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stoteles (B.C. 384~322)
고전은 누구나 읽어 마땅한 인류의 지적 사고의 결정체이지만 아무나 읽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깊이와 넓이 그리고 심오함에 놀라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책의 두께와 뜻의 어려움 때문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읽어야 한다는 말에는 의무가 들어가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인류에게 전해져 온 책이라면 시공간을 초월한 인류의 보편적인 지침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다. 인간이라면 동물과는 다르게 마땅히 인간 사이에서 지켜야 할 올바른 것, 바로 윤리를 지켜야 한다. 그 윤리라는 것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안내해주는 지침서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었는데 왜 책 이름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인지 의아해할 것이다. 니코마코스는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들이다. 니코마코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의한 내용을 정리했다. 그래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이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첫 장에 인간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바로 ‘선’(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선의 달성’을 위해 인간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선’은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선’ 중에서도 최고의 선이 있는가. 바로 ‘행복’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행복이라는 것은 인간에 따라서 다르게 정의를 한다. 쾌락, 부, 명예 등등을 행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고 다른 것을 대는 사람도 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바로 관조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인간으로서 ‘선’이란 ‘우수하게’ 이성적인 정신의 활동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또한 말한다. 하지만 정신적인 활동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안다면 옳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 만약에 한 인간이 악한 짓을 저지른다면 그 인간은 무지로 인해서 악한 행동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알면서도 악한 짓을 행할 수 있다고 봤고 이성적인 정신활동이 우수하다고 하더라도 그 정신이 행위나 활동과 결합해 실제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때 진성 ‘선’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행위는 일정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올바르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두 번째, 행위 자체가 좋은 것이기 때문에 선택을 해야 하며, 세 번째,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어렸을 때부터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선’의 달성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나올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중용’을 이야기한다. 중용이란 양극단의 가운데이다. 하지만 가운데라고 해서 산술적인 중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중용은 개인과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판단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것이 중용이고 저런 상황에서는 저것이 중용이라고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여러 가지 양극단의 예를 들면서 저러한 것의 중용은 이것이라고 용어를 설명하고 있다.
중용의 덕 가운데 최상의 것도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긍지’를 꼽고 있다. 긍지란 비굴과 허세의 가운데이다. 긍지를 가진 사람만이 자신이 큰 일을 할 만한 사람이며 실제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부심이 강하며 잘 베푸는 사람이며 인간의 모든 면에서 중용의 덕을 갖춘 용어이다. 이를 통해 긍지는 궁극적인 선이며 이것이 있어야지 덕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내용은 다루고 있는 범위가 방대하기 때문에 요약을 할 수 없다. 굳이 요약을 하자면 인간의 삶은 선을 추구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행복을 추구해야 하며 그것의 방법으로는 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덕은 품성을 의미하는데 덕을 기르기 위해서는 중용의 삶을 실천해야 하며 중용 중에서 긍지가 최고의 중용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서 많은 조상들이 많은 저서를 남겼다. 하지만 본질적인 인간의 삶에 대해서 탐구하고 가치 있는 인간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구체적이며 실천적 삶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저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서 서양의 고전 중에 고전으로서 이 책이 널리 읽히고 인간에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유하는 동물이라는 점에서 여타의 동물과는 다르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고 있다.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는 말은 사고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가 더 나은 인간이며 내일의 나가 더 나은 인간이라는 즉 선을 추구하고 그것을 실행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내가 그러한 삶을 살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는 이상적인 인간의 삶을 말하고 있다. 이상적인 인간의 삶이기 때문에 보통의 범인들은 실행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인간이라는 모습 그 자체의 결과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사고하고 노력하고 행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인간의 ‘선’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선은 나 혼자만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공동체 모두가 완성해야 할 과정이며 결과이며 인류가 달성해야할 궁극적인 그 무엇이다.
이 책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서 두고두고 곱씹어가면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읽은 이 책은 원전을 번역한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서 쓴 책이다. 알기 쉽게 풀어서 썼지만 한 번 읽어서는 안 되며 또한 그 뜻을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원전이나 원전을 의역 없이 번역한 책을 읽어야 한다. 고전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할 것이다.
인간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