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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Oct 06. 2024

노답인생러, 나름 성장했습니다.

진짜임 믿어주십시오.

제목보고 오신 분들에게 미안하지만 사실 최근에 더럽게 힘들다. 그런 주제에 이 글의 주제를 <성장>이라고 둔 이유가 있다. 이렇게 힘들고, 남들이 보기에도 내가 보기에도 고생 또 고생뿐인 일상이지만 내 30년 가까운 세월에서 '가장 편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니까. 나는 드디어 아니 이제서야 '살아가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나는 늘 살아남았다.

디데이가 익숙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디데이와 마감이 익숙하다. (그래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연재 브런치북이 없으면 포스팅도 드문드문하는 것이다.) 집안에서 살아남고, 어른들이 수능 외에는 모든 가치를 덮어버리는 학교에서 살아남았다.


당시 전교 3등까지는 고등학교 장학금이 나왔는데 그 상장을 모두 앞에서 수여받지 못했다. 남들보다 진도가 빠르다는 이유로 왕따의 대상이 되었기에 나는 뒤집어진 상장을 남들 몰래 받았다. 애들이 예민한 시기이니 남들에게 네 전교등수는 말하지 말라는 선생님의 속삭임을 들으며 상장을 숨겼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우리 집안의 기둥이라 불리는 어른들은 세상을 떠나거나 병원에 입원했고, 이전부터 내 목을 졸라왔던 모순덩어리 어머니와 아버지의 괴롭힘도 심해졌다. 가장 중요하다는 9월 모의고사 전날에 서로 쌍욕을 하고 나는 가출을 했고, 쉬는 시간마다 토를 하면서 모의고사와 수능을 마쳤다. 성적은 고등학교 3년 중 최악의 성적이었으나 운이 좋게도 대학 입학이라는 성공으로 지긋지긋한 집안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디데이와 미션들이 주어지는 서울이라는 곳에서 또 살아남으려 했다.

반전은 없소.

하지만 실패한 학생이 되었다.


졸업장을 받고 죽으리라 결심했다. 막상 졸업프로젝트에서 1등을, 그것도 팀으로 하자 삶이 아까웠다. 인턴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 했다. 정규직이 되려고, 코로나로 인한 취업난에서 알바라도 하려고, 사이코패스로 유명한 부서에 유일한 신입으로 들어가서 등에 칼을 꽂는 시선을 버티면서 살려고 했다. 살아남으려고 했다.


그래서 성장은 언제 한 거냐고요? 조금 더 들어보세요. 살아남는 것을 포기한 순간이 제가 성장한 순간이라고요.


뭔 헛소리냐고요? 제가 말이죠, 살아남으려도 발버둥 치지 않으려 했거든요.

이 순간을 살기로 했거등요.

모든 순간에 준비생으로 남는 삶은 포기했다. 지금 이 순간도 나의 삶이라고 믿기로 했다. 퇴사했다. 29살이었다. 알바에서도 나이가 많다고 까였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여자라는 이유, 정확히는 '만만치 않아 보이는 여자'라는 이유로 뽑히지 않을 뻔했다.


 지금은 그러나 막내에 만만한 여자사원이라는 이유로 모든 하대를 받는다. 어찌 되었거나 사회란 것이 정답은 없고 지들 마음대로 평가하고 이름을 붙이더라. 그렇다면 나도 거기서 하고 싶은, 얻고 싶은 것을 얻고 떠나기로 했다.


일이 괴로웠다. 하지만 일이란 것이 무엇일지, 경력은 무엇일지, 막내란 무엇일지 고민했다. 말을 어떻게 해야 내가 덜 불리할까. 저 사람에게는 어떻게 다가가야 원하는 바를 얻거나 이슈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일을 해야 제시간에 퇴근해서 운동을 갈 수 있을까. 나는 여기서 경력을 쌓을 수 있을까?


나중에 알았다. 그렇게 나를 괴롭혀온 <타인의 시선>이 최근 내 고민에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내가 뒤에서 <마이페이스>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마이페이스라 평가받더라도 내가 그 어떤 정말 1g의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는 상태까지 확인했다. 거 참, 신기하네. 나는 있어 보이려고 미친 듯이 살아남았던 사람인데 말이다.


다시 돌아와서.

저는 요즘요, 더럽게 힘들어요.


더럽게 힘들다. 내가 그냥 혼나고 말거나 누군가의 지적에 움츠려서 주눅이 들던 20대 초반이면 괜찮을듯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다른 곳으로 가거나 여기를 떠나는 게 두렵지 않다. 그래서 슬쩍슬쩍 저항한다, 있는 힘껏 근거를 댄다. 하지만 어제보다는 더 능글맞게 말한다. 회사에서? 아니, 모든 곳에서. 운동을 못하면 머쓱해하지만 내일 갈 수 있으면 가지 뭐, 하고 만다. 최근에 약속이 많아서 돈이 빠듯하면 짱친에게는 '돈이 요즘 쫄리는데 조금 싼 거 먹을까'한다. 기꺼이 남들 앞에서 '저는 미디움 아니고요, 라지 겨우 입으니까, 옷 사이즈 잘 보고 살게요!'라고 한다.


나의 성장은 이 모든 순간을 내 삶으로 인정했다는 것. 더럽고 치사한 순간임에도 강 00이라는 사람이 이 순간을 살아가다가 언젠간 그만둘 거라는 진리를 곱씹게 되었다는 것. 안타깝게도 그 외에 뭐 성숙해졌다거나, 쿨해졌다거나, 다이어트를 했다거나, 돈을 잘 번다거나 하는 성장은 없다.


그럼 갑자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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