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ul Jul 29. 2018

철없는 20대의 인간관계에 대한 보고서

(1) 그냥 전반적인 느낌

20대 중반, 대학생인 나는 ‘인간관계’에 대해서할 말이 참 많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20대 초중반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고 회의감을 느낄 것이다. 초,중,고를 지나면서 나름대로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거나 고생을 안 한건 아니겠지만, 그저 ‘미움받지 말자’,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자’가 주된 관심사였던 그때에 비하면 갑작스럽게 울타리 밖으로 적응할 새도 없이 던져지고 시작한  20대의 인간관계는 얼마나 정신없고 허무하고 어려웠던지! 앞으로 살아가면서 훨씬 더 어렵고 애매모호하고 확신할 수 없는 그런 문제들에 직면할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뇌하수체가 환장의 댄스를 추는 것 같다.  그렇지만 고생하는 건 미래의 우리지, 지금의 우리가 아니니까 잠시 뒤로 미루도록  하자. 


나에게 20대의 인간관계란 예상치 못한 것들 투성이었다. 비록 인기가 많은것도,  새학기부터 친구를 잘 사귀는 친화력이 있던것도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시간이 지나면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다.  꾸준히. 


나의 20대의 인간관계는 꾸준하지 않았다. 내 나름대로 생각했던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전부 오답으로 바뀌었다.

 
딱히 나와 친해지려는 사람도 없었고 누군가와 친해지기에 대학이란 곳은 너무 넓었다.  넓은 벌판에서 누군가 내 사람을 만들 정도로 밝은 성격도 아닌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입학 후 바로 반수를 해서 나이만 한살 더 먹고 여전히 정신은 고등학생때에 머물러 있는 상태로 복학했다. 총체적 난국이란 이런  것!

그때 나는 넓고 얇은 인간관계는 못 만들지만, 깊은 사람들은 잘 챙기고 그에 익숙하다고 믿었다.  세상에게 왕따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세상을 왕따시켰다고 착각하고 싶었다. ‘난 주변엔 사람은  없지만 정말 친한 몇 명은 있으니까! 비록 한달에 한두번만나더라도 괜찮아!’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그냥 자기위로였을 뿐,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주변에서 워낙 왜 친구를 못 사귀냐고 닦달하는 데다가, 정작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나에게 관심이 없어서 친구는 커녕 지인도 생기지 않았다. 대학교에 가면서 인간관계를 쉽게 만드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계속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무난하게 인간관계를 만들지 못하면  성격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시선도 받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얕은 관계를  잘 맺는 사람<<깊은 관계를 잘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진심으로 믿으며 나름대로 만족할 때도 있었다.  그렇다, 눈치채셨겠지만 다 과거형이다. 


다 틀렸어!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없다고! 


지금의 나는 문제되는 인간관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것에 만족하면 그건 지금의 정답이고 불편하고 힘들면 그건 지금의  오답이다.  

정신승리인가? 그럼 정신승리하자. 누군가에게 엄청난 민폐를 끼치지 않는 한 얼마든지  정신승리하면서 살아가련다. 나는 내가 편안하게 살기를 바란다. 불편하면 누군가 나에게 말을 해  주겠지.  계속 누군가가 말을 해 주지 않는다면 나  또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내가 눈치채지 못하고 모르는 것은 내 능력 밖인것이다.  

다른 사람을 신경쓰는건 눈치보는 것이 아니라 ‘배려’까지 하기로 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적어도 범죄의 경계선을 넘지 않는다. 이 핑계로 범죄 저지르면 안됩니다.  당연하지요. 

내가 그때, 진심으로 외롭고 사람을 꼭 만들고 싶었더라면 뭐라도 꾸준히 했을 것이다.  동아리든 알바든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 나갔을 것이고 mt든 개강총회든 종강총회든 어떻게든 끼어들었을것이다. 그런데 못했다. 안 했다.  외롭긴 했지만 외로운 것 보다 이렇게 주변에 아무도 없이 혼자  다니는 나를 남들이 안 좋게 보는 것이 더 힘들었다. 누군가와 마주할 자리가 생기기라도 하면 초면인 그들을 내  소울메이트로 만들기 위해,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안절부절하면서 노력하고 연락이 더 없으면 며칠동안 자괴감에 허덕이는 것과 그냥 혼자 다니면서 사회성 없는 사람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 중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자가 더럽게  힘들었다. 후자는 굳이 의식하지 않으면 무리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잘 될거야보다 안되면 어때 퉤.를 나의 정답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될 때까지 많은 노력을 했던가? 적어도 나는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려고 해서 노력한 것은 없었다. 딱히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은 없었다. 평생토록 이런 것에 마음고생하면서 맨날 가위만 눌리고 잠도 못 잘 줄 알았는데, 이 상태가 언제까지고 벗어날 수 없는 내 인생일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에 아주 자연스럽게 그 늪에서 나와있었다. '어떻게'는 없었다. 물론, 노력은 안 한건 아니었겠지. 심리상담을 받거나 동아리에 꾸준히 들거나 흥미있는 모임에 나가거나, 좋은 글귀를 보면서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키거나. 이런 발버둥에서 내가 얻은건 새로운 친구나 지인들로 넘치는 행복한 일상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주변에 사람이 안 생기는 것에 덜 집착하는 나쁘지 않은 하루하루다.


 나와 원래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길 빌었다. 어쩌다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도움이 안 되는 글이라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또 다시 그 늪에 빠질 수도 있고 지금은 다른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러니까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이 괴롭고 평생 이렇게 살 것 같이 막막했다가 그냥 미끄럼틀을 타면 미끄러지듯이 괜찮아진 이 경험이. 나에게 알 수 없는 낙관을 준다. 이렇게 발버둥치고 울다가 자연스럽게 또 나아져있을 것이다. 그때는 다른 문제가 생겨서 이 문제는 신경도 안 쓸 정도로 비중이 작아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 생긴 문제도 마찬가지. 누군가에게 어떻게 그 우울의 늪에서 나와라! 고 말해줄 수 없고, 함부로 친구가 없어도 괜찮아 네 외로움은 그냥 남의 시선에서 나온 거짓인 감정이야!고 하기엔 그건 내 이야기였고 다른 사람은 진짜 외로울 수도 있고 나도 외로웠고.... 

확실한 건, 그대도 나쁘지 않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발버둥 쳐 왔던 그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그 시기를 앞당기고 싶어서 조급해지겠지만, 그 시기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 분명한건, 온다. 그러니까 오늘도 울면서 잠드는 우리 모두 내일은 나아질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