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와의 만남을 껄끄러워하게 되었을까.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친구에게 오랜만에 만날 수 있냐고 시간이 언제 되냐고 카톡을 하자 갑작스레 전화가 온 것이다. 예전이었으면 반가웠을 그 전화가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나의 변화를 알아채자 나는 한없이 슬퍼졌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된 걸까.
“왜 갑자기 나랑 멀어지려고 하지? 나에게 섭섭한 것이 있다면 말이라도 해 주지!”
갑작스레 나와의 인간관계에서 잠수를 탄 사람들의 뒤통수에 대고 한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그 친구 입장에서는 갑자기 시원찮아진 나의 반응과 자신을 만나는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자 섭섭할텐데. 나는 왜 너와의 이야기를 피하게 되었을까. 너는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과 허무감으로, 나는 지금 네가 생각보다 눈치가 없어서 내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기를 간절히 바라고만 있다.
너는 너무나도 강했다. 남들이라면 다시는 일어날 수도 없었을 일들을 많이 겪으면서도, 우울증을 겪으면서도 너의 대범하고 잡생각을 하지 않으며 털털하게 할 말은 다 하는 그 당당한 성격을 잃지 않았다. 너는 그즈음 교회에 다녔다. 너의 모든 회복은 하나님 덕이라고 한다. 나는 유신론자이지만 그건 네 신의 덕이 아니라 너의 강함때문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물론 네 앞에서는 혼나니까 말하지 않는다) 절대자는 너의 강함에 이끌려, 그저 거들 뿐이다! 넌 멋지다 빛이 나서 너를 바라볼 수 없다!
주변에는 나와 다르게 멘탈도 강하고 앞으로 잘 나아가는 친구들뿐이다. 물론 나도 과거에 그랬겠기에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있겠지만, 우울증으로 인한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우울증을 겪었었고, 나의 고민을 잘 들어주었다. 이게 비극이었을까. 너는 너무나도 강한 탓에 위로라고 해 주는 말들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에게 그것들은 도덕책 같은 말들에 지나지 않았고,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던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자 같은 말이었다. 잡생각에 괴로워서 잠을 못 들고, 혼자 소리지르고 울고 스스로를 때리기까지 하는 나를 너는 전혀 이해할 수 없겠지. 너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사람은 소심한 사람이니까. “나는 안 그래! 얼마든지 맘에 든 사람과 친해질 수 있고, 할 말은 털털하게 해 버리니까!” 맞아, 너는 그런 사람이다. 너는 너를 정말 잘 알고 있다. 다만 아주 가끔 털털함과 배려없음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칠때가 있을 뿐이다. 사람이 어떻게 완벽하겠냐, 자기자신만 괜찮으면 만사오케이인게 이 세상이다. 너는 멋지다!
너와의 통화를 하는 동안, 너의 말 하나하나에 짜증이 났다. 그런 내가 지금 이 상황이 슬퍼서 대화 도중 몇번이나 속울음을 했는지 너는 모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섭섭해할까봐’도 아닌 그저 내 죄책감을 덜기 위해 너와의 만남을 잡는 이런 나의 이기적이고 찌질한 부분도 너는 몰라야만 한다.
사실, 나도 너와 같았다. 너는 우울증을 겪기 전의 나와 비슷하다. 그래서 너는 항상 “철경이는 나랑 비슷하니까 잘 알잖아!”했다. 나는 변했다. 그리고 네가 우울증을 겪은 이후가 내가 우을증을 겪지 않았을 때 모습이라니, 나는 너라는 존재가 참 경이롭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너와 같은 실수를 자주 저질렀다. 그 친구들도 당시에는 아마 우울증을 겪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중고등학생때는 정신과니 심리상담이니 우울증이니 안 좋은 편견들만 가득하고 관련 정보는 없었다. 그리고 컨셉을 잡는 중2병이라는 오해도 받고 했으니 그 친구들은 참 답답했겠다. 내가 그 친구들을 보면서 그렇게 복잡하게 사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중 용감했던 한 친구는 그 말이 자기에게 상처가 된다고 했다. 나는 당황했고, 그래서 앞으로는 그 친구에게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어느정도 어떤마음으로 했을지 이해가 된다. 그리고 지금 네가 나에게 하는 말들을 씁쓸하게 들으면서 그 친구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싶다.(난 너보다 더 심했으니까 그때 그 친구에게 절교 안 당한게 용하다)
너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는 너무나도 힘들어졌다. 너에게 한없이 미안했고 내가 한없이 한심했다.그래 네가 계속 말하는 “난 섭섭한 거 있으면 꼭 말해!”를 실천하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어떻게 하냐. 난 갑자기 슬퍼졌는걸. 원래 슬플때는 남 생각하면 안된다. 철저하게 나 자신만 생각하고 위해야 한다. 그러니까 아무도 보지 않는 이 곳에서 소리치련다. 나 엄청 짜증났다! 까놓고 말해서 내 주변 사람들 영원하지 않다. 다 떠날것을 안다. 내가 떠난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너의 그 배려없는 모습이 나는 참 싫으면서도 좋다. 사실 많이 부럽다.
나는 너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너는 나를 이해했던 정말 몇 안 된 사람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내가 도움을 받았으니까’같은 이유로 무슨 은혜 갚은 꿩도 아니고 너에게 친구인 척 남아있고 싶지 않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싶다. 별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너와 있을 때 즐거워서 너를 더 보고싶어하고 싶다.
다음주면 아직은 친구인 너를 만나러 간다. 우리가 친구인 동안은, 너는 나에게 최선을 다 해 줄 것이며, 나 또한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