 사람이 말하다 보면 겹치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내가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고 듣기는 싫어서 남들 말에 끼어들거나 일단 말을 하다 보니 오디오가 겹치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요즘 그냥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에 맞는 말, 그나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 같은 투머치토커는 그냥 입을 의도적으로 조금은 닫고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이런 나에게 오늘 여행 간 북카페에서 다가온 책은 이것,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나온 지 오래된 책이지만, 나는 품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니 품위만 있고 제1인분을 못하는 사람인 것은 아닐까. 아니 아니 그럴 거면 품위 있는 사람이라도 되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