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
백화점 창립 기념 우수고객 초대 행사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가 시작되었다.
"역시 가수 공연이 최고죠. 가을을 느끼게 하는 발라드의 황태자. 공연을 준비하겠습니다.'
"발라드의 황태자. 황제 죽기 기다리다 은퇴했어요. 지금은 트로트 시대... 우리 고객들은 그게 최고죠"
"이제 MR 트는 행사는 식상하죠. 역시 밴드 라이브가 최고죠..."
"단시간 즐기는 공연에 돈 들이는 것보단 GIFT를 혁신하죠. 우리 생일인데 우리가 쏜다. 쇠고기."
그렇게 의견이 많아도 팀장은 한마디도 없다.
막내 사원도 이젠 진중한 모습을 보이며 결정적일 때 의견을 내놓기 위해 비수를 갈았다. 어느덧 중견 사원으로써 좀 더 치밀하고 책임 있는 아이디어를 궁리했다. 선배들의 논의가 소강상태에 이른 시점, 드디어 한 방.
"개점 행사라고 너무 소비적으로 하지 말고, 자선 경매와 바자 같은 건 어떨까요.
어차피 우수고객들 좋은 물건도 많은데. 내놓고 팔아야 새 물건을 다시 사지요."
"그 의견도 괜찮군. 근데 그것만 하면 너무 허전하니까. 하늘 정원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 가을밤의 정취.
파티, 공연, 경매 다 때려 넣은 흥분되는 밤...."
팀장의 발언으로 회의는 끝났다. 총대를 메고 전진하는 것뿐. 아이디어 낸 사람이 앞장서서 나갈 뿐.
하늘 정원을 크루즈 여객선으로 연출하고 선상의 모든 이벤트를 망라한다. 이국적인 밴드의 공연도 있고, 음악을 배경 삼아 칵테일을 들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간단한 게임, 장기 자랑하는 것이 주요 계획이었다. 마지막 순서는 경매와 행운권 추첨. 질보다 양을 강조한 음식까지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하늘 정원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가 열릴 때마다 한 무리의 고객이 입장했다. 항상 가족 같은 서비스를 자랑하는 VIP 매니저와 언제라도 달려가는 점장이 그 앞에서 영접했다. 고객이 주이용하는 브랜드 매니저와 간부 사원이 에스코트하여 파티장으로 입장.. 웰컴 드링크를 마시며 고객의 쭈뼛함을 없앤다. 그리고 아는 사람을 만나면 더욱 좋고, 대화가 이어지고, 그 사이를 누비며 고객에게 포즈를 주문하고 사진을 찍는 전문 사진사까지. 날씨부터 직원들의 역할까지 모든 흐름이 좋았다.
"오늘 파티에 많은 음료를 협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 저는 몰랐네요.. 우리 남편이 오늘 행사를 어떻게 알았을까.."
드레스 코드에 맞춰 블랙&화이트 드레스에 빨간 꽃무늬가 수 놓인 그녀의 자태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음료회사 CEO 사모님은 오늘도 독보적인 우아함을 뽐내고 있었다. 그 드레스를 판매한 'OXX' 매장 매니저의 안내로 파티장으로 입장하고 다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을 때 여행 동호회 회장님이 내리면 점장이 한마디 했다.
"다음에 부석사 여행 가실 땐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점장님이 함께 하시면 저희도 좋죠...."
눈썰미 좋은 직원은 그분도 'OXX'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어 올라온 엘리베이터에서 시내 대형 유흥업소 사모님이 역시 같은 드레스를 입고 내렸다. 같은 드레스의 손님을 6명까지 세었을 때, VIP 매니저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걱정되어 파티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저 'OXX' 매장 매니저가 미쳤구나. 오늘 파티에 오는 모든 손님들에게 똑같은 옷을 팔다니.
넌 이제 잘렸다.. 저분들이 어떤 분들인데...'
그렇게 엘리베이터는 계속 올라왔고, 'OXX' 브랜드의 드레스도 계속 늘어났다.
점장과 간부 직원들 모두 파티장으로 들어가고, 홀로 남은 VIP 매니저는 고객들의 민원이 걱정스러워 차마 들어 기지 못했다. 안에서 일어날 사태가 심히 두려웠다.
"매니저님, 어서 들어오세요... 오늘 대성황이에요"
혼자 들뜬 막내의 손에 이끌려 파티장에 들어간 순간, 음료회사 사모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옆으로 도열한 같은 옷을 입은 여자 9명.
"우리 오늘 'OXX'동호회 만들었다. 글쎄 얘가 우리한테 유니폼을 입혔네."
여행 동회회장의 한마디에 모두 브랜드 매니저를 쳐다보며 한바탕 웃고는 막내 사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요청했다. 그리고 즐겁게 대형을 바꿔가며 손하트를 만들고,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었다.
"같은 옷을 입은 여자가 한 명이면 기분 나쁘지, 두 명이면 매니저를 원망하지,
세명이면 저년이 돈 독이 올랐구나 욕하지. 네 명이면 이 브랜드 신상품이 없구나
다른 브랜드로 갈아타야겠다. 생각했지..."
"그런데 6명쯤 되면 우리 수준이 비슷하지 하면서. 누굴 탓하겠냐 하는 거야...
비슷한 취향의 사람끼리 노는 거지. 오늘 같은 날에는..."
경매가 끝나고 고객들은 노래방 기계를 설치해 달라 요청해서 한곡씩 부르고 돌아갔다. 그날의 9벌의 드레스 중 몇 개는 그다음 날 바로 환불되었고, 몇 개는 다음 시즌 자선 마켓에 기부되었다. 그렇지만 그날 결성된 동호회는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백화점과 브랜드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소비 활동을 지속했다.
막내 사원은 이번 파티의 성공을 계기로 성공만 하는,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갖춘 인재로 성장하는 자신을 대견해하며, 크리스마스에 한 건 터뜨리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