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내 마음의 변화를 읽다.

夏目漱石(하목수석), Natsume Sōseki

by Ruddyd Als

소설 속 ‘나’는 해수욕장에서 만난 ‘선생님’에 대해서 알 수 없는 호기심을 갖는다. 선생님을 따라다니면서 친해지지만 선생님에게는 다가오지 말라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대졸 출신 고학력자인 선생님이 왜 변변한 직업도 없이 아내와 지내는지 궁금해하면서 선생님의 집에 자주 방문하면서 나와 선생님은 친해지게 된다. 말이 별로 없는 선생님은 나에게 사랑은 죄악이며 자신은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그러던 와중에 선생님이 한 달에 한 번씩 어떤 산소로 간다는 이야기를 선생님의 아내로부터 듣게 된다.


나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 병간호를 하던 중에 나의 대학 졸업을 안 아버지는 동네잔치를 하려다가 천황폐하가 병중이라는 신문기사를 보고 잔치를 중단하게 된다. 그리고 갑자기 선생님으로부터 와달라는 전보를 받지만 아버지의 병환을 이유로 거절을 하고 선생님으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 편지에는 그동안 선생님이 감춰뒀던 선생님에게 있었던 일과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읽게 된다. 아버지가 위독함에도 부룩하고 나는 도쿄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편지에는 선생님의 어렸을 적 사건과 한 달에 한 번씩 누구의 산소에 가게 되었는지에 관해 쓰여있었다. 남을 믿지 못했던 선생님은 ‘나’는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편지를 쓴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유한 가정에 살았던 선생님은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이 거의 한 날에 죽게 된다. 선생님의 부모님은 숙부에게 재산을 맡기면서 선생님을 잘 부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숙부가 자신에게 남겨진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숙부의 딸과 자신을 결혼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자 숙부와의 왕래를 끊고 남은 재산을 처분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선생님은 인간이 악인으로 변할 수 있는 순간은 돈과 관계가 있을 때라고 말한다. 그러던 중에 대학을 다니면서 하숙집을 알아보다가 하숙집의 딸인 아가씨를 사랑하게 된다.


대학을 같이 다니던 K를 알게 되고 K의 형편이 좋지 못한 것을 안 선생님은 K를 자신의 하숙집에서 같이 머무르자고 K에게 권한다. K는 하숙집에 같이 살게 되지만 K와 선생님, 아가씨는 곧 삼각관계에 빠지고 만다. 아가씨에게 관심이 있었던 선생님은 K와 아가씨의 관계에 의심을 하면서 깊은 생각과 고뇌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선생님은 K에게서 아가씨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런 관계에서 번민을 하던 선생님은 아가씨 어머니에게 아가씨를 맡겨달라는 이야기를 꺼내고 아가씨 어머니는 승낙을 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K에게 선생님은 알려주지 않고 계략적으로는 이겼지만 인간으로서는 졌다면서 큰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K는 선생님과 아가씨의 관계에 대해 아가씨 어머니로부터 듣게 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자살을 하게 된다.


아가씨와 결혼을 한 선생님은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운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냉소적이면서도 아내를 사랑하지만 여타의 부부와는 다른듯한 생활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K에 대해 자책감과 자괴감을 항상 가지고 있던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씩 K의 묘지에 갔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아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태 그대로 보존해주고 싶다면서 아내에게는 이 유서의 내용을 비밀로 해달라고 말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라는 작품이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다. 소세키의 작품으로 유명한 것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이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마음』이라는 작품을 알게 되고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1910년대에 쓰인 이 작품은 백 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도 작품 속에 나와있는 연대기를 추측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면 현대에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시간을 초월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을 이렇게 자세하면서도 세밀하게 표현한 작품이 『마음』 이전에 무엇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사실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 하나의 흠이라고 하면 K에게 아가씨와의 혼담이 오고 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특히 범인의 생각으로는 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순백성, 엄격한 자기 인식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글로 풀어냈다는 것이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아닌가 싶다.


내 마음은 어디에서 형성되고 어떤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 끝을 맺는가.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이 있다. 크게 보자면 내가 선생님을 만난 사건, 나의 아버지가 임종을 맞이하는 사건, 선생님의 유서를 내가 받는 사건, 선생님과 아내 그리고 K와의 만남 등등이 있다. 아무래도 작품에서의 핵심은 선생님과 아내 그리고 K의 만남일 것이다.


아가씨의 어머니인 하숙집 주인은 은연중에 선생님과 아가씨를 이어주려고 한다. 글 속에는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선생님은 거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승낙을 하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태도만 보인다. 그리고 K가 하숙집에 기거를 하면서 K와 아가씨와의 알 수 없는 관계를 의심하면서부터 선생님에게는 갈등의 씨앗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그 씨앗은 외부의 사건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작품 속에서도 서술되어 있지만 그것은 선생님 자신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선생님을 옥죄기 시작했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었던 K와 아가씨와의 사소한 일에 대해 선생님은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마음이 거치는 과정이다.


애초에 선생님은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몰랐다. 그런 상태에서 타인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지만 그것 또한 진짜 선생님의 마음인지 의심스럽다. 아내에게 일련의 사건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제지를 당하고 선생님의 모든 활동에 대해서 옥죘던 그 힘은 자살만큼은 허용했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모를까 움직이라면 하나의 행동밖에는 할 수 없었고 그것이 바로 죽음에 이르는 길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을 잘 알고 있을까. 그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오롯이 내 의지와 생각으로만 생겨난 것일까. 작품 속 선생님은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는 검은 그림자를 왜 떨쳐내지 못하고 억눌려서 평생을 살았던 것일까. 나의 마음을 짓누르는 검은 그림자도 있을까.


바쁜 현대인들은 자아를 가지기를 거부한다. 그것은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도 묘사되어 있다. 끊임없는 외부의 시선에 신경을 쓰며 외부의 사건에 눈을 돌리는 동안 우리는 나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고 자기 인식에 외면을 한다. 내부보다는 외부가 중요며 타인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소비하면 나는 사라지게 된다. 마음이라는 것을 인간 본연의 내면 깊은 속까지 파헤치고 그것을 묘사한 이 작품은 그러한 면에서 보면 100년, 200년이 지나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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