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마 엄마>> 자신을 더 사랑하는것 부터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한다고 적들에게 알리지 마라”

by 쫄지마


“자기야, 나 오늘도 찐빠 많이 먹었어.”

글쓰기 품평회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남편에게 투덜댔다.

“왜? 자기 글 얼마나 좋은데?”

“중요한 문제점을 알려줄게.

다음부터 내 글 읽을 때 참고하라고.”

“뭔데?”

“내 글에는 과시적 표현들이 너무 많아.

이런 건 글의 질을 떨어뜨린대.”

“근데… 난 그게 자기가 제일 매력적인 부분인데?”

“…어휴. 당신 덕분에 자존감은 올라가는데,

글의 수준은 자꾸 내려간다.”

요즘 나는 글을 쓰면서 나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꽤 ‘과시적인’ 사람이라는 걸 자주 발견한다.

글 안에서 나도 모르게 “나 잘했지?”, “이거 멋있지?”라고 은근슬쩍 고개를 내미는 문장들.

지우고 나면 더 세련되고 단단한데도,

자꾸만 다시 기어 나온다.

잡았다, 이놈! 하고 삭제하면, 어딘가 또 숨어 있고.

그렇게 글을 내놓기 전 나는 늘 그놈과

숨바꼭질 중이다.

그리고 품평회 시간엔 어김없이

“까꿍~” 하고 튀어나와 내 정수리를 콕 찌른다.


사람들은 나에게 ‘당당하다’, ‘자존감이 높다’는

말을 자주 한다.

사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 거라고 믿는다.

(아차, 또 나왔다. 이놈아…)


그런데, 사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엄마의 ‘못난 딸’이었고,

우리 집은 엄마와 오빠가 한 팀이었다.

오빠는 늘 날 바보라고 불렀고,

친구들이 놀러 오면, 창피하다고 날 내방에 가뒀다.

그날 나는 방에서 오줌을 참느라 식은땀을 흘렸고,

최대한 방광이 늘어난 다음에야

오빠는 친구들과 외출했다.

내 방 안의 나는, 늘 ‘자격지심’이라는

명찰을 달고 살았다.

그 아래엔 ‘콧물 닦는 손수건(비난)’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까칠함’이라고 불렀다.

사실은, 상처 받은 사람이 지닌 가장 흔한 외피였다.


대학교 1학년.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에 질려 있던 시기,

캠퍼스에서 우연히 마주친 교수님이 말했다.

“오늘 되게 멋진데.”

“에이, 제가요? 무슨 부탁하시려고요?”

라고 반사적으로 손사래를 쳤더니,

교수님은 웃으며 말했다.

“그럴 땐 그냥 ‘감사합니다’ 하면 되는 거야.

사람의 의도를 자꾸 왜곡하지 말고.”

그 말이 인생을 뒤흔든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누군가가 건네는 칭찬 앞에서

잠깐이라도 망설이다가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씩

내 마음속 콧물 손수건이 마르기 시작했다.

물론 완전히 바뀐 건 아니었다.

그 후에도 “내가 뭐라고요… 에이~”는 입에 붙어 있었고, 칭찬을 들으면 웃으면서도 속으로

“이건 립서비스야”라고 되받아치곤 했다.


하지만 한 번 열린 틈은

생각보다 빠르게 조금씩 넓어졌고,

나는 타인의 말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내가 나를 인정하는 데에도 익숙해졌다.

지금은

나의 아이들이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는 당당해서 멋져.”

“엄마는 항상 자신감이 넘쳐서 보기 좋아.”

그 말이 나에게는

세상의 어떤 품평보다 더 따뜻하고 정확하다.

이제는 안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타인도 나를 그렇게 보기 시작한다는 걸.

그러니, 쫄지 마.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자꾸 움츠러들지 말고,

완벽하지 않아도 기꺼이 웃어봐.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그게 아이에게 전해지는

가장 유쾌하고 멋진 유산이니까.

그리고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글쓰기라는 전쟁터에서

과시적 표현이라는 적을 향해

조용히 한 마디.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한다고… 적들에게 알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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