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날씨 - 엄마 기분 좋음"
내 초등학교 5학년 일기장에 적혀 있던 첫 문장이다. 며칠 뒤에는 이런 기록도 있었다.
"오늘의 날씨 - 엄마 기분 눈보라"
일기장을 넘기다 보면 엄마의 기분 변화가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어린 시절을 엄마의 감정 날씨에 따라 살아갔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 앞에서는 그날의 '엄마 기분'을 확인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기 전 심호흡을 하고 용기를 내어 현관문을 열곤 했다.
웃는 얼굴의 엄마를 만나면 안도감이 밀려왔다. 책가방을 내려놓고 오늘 있었던 일들을 신나게 떠들어댔다. 그날은 내게 화창한 날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문을 열자마자 엄마의 차가운 뒷모습만 보일 때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마치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맞은 듯 긴장이 되었다.
작은 헛기침으로 나의 존재를 알렸다.
"음음..."
나의 소리에 엄마는 어깨를 한번 들었다 내리면서 한숨과 함께 돌아보셨다. 그 표정에서 바로 읽을 수 있었다.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으신 날이구나.
머릿속으로 급히 내가 잘못한 일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신발 정리? 했다. 숙제? 했다. 준비물? 말씀드렸다. 그런데 왜?
엄마의 한숨은 잔소리로 이어졌고, 나는 몸을 최대한 작게 만들어 조용히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 엄마의 안 좋은 기분은 아빠의 월급 문제 때문이었다.
'아, 그렇구나. 내 탓이 아니었어.'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일기장에 "오늘의 날씨 - 엄마 기분 태풍급"이라고 적었던 날이다. 그날은 엄마와 아빠의 언쟁이 거실을 가득 채웠고, 나는 방 안에서 작게 움츠러들었다. 밖에서는 무언가 깨지는 소리도 들렸다.
그날 밤, 울다 지친 내게 다가와 미안하다며 안아주시는 엄마의 품은 폭풍 뒤의 고요함 같았다. 창문 너머로는 구름 한 점 없는 환한 보름달이 빛나고 있었다.
'엄마의 기분이 항상 좋으면 좋겠다'란 소원을 빌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건 불가능한 소원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감정도 날씨처럼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나도 내 아이의 하루를 좌우하는 '기분 날씨'가 되었다. 아이는 매일 아침 엄마의 표정을 살피며 그날의 분위기를 가늠했다.
아이가 유치원 다니던 무렵, "엄마 화났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화난 거 아닌데?" 내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도 내 표정은 화가 난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날 저녁, 식사 준비를 모두 마쳤는데 남편이 늦게 들어온다는 연락에 내 기분이 나빠졌다. 아이가 밥을 우물거리며 다시 물어보았다.
"엄마 나 때문에 화났어?"
"어? 아니, 아빠가 갑자기 늦는다고 해서 좀 짜증난 거지."
"아... 내가 밥을 늦게 먹어서 화가 난 줄 알았어."
하며 서둘러 비운 밥그릇을 보여주었다.
그 순간 깨달음이 왔다. 밥상 위를 보니 아이는 엄마의 기분을 살피느라 반찬은 제대로 집지도 않고 밥만 급하게 먹어치운 것이었다.
'아, 어린 시절의 나처럼 되어가고 있구나.'
"걱정 마. 앞으로는 엄마가 기분이 안 좋으면 왜 그런지 알려줄게. 엄마가 기분이 안 좋더라도 그건 네 탓이 아니란다. 약속할게."
비가 올 거라는 예보를 들으면 우산을 챙기듯이, 미리 엄마의 기분을 알면 아이도 '내 탓일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아이들은 엄마의 기분과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자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여기는 자기중심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의 다툼이나 우울함까지도 자신의 탓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린 아이가 그런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있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매일 밝고 행복한 상태로 있을 수 있는 부모는 없다. 우리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우리의 감정 상태를 아이에게 솔직하게 설명해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엄마가 지금 피곤해서 조금 짜증나. 하지만 이건 네 탓이 전혀 아니야."
"엄마가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서 기분이 안 좋아. 네가 뭘 잘못한 게 아니야."
"엄마가 지금 두통이 있어서 목소리가 커졌어. 미안해."
이런 작은 '기분 설명'이 아이에게는 든든한 안전망이 되어준다.
그 후로 나는 아이에게 내 기분 상태를 솔직하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가끔은 "엄마! 기분 좋다면서 왜 소리질러?"라는 항의를 받기도 했지만, 점차 아이는 더 이상 내 표정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게 되었다.
"엄마! 엄마는 포근하거나 상냥하지는 않은데 쿨해서 나~이~스 해!"
중학생이 된 아들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던진 말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아이에게 정직한 감정 소통을 가르친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반대로 사춘기 아들의 기분이 나의 하루에 영향을 미치는 날도 많아졌다. 말없이 문을 닫고 들어가는 아이의 방문을 조심스레 두드리며 물어본다.
"아들~ 혹시 기분이 안 좋은 거니? 엄마 때문에 그런 거야?"
아이에게 나의 기분을 솔직하게 전했듯, 이제는 아이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는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없다. 매일 밝고 행복한 얼굴로 아이를 맞이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때로는 피곤하고, 짜증나고, 슬플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아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는 것, 그것이 부모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아이야, 오늘 엄마의 기분은 흐림이야. 하지만 그건 네 탓이 아니란다."
이 한마디가 아이의 마음에 심어줄 안정감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아이는 부모의 감정에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의 기분이 외부 요인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주면, 아이는 자신을 탓하지 않고 건강한 감정 경계를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