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여름, 오빠는 맞고 나는 불량식품의 세계로 입문했다
그 여름, 우리는 쭈쭈바에 인생을 걸었다.
우리 집은 아빠 부대 옆 조용한 시골 마을. 집 근처에도 국민학교는 있었지만, 엄마는 우리가 좀 더 나은 교육을 받길 바라며 시내에 있는 학교로 보냈다. 시골 아이에게는 다소 먼 거리였고, 매일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기에 엄마는 왕복 차비 100원을 딱 맞춰 주셨다. 다른 여지는 없었다. 그 안에 간식도, 여유도, 기분에 따라 사 먹을 무언가도 들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여름은 아이의 갈증과 욕망을 기가 막히게 자극하는 계절이다. 학교 앞 문방구 냉동고에 쭈쭈바가 등장하는 순간, 상황은 변했다. “야, 돌아올 때 버스 안 타고 걸어가면 되잖아. 그 돈으로 쭈쭈바 사 먹자.” 오빠는 무려 국민학교 3학년의 노련한 설득력을 발휘했다.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를 포기하고, 달콤한 쭈쭈바를 손에 넣은 우리는 그렇게 4km의 도보 여정을 시작했다. (다행히 경로는 쭉 일직선이었다.) 1학년과 3학년, 달랑 둘이서. 덥고도 길고, 무엇보다 아직 세상에 정처가 없던 두 아이의 발걸음으로.
걸은 지 10분도 안 돼서 쭈쭈바는 바닥났다. 그 뒤로 남은 건, 뜨거운 햇살과 발에 밟히는 먼지, 그리고 입안에서 맴도는 단내뿐이었다.
마치 누가 설탕물이라도 숨겨놓고 “이 정도면 됐지?” 하는 듯한 그런 맛이었다.
그 시간, 엄마는 집에서 애가 탔을 것이다. 하교 시간은 지났고, 아이들은 오지 않았고, 전화를 걸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멀리 학교를 보낸 걸 후회했을 수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엄마는 내가 평생 갚아야 할 불안의 두 시간을 감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우리는 먼지 묻은 얼굴로 터덜터덜 골목 어귀에 나타났다. 엄마는 반가움도 잠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고, 오빠는 정직하게 말했다.
“… 쭈쭈바 사 먹었어요.”
순간 공기가 정지되었고, 곧이어 오빠는 맞았다. 엄마의 손이 분노를 타고 날아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맞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만 똥그랗게 뜨고 있었던 내게 엄마는 단 한 번도 손을 들지 않았다. 아마도 너무 놀란 줄 아셨거나, 혹은 내 표정이 그날의 완벽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만들어냈던 모양이다. 그 후로 오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주 오래도록.
그날 이후, 엄마는 우리에게 돈을 조금 더 챙겨주셨다. 그리고 나는 쭈쭈바를 넘어서 쫀득이, 라면땅, 아폴로(아실랑가)까지 이른바 불량식품의 황금시대를 누리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빠의 매는 헛된 게 아니었다. 그건 우리 남매가 세상과 처음 거래한 대가였고, 오빠는 그 값을 몸으로 치른 선구자였다. 나는 그 여정 덕분에 어린 시절의 가장 달콤한 승리를 맛봤다.
아이들은 때로 아주 사소한 선택으로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 선택이 정해진 경로에서 이탈하는 것이든, 단돈 50원을 쭈쭈바에 쓰는 것이든, 그 안에는 아이 나름의 판단과 욕망, 모험이 담겨 있다. 그걸 무작정 위험하거나 철없는 선택으로만 바라보지 않아도 괜찮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버스비의 값어치'를 배운다. '단내' 하나를 얻기 위해선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도, 그리고 누가 어떻게 대가를 치렀는지도 기억하게 된다.
아이들은 실수하면서도 커가고, 때로는 한입 쭈쭈바에 세상의 달고 쓰고 시큼한 모든 감정을 배우기도 하니까.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결국, ‘다음엔 왕복 버스비에 쭈쭈바 한 개는 들어가도록’ 조금 더 여유 있는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