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마 엄마>> 엄마의 부재에 대하여

들판에서 잠깐 크고 온 아이

by 쫄지마

여섯 살 봄날, 엄마는 나를 데리고 전라도 남원의 큰집에 갔다. 며칠 전, 엄마랑 아빠는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싸웠고, 나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조용히 그들 옆에서 숨만 쉬었다. 엄마 손은 그날따라 유난히 바빴고, 마치 겨울밤 창문처럼 차가웠다. 그 손에 이끌려 도착한 시골집 앞 들판에서는 나물 캐던 할머니와 큰엄마가 "어이구 우리 강아지 왔는가~" 하고 봄꽃처럼 활짝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그리고 5분 뒤, 큰엄마는 나를 번쩍 안아올리더니 즉석 '쑥 박사 양성 프로젝트'를 시작하셨다.


"이건 쑥이여~" 큰엄마가 손으로 가리켰다.

"이건 뭐예요?" 내가 옆의 풀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냉이여, 이렇게 생긴 게 냉이야."

"저 냉이캤어요"

고사리 손으로 낑낑 파서 뿌리만 남은 냉이를 들어 올렸다.

"아이고, 잘한다잉~ 우리 강아지 완전 똑똑하네!"


내가 뭘 잘했는진 세상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질문이었지만, 일단 칭찬을 받으니 정신없이 땅을 파며 신이 났다.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 그렇게 한참을 후비적거리다 뒤를 돌아보니… 엄마가 없었다. 역시, 모든 마법은 5분이면 사라진다.


그날 밤, 뽀글머리 베개에 얼굴을 묻고 살짝 울었다.


"할머니, 엄마 언제 와요?" 자려고 누우며 물었다.

"곧 올 거여. 엄마도 쉬어야 할 때가 있지."

"저 때문에 화났어요?"

"아니, 그런 게 아니여."

"정말요?"

"그럼.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큰엄마랑 진달래꽃 보러 갈 거니까 얼른 자거라."


그렇게 이튿날부터 '큰엄마의 자연 속 힐링 투어'가 시작됐다. 들로 산으로 데리고 다니며 봄꽃 구경, 쑥 캐기, 그리고 가끔은 큰엄마표 '누룽지 냄비 긁어먹기' 특별 코스까지.


"큰엄마, 이렇게 긁어 먹어도 돼요?"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게 제일 맛있는 거여. 이렇게 숟가락으로 쓱쓱 긁어서..."

"와, 정말 맛있다!"

"그지? 우리 강아지 입맛이 좋네~"


매일 내 손엔 뭔가가 들려 있었고, 그 손 반대편엔 큰엄마의 거칠지만 포근한 손이 꼭 잡혀 있었다. 마치 내 작은 손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인 것처럼.


그렇게 봄이 휘리릭 지나고, 봄에 입었던 원피스가 갑자기 몸에 꽉 끼는 걸 느낄 때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다.


그리고 어릴 땐 말 못 했지만, 지금은 안다. 엄마는 나를 버린 게 아니라,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잠깐 숨 좀 돌리고 있었던 거라는 걸. 그 시절의 엄마도 많이 지쳐 있었구나, 아마도 엄마의 영혼 배터리는 '충전 중' 상태였을 테니까.


지금, 나는 엄마가 된 나를 보며, 그 봄날 들판에서 자란 꼬마아가씨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엄마 없이도 나름 잘 웃었고, 쑥 캐는 법은 마치 국가대표급으로 익혔으니까.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도, 지금은 내 온몸의 세포마다 알게 됐다.


가끔은 봄날 들판에 쑥이 한창일 때면 돌아가신 큰엄마가 생각난다.

"이렇게 꼬집어서 냄새 맡아봐. 쑥 냄새가 진하면 맛있는 거여."

큰엄마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오는 것만 같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그때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엄마가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에게 크게 사랑받았던 그 시간이 내 안의 빈 공간을 따뜻하게 채웠던 것 같다. 그 사랑은 지금까지도 내 안에서 작은 불빛처럼 깜빡이며 남아있다.


그러니, 혹시 지금 누군가를 잠시 맡기고, "잠깐만… 진짜 딱 5분만 나 혼자 있고 싶다…" 싶은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다. 너무 죄책감 갖지 말기를.


아이들은 그런 시간에도 생각보다 훨씬 잘 놀고, 누군가의 칭찬 한 스푼만 얹어주면 진달래보다 먼저 피어나기도 한다. 사실, 아이들은 엄마의 부재를 슬퍼하는 것보다 새로운 '쑥 캐기 명인'이 되는 데 훨씬 관심이 많다.


쫄지마, 엄마. 사랑은 꼭 붙어 있어야만 전해지는 게 아니야. 가끔은 '엄마 잠깐 없음'도, 아이 인생에 나쁘지 않은 추억이 되더라고.


(단, 너무 자주 없어지면 아이가 나중에 작가 돼서 회고록 쓸지도... 그러니 적당히 하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건 좋지만, 그 소재가 엄마의 실종사건이라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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