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더라
한 마디면 된다, 정말 딱 한 마디면 된다. 한 단어라도 괜찮으니 내가 오늘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누군가의 말이 그곳에 있다면.
3년 가까이 도전만하다가 실패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한 달 전에 완독 했다. 누군가에겐 그래서 결국 무슨 책이냐, 물고기는 있는 거냐 없는 거냐 하겠다만 나에겐 이만한 책이 없었다. 결국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한 마디를, 혹은 나와 같았던 한 사람을 어떻게든 찾아내어, 그들에게 해답을 받고 싶었던 내가 작가와 너무나도 같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었단 말인가?
취업 준비를 하다가 여러 번 좌절되고 재취업을 몇 번씩 해본 나는 자기 계발서에 미쳐있었다. 왜냐면 거기에는 거지 같은 삶을 살았다가 다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과거를 보면서 쓰레기같이 위안을 받았다가 사실 그들의 과거가 그리 내 기준 나쁘지 않았음을 보고 나면 덮었다. 나보다 행복했잖아? 그래, 나는 결국 나보다 불행한 사람이 나보다 훨씬 행복해지는 무언가를 보고 위안을 받고 싶었다. 그러니까 딱 한 마디면 됐던 거다, 내게 이 삶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한 마디의 흔한 명언이라도 좋으니까,
즉, 내게 독서란 즐거움이 아닌 그 한 마디를 숨이 넘어가라 찾아내고 빌고 비는 익스트림 스포츠였다.
그걸 해야 내가 살아. 그 한 마디 누군가가 해줘야 내가 산다고. 스스로에 삶에 대한 자신감이 도저히 없던 나날, 지금도 종종 없어지는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타인이 인정해 줘야만 살 수 있는가?
아니면 삶을 살아가는 자신감을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가?
그렇게 두 번째 콘텐츠를 하나 더 이야기해 보자.
완결 만화인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다. 줄여서 지운대라고들 많이 하는데, 말 그대로 천동설이 지배적인 그 나날에 지동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역사 혹은 지식 혹은 삶의 가치 등등을 걸고 선택하는 이야기들이다. 약간의 논픽션도 잘 활용한듯한데, 오래간만에 이 만화를 보느라 전자책 결제까지 해가면서 주말을 보냈다. 눈앞에 고문과 사형을 앞두고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바를 묵묵히 추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대체 무엇인가?
우주도, 물고기도, 삶도. 나는 왜 항상 이렇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한 세상을 마주한 이야기들을 사랑하는 걸까? 인생이 상수함수 같아서 이제 변하지 않고 나빠질 수밖에 없고 내가 거스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무력감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려고 했던 나는 왜 다시 그런 이야기로 돌아오고 마는 걸까? 정답이 없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자\>고 말해줘서일까? 내가 보잘것없는 존재이고 많은 미움을 받더라도, 사랑을 못 받더라도 살아감을 선택해도 된다고 말해줘서일까?
더 이상 차도에 뛰어들 타이밍을 재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던가. 도로에 주저앉아서 죽음을 실패했다고 울던 20대 초반은 언제부터 신호등이 빨리 안 바뀐다고 투덜거리는 20대 후반이 되었던가. 그리고 벌벌 떨면서 보행자 신호 시 좌회전을 하라는 간판을 읽는 초보운전자인 30대가 되었던가. 그렇게 멋진 일자리도, 동기들에 비해 괜찮은 직장도 갖지 못했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점에서 그때의 나에게 살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되었을까?
더 이상 내게 하루를 연장할 수 있는 남의 \<한 마디\>를 찾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지? 그냥 독서는 언제부터 하게 되었더라? 그저 흥미로 책을 시작하는 사람이 된 것은? 내일이 두려워 울지 않는 밤이 시작된 적은 언제더라? 그 짧은 기간에서도 이렇게 많은 변화가 있는데, 한번 살아볼 만은 하지 않을까. 뭐 하나 구원 같은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내일을 어떻게 잘 살아갈까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흔한 사람이 되다니. 또 별난 성격으로 직장을 적응하지 못하면 알바라도 하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래본 적이 있는 한량이 되다니.
어릴 때의 내가 꿈꾸던 것과는 좀 많이 멀어진 한심한 어른이지만, 그럼에도 이제 선택지에 삶을 포기한다는 것이 없잖아. 물론 자주 죽고 싶어지긴 하지만, 안 죽을 나를 믿잖아. 거대한 삶과 우주 앞에서 내가 느끼는 무력함을 매력으로 느끼게 될 날이 올 줄이야. 그 흔한 멋진 에피소드도, 계기도 없이 그저 살아가는 게 그리 두렵지 않은 사람이 되다니. 10년 전의 나는 아마 상상도 못 하겠지! 내가 이런 사람이 되어 어떻게든 또 아직 살고 있다는 게 말이야.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