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을 넘어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시기가 있다. 나는 이걸 크게 '상황'과 '상태'로 나눈다.
즉, 상황은 외부고 상태는 내부다.
상황은 안 좋은데 상태는 괜찮음.
적당한 약을 복용하여 스스로를 열심히 돌보려 한다. 하지만 계속되면 상태도 안 좋아짐.
상황은 좋은데 상태는 안 괜찮음.
보통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엄청 심해진다. 상황이 좋아질 수 없음.
상황도 안 좋고 상태도 안 좋음.
대부분 이렇다.
상황 좋고 상태도 좋음.
수상하다.
인생이 분명히 안 보이는 심연 어딘가에 큰 엿을 준비해두고 있거나 당신이 맛이 간 것이다.
나에게 자기 계발서는 상황과 상태가 모두 나쁘지 않다고 착각하게 해 준 책들이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상황과 상태가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를 생각하면 상태가 조금은 좋아져서 상황 타계할 힘이 생기기도 하고, 오히려 알 수 없는 회피감과 신앙심만 생기곤 한다. 세상이란 게 원래 그림자와 빛이 있길 마련이다.
어쨌든, 코로나 직후 모든 취업문이 닫히고,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져버려서 숨이 막히던 몇 년 동안 나는 자기 계발서를 읽었다. 울다가도 괜찮아 보이는 말들, 실제로 노력한 이들의 사소한 팁들을 읽으면 이 시기도 지나간다고 믿을 수 있었다. 언젠가 이 시기를 잘 보내서
'제게 그런 시기도 있었죠.'라고 회상하는 미래의 내가 있으니 현재에서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다.
뭐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돈 털어서 어떤 유명한 인플루언서의 자기 계발서를 샀더니
그냥 지가 씨부린 인스타그램 텍스트들 모음이었길래 자기 계발서 붐은 내 안에서 식었다. 몇 년 뒤에 몇몇 자기 계발서 저자들이 사기 수법들이 드러나면서 더욱 내 안의 흑역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덕분에 그 몇 년을 버티게 해 준 자기 계발서들이 있다. 난 자기 계발서를 왜 읽었던가? 모든 게 망해버렸고 앞으로 망한 삶 또는 죽음만 존재하는 것 같을 때, 미래를 보게 해 줬다.... 고 하면 사이비종교 같은데.
하지만 원래 사람들은 의지할 곳이 있으면 마음속에서 기적을 일으키곤 하니까. 종교랑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좋은 구절의 책들을 읽는다.
얘네를 자기계발서라 하긴 그렇고, 멀쩡하고 명작이라 할 수 있는 책들임. 근데 다른 사진이 없네요.
내가 앞으로 뭐 큰 건 아니어도 세상을 살아갈 힘은 있다고 알려주는 구절들 말이다. 그러면 나는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기 계발서는 나처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데 최적화된 사람들에게 제법 좋은 에너지 드링크다. 예를 들면 이런 문구가 있다고 치자.
"존은 어머니가 남긴 거액의 유산을 고작 사업 준비를 하는데 다 써버렸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절망하면 자신을 위해 돈을 물려준 어머니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에 다시 일어났다. 공부해 온 것들을 토대로 누군가의 과제를 돕고, 과외를 해 주는 아르바이트뿐 아니라 일용직, 서빙 알바를 하며 밤에는 시험공부를 했다. 자신의 돈을 벌며 사회에 나가서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셈이다."
여기서 "어머니가 유산을 주다니. 다시 일어난 배경이 있는 거 아냐? 고작 복귀의 수단으로 또다시 몸 편한 전문직을 위한 시험을 보러 가다니."라는 촌철살인보다는
"오, 돈 없음. 오, 직접 돈을 벌기 위해 밑에서부터 시작."에 대강 초점이 맞춰지는 사람에게나 자기 계발서가 효능이 있다.
물론 그래도 이상한 거 전파하는 쓰잘 떼기 없는 책이면 다 소용없지만.
이대로 자기 계발서 어쩌고 하면서 글을 마무리짓긴 아쉬우니 몇 권을 추천해보고자 한다. 머릿속에 "이게 뭐여?" 하는 의문과 헛웃음이 그나마 적고 도움이 되었던 책들이다. 당연하겠지만 개인 취향 주의.
타이탄의 도구들(팀 페리스)
나는 인생의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바꾸기로 했다.(개리 비숍)
빅매직(자기 계발서라 하기 좀 그런가?)(엘리자베스 길버트)
즉, 나는 지금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책들을 좋아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요가하기, 명상, 자신의 작은 안 좋은 습관, 좋아하는 일 찾기. 등등...
비추하는 책들.
알 수 없는 신념을 전파하는 모든 책들.
마음가짐을 넘어 뭔가 이상한 것을 믿으면 세상이 바뀐다고 하는 책들... 혹은 모든 걸 걸어서 노력하라고 하는 책들. 저는 별로 목숨은 걸고 싶진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