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 하지 않았다는 게 그렇게 큰 죄일까
요즘따라 반수를 하던 20살 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 아니, 돌아간다기보다는… 나는 아직 거기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두 번째 수능을 치기 일주일 전,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의 최선에 대한 불안감과 부담감으로 인해 앓았다. 긴장 때문에 시험 중간이 아니라 며칠 전부터 아무것도 몰라요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물론 당시에는 그냥 때에 안 맞게 감기가 걸린 줄 알았다.
나는 과연 최선을 다 한 것일까?
그때 이후로 나에게 ‘최선’이란, 결과가 좋지 않아도 남들에게 덜 비난받을 수 있는 면죄부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결과에 대해서는 체념(어차피 안 좋겠지)->아 열심히 해서 뭐해->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래야…->
결과가 잘 나올 텐데(X)
그나마 남들에게 핑계를 댈 수 있을 텐데(o).
반수를 하던 때가 처음으로 무언가의 부담 때문에 앞의 것들을 다 망쳐 버릴 정도로 긴장했다고 말했지만, 생각해보면 시험 직전과 중간에 긴장으로 앞의 무언가를 전부 망쳐버린 경험은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종종 있었다. 더 슬펐던 건 다들 나를 이해해주지 못했다는 거. 그나마 떵떵거릴 정도로 열심히라도 했었으면 안타까운 시선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반수에 실패하고 복학했다. 내 눈치를 보며 위로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남들에게 미안해서 담담한 척을 했지만, 나는 몇 년이 지나도 반수 이후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최선, 열심히에 대한 회의감이 크게 남았다. 열심히 해도 결과는 안 좋을 수 있다는 것보다, 그 열심히가 어느 정도인가, 그 척도가 무엇이냐에 대한 의문이 더 컸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 해본 경험이 있으니까,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그게 큰 도움이 될 거야! 하고 생각했지만. 복학 이후로 시간이 지나갈수록 확실해진 건 하나였다.
세상은 최선이라는 절대적인 개념마저 상대적으로 줄을 세웠다. 그 안에서 나의 최선은 잘해봐야 c+, 70% 밖이다.
최선이 줄이 세워지는 기분은 최악이었다. 나보다 잘했으면 잘했지 결코 못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대학교에서 나의 최선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마나 못한 존재였다. 하나마나 못한 노력이라니! 너무한 거 아니냐. 하지만 실제로도 그런 소리를 동기들에게서 자주 들었다. “왜 그렇게 시간을 그냥 흘려?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살았냐?” 그런데 미안하게도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열심히 살아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 그냥… 너네는 왜 그리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서 나를 비참하게 만드냐. 숨은 쉬고 계시는지?
줄이 세워지는 게 나쁜 것이 아니다. 경쟁을 해야 사회가 돌아가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공부를 열심히 했고, 열심히 하려고 하다가, 결국 결과와 그 과정에서도 부담을 느꼈다.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렇게 나는 항상 긴장을 하면서 살았고, 이빨을 꽉 깨물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시험을 쳤다. 그리고 학기 내내 감기와 불면증에 시달리고 (우울증은 덤이지!) 몸은 점점 안 좋아졌다. 나는 괴로워만 했지 전혀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다. 힘들다는 소리마저도 남들 눈치를 봤다. 어느 정도 선을 넘어야만 힘들다고 말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 같았다.
아니, 내 최선은 이거다.
나는 내 최선을 인정하지 못했다. 우울증 전의 나, 지금 내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는 동기들 친구들 선배들 만큼이 최선이라고, 내 최선도 저래야 한다고. 그러니까 이건 내 최선이 아니라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젠장. 왜 열심히 해야 하냐고. 이게 열심히냐 괴롭겠지. 그리고 열심히 하기 싫다고!
물론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나를 괴롭게 한다면 그때부턴 그건 열심히가 아니라 자해 아니냐! 몸과 마음을 모두 망치러 온 구원자 같은 느낌이다. 열심히니 최선이니 그런 것들이 절대적이라고 외치고 있는 나도 결국 내 옆의 사람들의 최선을 보면서 내 최선을 줄 세우고 있는 셈이다. 내가 열심히 안 하면 결과가 안 좋을 때 남들에게 핑계라도 댈 수 있다고 했지만, 도대체 왜 핑계를 대야 하는가. 왜 과정마저도 남에게 눈치를 봐야 하냐고. 내 주변에 내가 열심히 살기 때문에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도 그들이 필요 없으니 당장 꺼지라고 하고 싶다. 나는 내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서 좋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들과 있으면 즐거우니까 그런 거지. 열심히 하지도 않는데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게 뭐 어때서. 비난받을 정도의 일은 아니잖아? 누구나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지 않냐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걸리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내가 돈을 버는 상황도 아니니까, 제대로 안 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괜찮아졌을 때 받은 만큼 그것보다 더 돌려주면 된다. 받을 때는 그걸 고마워하자. 너무 미안해하지 말자.
내가 만약 반수를 성공했다면, 행복했을까? “아닐걸”. 내 이야기를 듣던 엄마의 대답이다. 나는 2n년동안 내 실패에 좌절한 적은 있어도 성공에 기뻐하고 스스로를 뿌듯해한 적은 없다. 없는 것 같다. 안되면 어떡하지? 였지, 잘되면 좋겠다. 가 아니었다.
안되면 어때 퉤.
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과정을 그만 괴로워하고 싶다. 적당히 힘들어야 최선이고 열심히지 숨 쉬는 것 마저 괴로울 정도로 부담스러우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 누구는 그걸 보고 나중을 위해 고생하는 거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마음고생하는 거 싫다.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살면 좋을 텐데. 나도 너도. 잘 하지 못해도 좋고 열심히 살지 않아도 좋은데. 열심히 하기 위해 열심히 하지 않아도 좋은데. 최선을 인정받지 않아도 좋은데. 스스로에게 잔인하지 않아도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