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마 엄마>> 생일평화상

아이들은 기억속에서 자란다.

by 쫄지마


“생일이 언제예요?”

“7월이요.”

“7월 며칠이요?”

“그냥 7월이요. 제 생일은… 7월 내내예요.”

“엥??”

“하하! 7월 1일부터 31일까지 제 생일입니다.


…이쯤 되면 민망한 게 아니라 자부심이 생긴다.

나는 7월이면 생일을 ‘챙기는’ 정도가 아니라, 생일을 ‘운영’한다.

친구들도 알 만큼, 7월만 되면 슬쩍 연락이 온다.

“우리 생일 모임 언제 할까~?”

그럼 나는 쿨하게 대답한다.

“7월 한 달은 다 내 생일이니까~ 네 일정 맞춰줘!”

ㅋㅋㅋ 진짜다. 이 모든 것은 아빠의 작품이었다.


그 시절, 아빠가 만든 ‘생일 평화상’


어릴 적, 우리 집은 늘 전쟁통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잘 싸웠고, 아빠는 자주 집을 나갔다.

군인이었던 아빠는 부대에서 지내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 7월이 되면 아니 정확하게는 내 생일에 맞춰

아빠가 돌아왔다.

군용 지프차에 내 친구들을 태워 부대 한 바퀴

돌아주는 이벤트와

양손 가득 군용 과자 선물세트를 안겨주었다.


그냥 파티가 아니었다.

그건 ‘아빠의 귀환’이었다.

그리고 그 날은 나를 위한 생일 밥상이 아닌,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이 준비되어 차려진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딸 생일에는 집에 들어오겠지"


나에게 생일은 축하의 날이지만, 가족이 잠시 멈추고 마주 앉는 시간이었다.

그 짧은 평화가, 그렇게 좋았다.


그런데 그 평화도… 늘 오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해 내 생일이었다.

두 주전에 싸우고 나간 아빠가 당연히 오겠지 기대하며,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촛불도, 노래도 없이 지나간 생일 저녁.

그리고 일주일 뒤, 술에 취한 채 돌아온 아빠가 건넨 것은 까만 비닐봉지 속 여름 슬리퍼.

엄마와 싸운 날,홧김에 내 슬리퍼를 던졌던 아빠였다.그게 마음에 걸렸던 걸까.


“…우리 딸, 생일 축하해!”


"치… 생일은 벌써 지났는데?"


"경애야, 우리 딸 생일은 7월 한 달이야!"


아빠는 술기운에 웃으며 말했다.나는 못마땅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올해의 평화상을 수상하지 못할까봐 한창을 맘 졸였으니까.

그날, 엄마와 아빠는 말없이 화해했고,

그해 7월도 그렇게 작은 평화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여전히7월 한 달 내내 생일을 챙긴다.

지인들을 만나고, 축하를 받고,밥 한 끼를 나눈다.

그건 단순한 생일 파티가 아니다.

어쩌면,어릴 적 우리 가족에게 찾아왔던그 잠깐의 평화를 계속 기억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나, 잘 지내고 있어요.”

“그때 우리 가족, 그래도 사랑했어요.”

이런 마음의 인사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기억 속에서 자란다.

부모가 만들어주는 기억 속에서 자란다.

어릴 땐 몰라도, 어른이 되고 나면그 기억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신을 이해하고, 사랑을 배운다.


나는 아빠가 남긴이름 없는 평화 협정을 기억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그들만의 “7월”이 생기기를 바란다.

소소하지만 따뜻하고, 엉뚱하지만 잊히지 않는

그런 기억 말이다.


아빠의 엉뚱한 선언 하나가

나에겐 생일 평화상이 되었듯이,

오늘 내가 만든 하루하루가

아이에게는 평생의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기억을 남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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