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들은 너를 함부로 대한 예의 없는 사람들이야.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였는데 곤란한 일이 생겼다.
아무래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사촌동생은 자기보다 훨씬 어린 다른 동생 말고는 전부 성인인지라(최소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 재미가 없었나 보다. 우리들은 그냥 밥 먹고 얘기하고 카페 가서 얘기하는 것이 즐겁게 노는 것이니까 재미가 없을 만도 하다.
그런데 가끔은 착한 아이 증후군인가 걱정될 정도로 착하고 잘 웃던 애가 고집을 부리는 이유를 들어보니 아하, 오후에 친구랑 약속을 잡아놓았던 것이다.
나를 포함한 친척들이 그냥 점심이나 한 끼 하고 파할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그러기가 어디 쉽나. 만날 기회가 잘 없는 우리들, 그리고 어린 나이에 혼자 대학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서 눈만 껌뻑 껌뻑 거리는 조카들을 챙겨주고 싶던 삼촌과 숙모들은 비싼 점심부터, 커피, 그리고 저녁까지 먹여주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하긴 나도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뭐 그렇게 할 거 없이 오래 있나 싶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웃고 넘겼지만 점점 사촌동생의 표정이 굳고,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 되고 야단까지 맞자,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삼촌과 숙모는 답답했던 것 같다.
“친구 한태 연락이 오면 그때 가자. 친구는 집안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너와의 약속을 취소하기도 하고, 약속을 아예 안 잡을 때도 있었잖아. 아니면 내일 만나자고 해봐. 친구는 언제나 보지만 언니랑 오빠랑 삼촌이랑 숙모는 또 언제 볼 지 모르잖아. 동생도 보고 싶어 했잖아”
이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는 참 마음이 착잡해졌다. 내가 숙모와 비슷한 위치였으면 그 분위기에서도 사촌동생에게 위로라도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내 나이와는 상관없이 그들에게는 언제까지나 어린애인 위치는 동생과 같으므로 그저 눈치만 보다가 돌아왔다.
내가 왜 착잡해졌냐고? 결국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울음을 터트린 그 아이가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혼자만 정이 많아, 친구관계에 집착하고 결국 상처받고 말 자기 자식을 보며 답답해하고 마음 한편이 쓰라렸을 숙모와 삼촌이 그때의 우리 부모님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에.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나에게 엄마는 학원 선생님이 했던 말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그때 엄마와 눈을 마주친 기억도, 그다음에 싸운 기억도 없으니까 아마 엄마의 혼잣말이었나 보다. 그리고 그건 내가 세상을 살아갈수록 뼈저리게 이해했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내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인정하면서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살아가기 힘든 나의 이런 점을 여전히 좋아하게 되었다. 한때는 싫어하기도 했고, 싫어하려고도 노력해봤다. 그런데 그건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더라. 내가 날 상처 준 사람과 같은 사람처럼 살아갈 수도 없더라. 그렇다고 내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정을 주지 않고 살아갈수도 없더라고. 사람을 싫어하고 싶은데 결국 싫어할 수는 없더라.
보증을 서준다거나 하는 범위가 아니다. (이런 건 정이 많다고 표현하지 않지요?)
그냥 약속을 어기기, 잠수 타기, 최선을 다해서 잘 해줬지만 나를 버리기. 이런 것들을 많은 사람들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아주 자주,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자주 일어난다. 그리고 그걸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남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오히려 많다. 그러다 보니 아주 당연한 도덕적 개념을 지키는 사람들을 우리는 바보라고 하고, 비웃고, 살아가기 힘들 거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지.
어차피 나는 세상 편하게 살아가기에는 한창 글러먹은 사람이다. 내내 투덜거릴 거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유로워졌다. 나는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최소한 인간관계에서 개념만은 가진 사람이었다. 즉, 누군가와의 약속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거지 나는 옳은 것이다. 내가 바보같이 살고 있다고 해도 나는 옳다. 그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있다. 세상 살면서 "내가 옳다!"고 확실히 말할 일이 얼마나 있나. 그래서 나는, 정이 많은 바보 같은 나를 함부로 대한 그 사람들을 마구 욕하고, 앞에서도 욕하고, 뒤에서도 욕하고, 싫어하고, 가끔 온 힘을 다해 면박을 주고, 나의 사람들과 함께 그들을 비웃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나쁜 사람을 욕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아니, 애초에 뒷담이 좋지 않다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은 나에게 충고했다. 그들의 경험과 연륜을 보자면, 그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뒷말조차 안 하기에는 그 정도로 성숙하지 못하다. 그리고 그렇게 성숙할 사람이 될 자신도 없다. 나를 함부로 대한 사람을 보며 그저 헛웃음만 짓고는 머릿속에서 그 생각 자체를 지워버리는 대인배가 되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가? 그건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에 도달해있는 경지일지도? 아니면 그렇게 태어나는 영웅이 있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그게 지금의 나는 아니다.
(친구가 말해준 나의 어록”손이 없냐 발이 없냐 뇌가 없지?”/”연락 없는 걸 보니 잘 지내나 봐?”/”그게 잘못된 줄 모른 거면 초등학교 교과과정에서 걔 한태만 도덕 교과서가 누락되었었나 봄” )
아직은 그래서 나는. 뒤에서도 마음껏 욕하고 앞에서는 더 욕하고 면박 준다. 뒷담이 안 좋다면 앞담을 더 심하게 해서 상쇄시켜버리자^^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상대방은 본인이 생각해도 핑계조차 댈 수가 없으므로 딱히 나에게 다시 공격할 수도 없다.
자신의 위치를 마음껏 활용하자. 물론 너무 배려 없이 얘기하면 안 된다. 팩트만 얘기해도 알아서 설설 긴다. 그 팩트가 그들에겐 큰 약점인걸. 너는 나를 함부로 대한 예의 없는 사람이야. 이것만 해도 끝이다.
내가 만난 상냥하고 정이 많은 어른들은 모두 강한 사람들이다.
나도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을 더 뒤로 돌려서, 친구에게 헌신하고 집착해서 결국 혼자가 되어 허무함에 훌쩍거리던 그때의 꼬꼬마였던 나를 기억한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많이 성장했고 나는 이 모습을 꽤 좋아한다. 그때 나는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기 힘든 아이 었기에 마음에 드는 내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그런 나라서 오랫동안 내 주변에 있어주는 나의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나는 매우 매우 사랑한다. 언젠가 허탈하게 끊길 관계임을 알아도. 그리고 그런 관계임을 알면 알수록 더욱 그들을 사랑하게 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을 바보 같다고 할지언정, 그 누구도 약하거나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 아닌가? 그래, 약한 사람이면 어떤가. 남에게 약하다고 말할 자격을 가진 사람을 우리 중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약해빠진 사람도 세상을 잘 살아가고 있음을.
나는 상담할 때 나의 이런 부분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라는 말을 선생님께 들었다.
언젠가 너에게도 내가 그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나보다 훨씬 강하고 상냥하고, 듬직한 꼬꼬마야. 네가 좋아했던 누군가 때문에 울게 되고, 그런 자기 자신이 한심해질 나날들이 네 앞에 펼쳐지겠지만. 너는 너의 그런 갑갑함 때문에 좋은 사람들을 남겨놓게 될 거야.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빠르게 그걸 깨닫게 될 거고 지금 내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너 자신을 좋아하게 될 거야. 너를 상처 준 사람을 이해할 에너지로 상처받은 너를 더 보듬어주게 될 거야. 나보다 훨씬 더 잘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