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시간 (가을에서 겨울 지나)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 정효 옮김, 소담 출판사, 2015년
하나의 장르를 만든다는 것. 놀라운 일이다. “멋진 신세계”는 그런 작품이다. 인류가 발전하여 다다르게 될 미래에 대하여 희망적 비전이 아닌 인간성 상실을 그리며 당대의 사회상을 비판한다. 실제로 그 내용은 1차 대전 이후 나타난 대량 생산과 소비의 시대, 전체주의 체제의 등장을 경고한다. 그 이후로 미래 사회를 디스토피아로 그린 많은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
미래 인간은 사전 계획에 따라 인공 수정과 배양, 호르몬 조절을 통해 다섯 개의 계급으로 생산된다. 성장 과정의 세뇌 작업, 섹스와 죽음에 대한 체험 교육, 수면 학습을 통하여 거대한 사회의 부속품으로 성장한다. 가족애, 철학, 종교와 같은 정신 활동은 사라지고 결혼, 죽음과 같은 과정은 장애물로 제거되었다. 일상은 계급별 커뮤니티 내에서 함께하는 놀이(스포츠, 촉감 영화)와 공개적인 성생활이 전부다. 거기에 불안을 잠재우는 소마라는 약물까지 충분히 제공되니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우연히 야만인 보호 지역에서 발견된 소년은 신문명 세계로 데려왔을 때 적응하지 못하고 엄마의 죽음에 패닉에 이른다. 서유럽을 담당하는 통제관은 그와 대화하며 신문명의 정당성을 강조하지만 그 논리의 허술함으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책을 읽으면 몇 가지 질문이 떠오르고 계속 읽으면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과정이 반복되는 재미가 있다.
맨 처음 질문은 ‘알파 계급의 숫자가 너무 많다’였다. 인공 부화 본부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에 더하여 문화 예술계 인사, 대학 강사를 포함하여 야만인 보호 지역 관리소장까지 알파 등급이라니. 빙산의 최상단 물 위로 나온 1%라 하기에는 너무 많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무슨 소고기 등급 매기듯 알파 플러스도 있고 알파 투뿔도 있다. 앱실론이나 델타도 그 안에서 또 몇 가지 세분 등급으로 나뉘어하고 있는 일과 소마 배급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단순해 보이는 다섯 계급 안에 교묘하게 세팅된 수십 개의 등급이 있고 넘지 못하는 벽이 있다.
‘모든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의 소유다’라는 슬로건으로 자행되는 짝짓기 게임도 흥미롭다. 같은 계급끼리 경험을 공유하며 조언한다. 한편으론 더 새로운 것을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경쟁한다. 실패하면 실망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마음은 드러나지 않게 소마라는 명약으로 치유된다. 이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과 시행착오가 있었을까. 알파 계급이 생각보다 많은 이유는 그들이 하는 일의 권한과 중요도의 문제가 아니다. 체제 안정을 위해 통제 가능한 숫자였다.
이어지는 질문은 ‘전 세계에 17명 있다는 통제관중 우두머리는 누구일까?’. 그것이 ‘위원회’이든 ‘포드 집안’이든 분명 가장 상석에 앉는 자가 있을 것이다. 세계 국가의 개념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오버로드가 드러나지 않는다. 야만인을 비롯하여 자아를 추구하는 부적응자가 몇몇 등장하지만 대충 실험해 보고 섬으로 추방한다. 그 과정에서 절대 권력자는 그들을 이해하는 듯 위선을 보이고 체체 옹호를 위한 궤변을 늘어놓는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자는 절대 도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다음엔 ‘백인 남성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여성과 야만인에 대한 편견은 뭐지’라는 질문이다. 물론 당시의 평균적 인식이라 이해하지만 결국 이런 시선이 나치와 같은 집단을 탄생시켰다는 씁쓸한 감상을 남긴다. 여성을 몸의 탄력만으로 평가한다거나, 원주민들은 폭력적인 의식을 올린다는 식의 편견을 극복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확대해 온 것이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중요한 성과라 생각한다.
현재는 A.F. 120년쯤 되는 시점이다. 인류는 큰 전쟁을 치르고, 달에 가고, 컴퓨터와 휴대폰을 만들었다. 지금도 더 강한 에너지를 가진 합성 물질을 만들고 AI와 센서를 이용해 질서를 통제하려 한다. 한편으로는 말초 신경을 자극해 쾌락을 증대하는 활동과 영상, 약물에 빠져들기도 한다. 권력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어, 이렇게 가다간 ‘멋진 신세계’가 도래할 수도 있겠다. 내가 죽은 다음이겠지만.
앞으로 500년 동안 안드로이드나 슈퍼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고, 인간이 원숭이의 노예가 될 수 도 있다. 그다음에는 외계인의 침공이나 자연재해로 멸종하는 모습까지.
그렇지만 이렇게 훌륭한 문학 작품을 보며 우리는 안도한다. 모든 이야기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상상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으며 스스로 깨우치는 인간이 있고, 아무도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눈앞의 안락보다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위해 어려움을 견디려는 인간은 항상 존재한다.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필연적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불행해질 권리를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멋진 신세계’는 오지 않는다. 행복과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스스로 선택하고 견디고 성취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계로 발전하길 바란다. 내가 죽은 다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