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혼났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등이 얼얼했고 마음도 붉게 얼룩졌다.
나는 그 집에서 뛰쳐나왔다. 숨이 턱턱 막혔다.
“엄마 화가 풀릴 때까지는... 마을을 두세 바퀴는 돌아야 하니까.”
그렇게 골목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회색 승용차 한 대가 우리 집이 있는 산 아래로 천천히 올라갔다.
그 시절, 자동차는 시골 마을의 용감한 이방인이었다. 기척만으로도 아이들은 그 존재를 알아챘다.
나도 그 차를 따라, 호기심을 실은 발걸음을 옮겼다.
세련된 부인이 내렸다. 우리 집 대문 앞에 멈춰 섰다. 엄마가 문을 여는 걸 보자 들킬까 봐 소스라치게 도망쳤다.
집에 돌아왔을 땐 손님은 떠난 후였다. 엄마의 얼굴엔 아직도 분노의 잔열이 남아 있었다.
그날, 나는 끝내 묻지 못했다. “그 손님이 누구였는지.”
하지만 그날 이후, 내 안에 작은 상상의 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우리 가족은 최전방을 떠돌았다.
산과 들판이 내 놀이터였고 , 엄마는 언제나 바빴다. 엄마는 도시를 꿈꿨다.
나는 시골을 사랑했다. 나는 개울에서 발을 담그고,
산을 뛰어다니며 해가 질 때까지 놀고 싶었지만, 엄마는 나를 붙잡아 앉히고 책을 읽히려 했다.
책을 좋아하는 오빠와 달리 나는 종이 냄새보다 흙 냄새가 좋았고, 세계 문학 전집보다 산속 모험이 더 흥미로웠다.
그런 내가 엄마에게는 답답하고 한심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유독 엄마에게 혼이 많이 났고, 혼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이 엄마는 진짜 내 엄마가 아닐지도 몰라."
폭설로 밖으로 놀러 나갈 수 없었던 어느날. 나는 책장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한 권의 책을 마치 운명처럼 꺼내 들었다.
《소공녀》.
부모 없이 세상의 구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라 크루. 그 아이의 외로움이, 마치 내 것이었다.
책장을 넘기다 멈추고, 나는 조용히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기억하는 어린 날의 생애 첫 번째 오열을 했다. 그건 울음이라기보다, 뭔지 모를 흐느낌었다.
나는 밤마다 같은 꿈을 꾸었다. 세련된 부인이 찾아와 나를 바라본다.
나는 울면서 묻는다. "혹시… 저의 친엄마세요?"
그렇게 나는 상상속 친엄마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마치 문틈을 바라보며 누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엄마는 도시를 원했고, 나는 산을 좋아했다. 그 거리는 아주 멀고도 가까웠다.
그 마음의 골짜기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럴 무렵, 나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만났다.
하이디는 산을 사랑했고, 자연 속을 맨발로 뛰어다녔다. 나는 책장을 넘기며, 내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아, 나 같다'며 속삭이는 걸 느꼈다.
나는 생각했다. “혹시 엄마가 나를 억지로 도시로 데려가면, 나는 하이디처럼 다시 이 산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책 속에서 나는 나와 닮은 친구들을 하나씩 만나기 시작했다.
《소공녀》, 《하이디》...
그들은 내 말을 들어주는 처음이자 유일한 친구였다.
많은 부모들은 책을 ‘스승’으로 여긴다.아이를 가르쳐야 하고,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도 늘 책을 곁에 두는 이유는 책이 먼저 ‘마음의 친구’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나를 위로하고, 나를 웃게 하고, 무엇보다 내 마음을 조용히 공감해주는 존재였으니까.
친구가 되어준 책은 자연스럽게 스승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순서는 결코 바뀌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부모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히기 전에, 지금 우리 아이에게 어떤 친구가 필요한지를 먼저 생각하세요.”
동생이 태어나면서 혼란스러운 마음일 수도 있고, 용기를 내지 못해 망설이는 순간일 수도 있다.
그 마음에 어떻게 하면 책이라는 친구가 다가갈 수 있을까?
우리 아들도 어릴 땐 책을 참 좋아했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고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때 나는 ‘스승 같은 책’이 아니라 ‘친구 같은 책’을 찾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들의 책상 위에 조용히 한 권의 책을 올려두었다.
(고백하자면… 살짝의 강요도 섞여 있었다.)
《퍽》 – 고정욱 작가
아이스하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땀 흘리는 스포츠를 하고 있던 아이에게 꼭 맞는 이야기였다.
결과는 놀라울 만큼 자연스러웠다. 아이는 책을 단숨에 읽어내렸고, 곧이어 스스로 다음 책을 찾기 시작했다.
책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된 순간이었다.
나는 많은 아이들이 자기만의
소공녀, 하이디, 퍽을 만나길 바란다.
책을 ‘가르치는 도구’로 보기 전에, 먼저 ‘마음을 쓰다듬는 친구’로 건네길.
그 친구는 엄마가 채워줄 수 없는 어떤 구석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줄 것이다.
책은 스승이 아니다.
책은, 아이의 마음을 기다려주는
작은 친구다.
《아몬드》 – 손원평 작가
지금 나는 중학생이 된 딸의
책상위에 살포시 넣어두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딸이
이책과 함께 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