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사랑이 자녀의 사랑이 된다.
"너무 귀한 내 아들. 사랑하는 내 아들.우리 아들 아니고, 내 아들.남편 없이도 아들만 있으면 살겠네."
아들이 태어나고, 나는 이런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다.내 세상의 중심은 오직 아들이었다. 남편의 자리는 없었다.침대에서도, 육아에서도.
남편이 아들을 안으면,"손이 더러워!"분유를 먹이면,"TV 보면서 주는 게 말이 돼?"책을 읽어주면,"이렇게 재미없게 읽는다고?"
나는 남편이 ‘아빠’가 되는 걸 막아섰다.구기고, 짓눌러,아빠라는 존재를 버려도 되는 종이 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아들이 세 살이던 어느 주일,교회 유아실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아들은 옆자리에 앉아 있던 동갑내기 여자아이에게작은 손을 뻗으며 말했다.
"예뻐. 해유니 예뻐."
어눌한 말투로 용기 낸 첫 고백.그러나 해윤이는 단호했다.그 작은 손을 찰싹!때리며 밀어냈다.
아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그리고 내 속도 부글부글 끓었다.
"뭐야… 별로 예쁘지도 않은데 우리 아들 손을 치워?"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들을 삼키고,아들을 번쩍 안아 다른 자리로 옮기며예의 바른 집사님 톤으로 말했다.
"제 아들이 너무 귀찮게 했네요. 죄송해요."
하지만 속으로는이 작은 거절이 내가 당한 첫사랑의 실패처럼아팠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참았던 감정을 남편에게 쏟아냈다.
"우리 아들이 손을 뻗었는데, 그 애가 확 밀어냈어!말도 안 돼! 그 손을 치우다니!"
남편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그리고 작은 추임새를 넣었다.
"에구."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마음 바닥에 남은 화 쪼가리까지싹싹 긁어내고서야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장면.
남편은 내 말에 묶인 채,팔 안에서 몸부림치는 아들을 애써 붙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조금 전, 해윤이에게 손을 맞고멍하니 서 있던 아들의 모습과 똑같았다.
"아, 남편도 어머니 눈 속에 달콤한 캔디 같은 아들이었구나."
갑자기 코가 시큰 눈물이 핑..
나는 남편을 구기고, 짓눌러,한없이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렸는데,그 남편은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었는데.
그 사실을,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눈물이 그렁한 나를 보고 당황한 남편이 말했다.
"다 너 말이 맞아. 건성으로 대답한 거 아니야."
그 말에 나는 깔깔 웃었다. 그리고 더 엉엉 울었다.
남편을 구겨대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런 남편을 보면, 어머님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이 모습이 내 아들이라면, 나는 어떤 마음일까?‘
그날 이후,나는 시어머니 눈 속에 담긴 남편을내 눈에도 담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부부관계는 놀랍도록 변했다.
부부싸움의 원인이 단연코 남편이라고 믿었는데,그것이 나였음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남편의 생일이면 시부모님을 집으로 모셔손수 만든 음식으로 생일상을 차린다.
보여드리고 싶었다.
당신의 귀한 아들이,아내에게 사랑받고 대접받는 모습을.
그리고 기도했다.
"저도 이런 대접을 받고 싶어요."
그 기도가 통한 걸까.둘째는 딸이 태어났다.
나는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기야,우리 딸처럼 나도 우리 아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귀한 딸이야."
그렇게 나는, 아내에서 딸이 되었다.남편은, 다시 아들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서로의 눈 속에 담긴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나는 남편을 밀어냈다.
하지만 부모가 서로를 밀어내면, 그 안에서 자라는 아이들은사랑을 밀어내는 법부터 배운다.
나는 아들에게 최고의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정작 남편에게는 사랑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사랑을 배운다.
아빠가 엄마를 존중하는 모습에서,엄마가 아빠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빛에서.
부모가 서로를 귀하게 여길 때,아이도 자신의 존재를 소중히 여긴다.
내가 남편을 다시 눈에 담기로한 순간,아들도 우리를 보고 배울 것이다.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부모의 사랑이, 자녀의 사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